"입만 열면 거짓말"...워싱턴 뒤흔든 ‘리플리 의원’, 공화당은 손절?
학력, 재산, 핏줄, 성적 취향까지 모두 거짓
의석 한 석이 아쉽지만...공화당에서도 '사퇴' 촉구 목소리
아직 국회의사당에 발도 디디지 못한 한 예비 의원의 거짓 이력 스캔들이 새해 벽두부터 미국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사건의 주인공은 '조지 샌토스(34)'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당선인.
그의 거짓 이력이 얼마나 화려하면 미국 일간 보스턴글로브는 그를 “도널드 트럼프 이후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한 공화당원”으로 칭했을 정도다. 한마디로 입 밖으로 꺼낸 삶 자체가 모두 '가짜'라는 것이다. 다만 그가 의원직 수행 의지를 계속 내비치는 데다 공화당 역시 의석수 한자리가 아쉬운 상황이라 쉽게 ‘손절’할 수 없어, 그의 진퇴를 놓고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학력도 성정체성도 ‘거짓’
1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전문매체 더힐 등에 따르면, 의회 입성을 앞두고 있는 공화당 샌토스 하원의원 당선인의 거짓말로 미국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샌토스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뉴욕주 3선거구에 출마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자신이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임을 강조했다. '브라질 이민자 2세'이자 '성소수자'라는 미국 사회 소수 집단에 속하지만, 뉴욕시립대 바루크 칼리지와 뉴욕대 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 등 월가 투자은행에서 일한 인재라며 표를 호소했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 소수자 정체성을 내세운 그는 민주당 표밭에서 민주당 후보에 우세했던 판세를 뒤엎고 당선됐다. 그러나 지난달 19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그의 대학 졸업장과 월가 근무 경력이 가짜라는 의혹을 보도하면서 거짓이 들통났다.
샌토스는 일주일 만인 지난달 26일 폭스뉴스, 뉴욕포스트 등 친공화당 성향 언론 인터뷰에서 “이력서를 꾸몄다(embellish)”며 거짓을 시인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의혹은 끝없이 쏟아지고 있다. 미 언론들은 “자수성가해 부동산 13건을 보유했다”라거나 “2,500마리 이상 개와 고양이를 구조한 동물 구조 단체를 운영했다”는 그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더힐은 “샌토스는 선거 운동 당시 트위터에 어머니가 (2001년) 9·11 테러로 숨졌다는 글을 올렸는데 또 다른 글에선 2016년 사망했음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15년 전 브라질에서 수표를 위조하고 가명을 사용해 이용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했는데, 범행 이력까지 속인 셈이다.
성 정체성도 의심받고 있다. ‘공개적 동성애자(openly gay)’라는 그의 주장은 2012~2019년 여성과 결혼 생활이 드러나며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학력부터 경력, 핏줄, 재산, 심지어 성적 성향까지 인생 자체가 모두 ‘가짜’였다는 얘기다.
급기야는 그가 리플리 증후군(자신이 한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 발표한 소설 ‘재능있는 미스터 리플리’를 인용, “샌토스는 타고난 미스터 리플리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리플리는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혀 거짓말을 일삼고, 거짓을 감추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소설 주인공이다.
공화당, 제명 나설까
정치인의 역대급 거짓말과 날조된 성공 신화는 법정으로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미 뉴욕주 나소카운티 지방검찰은 그가 유세 과정에서 경력과 범죄 이력을 속인 행위가 선거법 위반과 형법상 사기 혐의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민주당 역시 그를 제명하라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뉴욕을 지역구로 둔 리치 토레스 민주당 하원의원은 샌토스 의원 이름을 딴 법안(SANTOS·Stop Another Non-Truthful Office Seeker)을 발의하기도 했다. 의원직에 나선 후보가 거짓 이력을 내세울 경우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침묵을 지키던 공화당 내에서도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1일 미 하원 세입위원회 간사인 케빈 브래디 공화당 의원은 “대중 신뢰와 존경을 되찾으려면 (샌토스가) ‘엄청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자진 사임을 촉구했다. 샌토스가 ‘트럼프 키즈’로 꼽히는 데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간발의 차로 하원 다수당 지위를 차지한 만큼 의석 단 하나도 아쉬운 상황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논란에도 불구, 샌토스는 하원 개원일인 3일 예정대로 취임 선서를 하겠다고 밝히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가 선서 후 공식적인 연방 의원이 된다면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미 연방헌법상 취임 선서를 한 하원의원은 반역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지 않는 이상 사법부가 의원직을 박탈할 수 없다. 하원 윤리위원회를 거쳐 제명 절차에 돌입할 수 있지만, 실제 성사되려면 전체 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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