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농민에게 脫農할 자유를 許하라

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한국고간찰연구회 이사장 2023. 1. 3.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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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하락 막으려 1조 들여 작년 쌀 45만t 창고에 넣어
농지 줄이면 해결되는데 매매·전용 제한해 ‘억지 쌀농사’ 악순환
식량 안보 내세워 탈농 막는 건 시대착오

쌀값이 작년 9월 전년 동기 대비 24.9%, 1977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폭으로 하락하자 정부·여당은 예상 공급 초과 물량 25만t보다 20만t 더 많은 45만t을 시장에서 격리시켰고(20㎏당 4만6819원, 1조원 조금 더 들여서), 야당은 한 술 더 떠서 시장격리를 의무화하자고 한다. 해묵은 쌀 공급 과잉을 해결하기는커녕 역주행하는 데에 여야가 다르지 않으니 딱한 일이다.

쌀을 재고로 가지고 있으면 보관비, 금융 비용이 추가되고 판매가는 점점 더 떨어져 적자가 폭발적으로 커진다. 지금도 3~4년 묵은 쌀을 주조용, 사료용으로 20㎏당 8000원, 4000원에 팔고 있다. 농정 당국은 아직 “폐기”한 적은 없다고 자위하지만 공급과잉 물량 25만t의 앞날이 뻔히 내다 보인다. 이렇게 허비할 돈이 있으면 쌀 생산을 줄이는 데에 돈을 더 쓰는 것이 옳다.

웬만한 선진국에서는 농산물이 남아돌 조짐이 보이면 생산자단체 주도로 일정 물량을 폐기 처분함으로써 가격 하락을 미연에 방지한다.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 25만t이라면 모든 쌀 농가가 각자 7%씩 덜 생산하거나 버려준다면 쌀값은 유지되고, 농가는 전년 수준의 소득을 유지할 수 있고, 문제는 그냥 사라질 것이다. 매사 정서법을 내세워 나라 경제를 망치는 것을 소임으로 삼고 있는 정치인들이 문제를 만들고 있다.

사실 그동안 쌀 생산은 많이 줄었다. 1990년 124만ha였던 쌀 재배 면적은 이제 73만ha로 줄었다. 논에는 쌀을 심으라는 규제는 없어진 지 오래고 다른 작물로 바꾸라고 장려금까지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a당 수확량이 330㎏에서 530㎏으로 늘어나 1980년대 후반에 560만t을 웃돌던 쌀 생산량은 아직도 380만t 수준으로 32% 줄었을 뿐이다.

국민 1인당 쌀 소비가 1970년 136.5㎏에서 2021년 56.9㎏으로 더 빨리 준 것이 문제다. 1970~2020년 사이에 인구가 3224만에서 5175만으로 늘어났는데도 밥쌀 소비는 440만t에서 294만t으로 줄었다. 국민이 이렇게 쌀을 외면하게 된 것은 쌀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WTO 가입 이후 다른 모든 먹거리가 국제 경쟁가격으로 수입되는데 쌀값만 국제가격보다 6배나 비싸니 소비 감소가 가속화된 것이다. 일본은 2012년 이후 21년까지 쌀값을 21.2% 떨어뜨렸는데도 1인당 쌀 소비는 50.7㎏이다. 같은 기간 우리는 쌀값을 31.9% 올렸다. 쌀이 쌀과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서로 경쟁한다. 쌀은 다른 먹거리와의 경쟁에서 패퇴하고 있는 것이다.

쌀값을 내리기도, 농민 스스로 생산을 줄이기도 어렵다면 원하는 농민의 탈농(脫農)을 촉진하는 방법이 남는데, 우리나라는 비농민의 농지 취득도 농지의 전용도 어렵기 때문에 고령농이 농지를 팔고 탈농하기가 어렵다. 기계화된 영농단에 맡길 수 있는 농사는 쌀 농사밖에 없으니 탈농을 못하면 쌀 농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자유를 제한했으니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겠다.

모든 농민이 같은 걸 원하지는 않는다. 쌀 농가는 이제 38% 이하이고, 그중에는 간절히 탈농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보다 33배, 일본보다 3.6배 비싼 농지를 팔고 싶은 농민이 왜 없겠는가? 농지를 팔기 쉽게 해 주면 탈농을 원하는 고령농은 뛸 듯이 좋아할 것이고, 쌀 과잉 문제는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며, 가용 토지 공급이 늘어나 투자 활성화와 집값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도 농민,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은 어느 농민, 어느 국민을 위하는 것인가?

식량 안보를 내세워 농민과 농지의 탈농을 막는 것은 시대착오다. 1961~2020년간 세계 인구는 30억8000만명에서 79억명으로 2.6배 증가했는데 쌀, 밀, 옥수수의 생산량은 각 2억~2억5000만t에서 쌀, 밀은 각 7억6000만t, 옥수수는 11억2000만t으로 각각 3.5배, 3배, 5.5배 증가했다. 대두는 1970년 4600만t에서 2010년 2억 5600만t으로 늘었다. 사료용 곡식 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바이오 디젤 등에 곡물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곡물 가격은 폭락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곡물 증산의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맬서스의 주장은 기우에 그쳤다.

굳이 내 손으로 곡식을 생산하고 싶다면 땅값이 싼 나라에 가서 대규모 농업개발에 투자하라. 높은 쌀값은 농민을 희망고문 하고 쌀 산업을 확실하게 죽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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