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그래도 희망은 있다

기자 2023. 1.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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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워낙 어렵다 보니 새해가 밝았는데도 희망을 말하는 이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운 것은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라 세계 공통의 문제이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지나고 나면 나라마다 실력차가 드러난다. 어떤 나라는 위기를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 더 견고해진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고, 어떤 나라는 회복 불가능하게 뒤처진다. 한국은 대체로 위기에 강한 편이었다. 1970년대 오일 쇼크 때는 유로 마켓에 쌓인 산유국의 오일 달러를 역이용해 중화학 강국의 기틀을 쌓았고, 1997~1998년 IMF 외환위기 때는 무너지는 대기업의 빈자리에 기술집약적 벤처기업을 육성해 평소라면 어려웠을 산업구조조정을 이루고 인터넷 강국으로 거듭났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정책은 결국 정치가 뒷받침한다. 같은 위기라도 나라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극단적으로 갈라진 한국 정치에도 희망을 만들 수 있는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좀 거칠더라도 보수와 진보 정치세력으로 나눠본다면 남아 있는 희망은 이런 것들이다. 보수 정치는 나라가 작동하는 방식, 즉 거버넌스를 엄정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세상의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겠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고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거버넌스의 힘이다. 당장의 환호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에 굴하지 않을 실력과 용기를 갖춰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검찰 공화국이라 비판하지만, 제대로 하려고만 한다면 거버넌스를 엄정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법률가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저출산·고령화의 속도는 한국의 정책선택에 커다란 제약이다. 특히 노동이나 복지, 혹은 세금 관련 정책을 한 번만 잘못 선택하면 고령화로 인해 원래 치러야 할 대가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 고령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던 시절에 성공한 적이 있는 정책이라 해서 별생각 없이 도입했다가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건 한순간이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과 조세와 재정을 투명화하고 효율화하고 합리화하는 거버넌스의 확립이 최우선이다. 세금이 줄줄 새고 있는 곳은 없는지, 불필요한 사업은 안 하고 해야 할 사업에는 충분히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지, 힘센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이나 지자체장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낭비되는 예산은 없는지, 정책이 원래의 의도대로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사회집단 간의 갈등에 있어서 약속을 지킨 사람들이 보상받고 약속을 어긴 사람들이 제대로 제재받고 있는지,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우리 사회의 인센티브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지 등을 두루 살피고 바로잡아야 거버넌스가 엄정해진다. 법률가가 넘쳐나는 윤석열 정부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경제위기를 뚫고 다시 한번 도약할 것이다. 그러나 거버넌스를 엄정하게 하는 것과 과거 엉터리 보수로의 회귀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희망은 사라질 것이다.

진보 정치는 진보의 의제를 새롭게 하는 데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아직까지 보수의 의제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반복되는 언급은 분명한 내용이 있다기보다는 미·중 갈등을 축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가치를 택하겠다는 일관된 메시지 정도로 읽힌다. 이것을 완전히 소화해 국민을 설득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진보의 의제도 낡은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를 겪으면서 많은 국민들은 1980년대식 진보의 의제에 대해 내로남불이라며 냉소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와 지금의 민주당에 넘쳐나는 586들이 40년간 익숙해진 낡은 진보의 이분법을 내려놓고, 민주화세력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젊은 세대와 어울려 세계의 변화를 공부하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진보의 의제를 토론할 수 있다면 진보 정치는 새로운 희망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세력에 프레임을 씌워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자기편을 끌어모으는 데에 출구가 있다는 착각을 반복한다면 희망은 사라질 것이다.

덕담이 필요한 때이다. 희망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어느 한 세력만이라도 초심으로 그 불씨를 살려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경제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나라는 도약하고 그들은 이 나라 정치의 중심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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