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그래도 희망은 있다
경제가 워낙 어렵다 보니 새해가 밝았는데도 희망을 말하는 이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운 것은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라 세계 공통의 문제이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지나고 나면 나라마다 실력차가 드러난다. 어떤 나라는 위기를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 더 견고해진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고, 어떤 나라는 회복 불가능하게 뒤처진다. 한국은 대체로 위기에 강한 편이었다. 1970년대 오일 쇼크 때는 유로 마켓에 쌓인 산유국의 오일 달러를 역이용해 중화학 강국의 기틀을 쌓았고, 1997~1998년 IMF 외환위기 때는 무너지는 대기업의 빈자리에 기술집약적 벤처기업을 육성해 평소라면 어려웠을 산업구조조정을 이루고 인터넷 강국으로 거듭났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정책은 결국 정치가 뒷받침한다. 같은 위기라도 나라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이다.
진보 정치는 진보의 의제를 새롭게 하는 데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아직까지 보수의 의제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반복되는 언급은 분명한 내용이 있다기보다는 미·중 갈등을 축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가치를 택하겠다는 일관된 메시지 정도로 읽힌다. 이것을 완전히 소화해 국민을 설득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진보의 의제도 낡은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를 겪으면서 많은 국민들은 1980년대식 진보의 의제에 대해 내로남불이라며 냉소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와 지금의 민주당에 넘쳐나는 586들이 40년간 익숙해진 낡은 진보의 이분법을 내려놓고, 민주화세력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젊은 세대와 어울려 세계의 변화를 공부하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진보의 의제를 토론할 수 있다면 진보 정치는 새로운 희망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세력에 프레임을 씌워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자기편을 끌어모으는 데에 출구가 있다는 착각을 반복한다면 희망은 사라질 것이다.
덕담이 필요한 때이다. 희망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어느 한 세력만이라도 초심으로 그 불씨를 살려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경제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나라는 도약하고 그들은 이 나라 정치의 중심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고 계속 커지는 켈로이드 흉터··· 구멍내고 얼리면 더 빨리 치료된다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검찰개혁 선봉’ 박은정, 혁신당 탄핵추진위 사임···왜?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3200억대 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조직 체포… 역대 최대 규모
-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는 무엇…정부 부처 아닌 자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