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꿈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언제부터인가 부산은 꿈을 꾸지 않고 있다. 왜 그런지 부산의 글로벌 창업생태계 순위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 보자. 스타트업 블링크(startup blink)가 조사한 2021년 글로벌 창업생태계 순위에서 부산은 1000개 도시 중 207위에 머물렀다.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은 세계 280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하는데 부산은 아예 그 대상에 들어가 있지도 않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인도의 벵갈루루는 말할 것도 없고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방콕 마닐라 호찌민 등도 부산보다 100등급 이상 훨씬 앞에 있다.
개업과 달리 창업이란, 남들이 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꿈꾸는 데서 출발한다. 본성상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혁신적이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같은 창업가를 보나 세계적인 창업도시들을 보나 마찬가지 특성을 찾을 수 있다. 일단 한 도시의 성장전략 내지 혁신전략으로서의 창업정책에 집중해 보자.
지난 반세기 동안 전국 대비 부산의 경제적 위상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었다. 그 원인으로 대부분 우리나라의 수도권 중심 발전전략과 형식적인 지방분권제도를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외부적 요인보다 내부적 요인들에 관해 말을 꺼낼 때가 되었다. 1970년대 이후 10년 단위로 전 세계적인 경제적 격변이 있었고 그때마다 우리나라 전체가 함께 큰 위기를 겪었지만 안타깝게도 부산은 그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지 못했다. 그렇게 거의 50년 이상 주력 전통산업이 쇠약해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새로운 미래성장산업의 발굴에 나서기보다는 기존 산업의 기득권 보호에 더 힘쓰다가 결국은 둘 다 놓치고 마는 전략적 실패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민선 시대가 시작한 1995년 이후로만 두고 봐도 1990년대 벤처투자 붐, 2000년대 창업 붐, 2010년대 4차산업혁명 붐이 거세게 일어났지만 부산은 그 역동적인 시대적 흐름에 한 번도 제대로 올라타지 못했다. 오히려 역대 민선정부가 거의 다 동북아해양수도, 해양관광도시 같은 성장전략이 빠진 일차원적인 선거구호에 더 매달렸다. 부산의 미래 30년, 50년을 내다보면서 부산형 미래성장산업을 만들려는 전략적 노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1995년 이후 약 30년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세계사를 보면 한 나라 전체가 완전히 새로운 국가로 탈바꿈할 정도로 긴 역사적 시간이다. 그 긴 기간 부산은 남들이 가지 않은 미지의 분야에 도전하고 자신을 혁신하면서 운명을 개척해 나가기보다는 중견기업은 대기업 공급망이라는 안전지대 안에서, 교수는 대학 학과라는 칸막이 안에서, 공직자는 부서와 팀이라는 격벽 안에서, 정치인은 지역구라는 텃밭 안에서 각자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더 노력했고, 각자 자신들의 사적인 작은 성공에 만족하는 동안 전체 부산은 점점 쇠약해져 원래의 활력을 잃고 미래 성장산업이 없는, 꿈을 꾸지 않는 도시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스라엘은 세계 어느 민족 어느 나라보다 큰 고난과 역경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그야말로 사막 위 텐트촌에서 시작해 첨단농업기술, 해수담수화, 원자력 안전, 인터넷 보안, 항공우주산업, 드론산업 등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들을 개발해냈고, 지금까지 배출한 유니콘 기업이나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킨 스타트업 수가 전체 유럽과 비교해도 더 많다. 이런 이스라엘도 스타트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다. 지금은 인구가 900만 명 가까이 되지만 그때만 해도 인구 400만 명 중반에 지나지 않았다. 면적도 부산보다 작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창업과는 거리가 먼 사회주의 체제적 요소를 더 많이 가지고 있던 나라였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세계적인 창업국가로 성공할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달랐던 점은 그들은 절박한 현실을 넘어 늘 새로운 꿈을 꿀 줄 알았다.
부산은 이스라엘보다도, 벵갈루루보다도, 동남아의 어느 창업도시들보다도 훨씬 큰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들처럼 절박하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부산의 글로벌 창업생태계 순위를 절박하게 받아들인다면 올해에는 창업이라는 도시전략에 관해 한번 같은 꿈을 꿔 보자. 꿈이 모이면 도시가 바뀌고 다음 세대에 넘겨줄 미래도 새로 쓸 수 있다. 그게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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