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잔인한 복수… 섬뜩한 풍자가 일품이네
한국 정서에 맞게 개사해 공연
러빗 부인 役 전미도 흥행 이끌어
“들어는 봤나, 스위니 토드/ 창백한 얼굴의 한 남자/ 시퍼런 칼날을 쳐들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네~”
막이 열리면 이렇게 음산한 합창부터 들려주는 뮤지컬이 신년 벽두 예매 1위(공연예술 통합전산망)를 달리고 있다. ‘스위니 토드’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19세기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면도칼을 든 이발사 스위니 토드의 복수를 따라가는 스릴러. 시체가 쌓이고 인육(人肉) 파이도 등장하지만 관객은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토드(신성록)는 아내를 탐한 터핀 판사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추방당했다가 15년 만에 돌아온다. 아내는 행방불명이고 딸은 터핀 판사의 양녀로 붙잡혀 있다. 망하기 직전인 파이 가게를 운영하는 러빗 부인(전미도)은 토드가 다시 이발소를 열고 복수를 준비하도록 돕는다. 모든 것을 잃은 남자와 새 출발을 꿈꾸는 여자의 컬래버다. 사회 전체를 증오하는 토드는 이발소에서 계속 살인을 하고 ‘새로운 고기’를 넣은 러빗 부인의 파이는 오븐에 굽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이 뮤지컬은 먹고 먹히는 세상을 향한 풍자, 씹는 맛이 일품이다. 토드와 러빗 부인이 1막의 마지막 곡 ‘어 리틀 프리스트(A Little Priest)’를 부를 때 객석은 웃음바다가 된다. 이 노래는 “양심으로 속을 채운 ‘목사 파이’/ 내용물도 부실하고 감동이 없는 ‘소설가 파이’/ 주둥이만 살아서 씹는 맛이 최고인 ‘변호사 파이’/ 꽉 막혔지만 실속이 넘치는 ‘공무원 파이’/ 도둑놈과 사기꾼을 섞은 맛 ‘정치인 파이’~”로 흘러간다. 직업마다 다른 육즙의 맛을 포착한 노랫말을 음미하게 된다.
‘스위니 토드’는 1979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이번 공연은 개사(改詞) 작업으로 우리 현실과 정서를 반영했다. 한국화됐다는 뜻이다. 스티븐 손드하임(1930~2021)이 작사·작곡한 음악은 낯설고 기괴한 불협화음이지만 이 비극에 공포감을 증폭시킨다. 토니상을 8번이나 받은 그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컴퍼니’ ‘인투 더 우즈’로도 유명하지만 ‘스위니 토드’야말로 치밀한 음악성과 언어 유희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잔인한 세상을 향한 더 잔인한 복수가 묘한 쾌감을 준다. 4층 높이의 계단형 구조물로 표현한 무대는 어둡고 차갑다. 2막에선 천장에서 멋진 이발소 의자가 내려오는데 사형대와 같다.
예매 상황을 보면 이 뮤지컬의 흥행은 배우 전미도가 이끌고 있다. 말과 행동, 노래의 동기 부여가 정교하고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한마디로도 자석처럼 신경을 끌어당겼다. 뼛속 깊은 분노와 광기로 타올라야 할 신성록의 토드는 다소 피상적이고 아직 무르익지 않아 몰입을 방해했다.
강필석·이규형·신성록이 토드를, 전미도·김지현·린아가 러빗 부인을 나눠 맡는다. 이 뮤지컬의 육즙을 9가지 다른 조합으로 맛볼 수 있다는 뜻이다. 공연은 3월 5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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