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노무현과 서어나무
식물이 사람을 만나면, 그 의미가 더 커진다. 그 사람이 임금이거나 대통령이면 더욱더 그렇다. 얼마 전 청와대가 개방되어, 역대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나무가 세상에 알려졌다. 박상진 교수의 <청와대의 나무들>에는 대통령의 기념식수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기념식수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는 자장이 자신의 게송을 듣고자 이승과 저승의 중생이 몸을 드러낸 일을 기념하려 심은 나무를 지식수(知識樹)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함흥본궁에 직접 심은 소나무와 함경도 석왕사에 심은 소나무를 수식송(手植松)이라 칭했다. <정조실록>에는 영조가 선대 임금의 능에 심은 잣나무를 구리로 에워싸게 하고서, ‘수식(手植)’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 두었다고 전한다.
계묘년 새해 첫날, 한양의 주산 백악에 올랐다. 칠궁 쪽에서 우백호(인왕산)의 시선을 받으며 청와대 담장을 끼고 대략 10분 남짓 오르면, 백악정이라는 쉼터가 있다.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곳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에 심은 느티나무와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에 심은 서어나무가 자란다.
역대 대통령이 심은 나무는 소나무, 무궁화, 느티나무 등이 대부분이고, 서어나무는 드문 사례다. 서어나무는 일반인에게도 생소한 나무인데, 하고많은 나무 중에서 왜 하필 서어나무를 심었을까.
키가 작달막한 서어나무는 목재가 단단하여 유럽에서는 쇠나무(ironwood)라고 불리며, 길이를 재는 잣대목으로도 사용하였다. 서어나무의 또 다른 특징은 어둠 속에서도 오랫동안 버티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허허벌판에 처음 숲이 형성될 때,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 자작나무나 소나무가 가장 먼저 자리를 잡고, 그다음에는 참나무류가 들어선다. 그 뒤 어두운 숲속에는 서어나무가 서서히 세력을 넓혀간다. 이처럼 햇빛이 적은 숲 아래에서 한참을 견디는 녀석이 바로 서어나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소나무와 참나무류 등은 쇠퇴하고 음지에서 버티던 서어나무가 결국 최후의 숲 주인이 된다. 전문가들은 서어나무를 식생천이의 최종 단계, 즉 극상림(極相林)을 이루는 주요 수종이며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무로 평가한다. 그러고 보면, 노무현의 삶은 서어나무의 삶과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힘든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남은 서어나무가 숲의 최후 승리자가 된다는 사실을 노무현은 알았을까. 그 속을 이제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으랴.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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