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지금 탄소의 시간은 2023년이 아니다
지금 탄소의 시간을
바로잡아야 한다.
평창이나 하와이처럼
지구상의 탄소 시간을
2023년으로 맞춰야 한다
서울 같은 곳은 더는
탄소를 배출하면 안 된다.
지금 이건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대도시와 공단
모든 곳에 해당되는 얘기다
다시 정리하면
너무 앞서 가버린 지역의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그래서 결국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아갈 때
기후 문제는 해결된다
지금 당신은 몇 년에 살고 계시는가요? 이제 새해가 밝았으니 모두가 2023년이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력, 즉 고대 선조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만들기 시작한 시간의 정의에 따르면 2023년이 맞다. 그런데 지금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을 조금만 바꾸어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지금 2023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달력의 정의에 따르면 지구상 모든 곳은 같은 2023년이지만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공기 중 탄소의 시간은 여러분과 제가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기후변화의 시간, 바로 탄소의 시간에 관해 얘기하려 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기후위기는 여러분과 제가 사는 지역 탄소의 시간이 다르므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탄소의 시간을 이해하기에 앞서 기후변화의 시간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히고 객관적으로 검증하며, 나아가 기후변화의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보통 기후과학자들은 기후변화를 진단하고 예측하기 위해 지구시스템모델이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지구시스템모델은 지구라는 행성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 즉 공기, 물, 나무, 흙, 인간 활동, 대기의 흐름, 해류, 빙하 등을 물리적, 화학적, 역학적인 법칙에 맞추어 수학식으로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수학식은 너무도 복잡하여 우리가 손으로 연습장에 풀 수 없어 컴퓨터라는 또 다른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만 계산을 할 수 있는 복잡한 방정식들이다.
기후과학자는 이러한 방정식들로 구성된 지구시스템모델을 이용하여 지구에서 벌어지는 기후시스템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 게임처럼 컴퓨터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 지구를 만들어 놓고 지구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 볼 수 있다. 기후과학자들은 지구시스템모델을 이용한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밝힐 수 있었다. 온실가스, 에어로졸, 토지 이용, 그리고 자연변동의 일부 영향 등으로 기후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여러 가지 요인 중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가 현재 우리가 경험 중인 기후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 또한 지구시스템모델을 통해 검증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다가올 미래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주요한 원인을 찾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원인 요소들이 어떻게 변할지를 알면 기후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 갈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기후과학자들은 앞으로 시간에 따른 기후변화 양상을 예측하기 위해, 예를 들면 ‘2030년에는 기온이 얼마나 올라가지?’ ‘2040년에는 한국에 비가 많이 올까?’ ‘앞으로 여름에 태풍이 강해지는 걸까?’ ‘30년이 지나면 한국의 기후가 동남아처럼 바뀐다는데 사실일까?’ 등과 같은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인간 활동으로 인한 탄소 배출에 대하여 다양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서울은 지금 탄소시간으로 2047년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후변화의 양상은 인간의 인위적 탄소 배출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인류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할까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여기서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쓰는 것과 같은 어떤 사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상의 결과나 그 과정들에 관한 이야기를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나리오는 영화처럼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탄소와 관련한 많은 분야의 다양한 학자들이 모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시나리오를 만들게 된다. 바로 그것이 Shared Socioeconomic Pathways(SSPs), 공통사회경제 시나리오다. SSPs 시나리오는 재생에너지 사용 및 친환경 정책으로 기후변화를 완화시키는 것부터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마구 높아지는 최악의 기후변화 시나리오 등 5개의 탄소배출량이 다른 시나리오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기후과학자들은 이러한 5개의 각기 다른 탄소배출량을 가상의 지구시스템모델에 입력하고 슈퍼컴퓨터를 통해 계산하면 지금부터 2100년까지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우리 인류가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 먼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고 그다음 기온이 올라가게 된다. 이미 많은 분이 뉴스 같은 데서 보셨을 것이다. 가로 방향으로 지금부터 2100년까지 시간이 진행되면 세로 방향으로 온도 값이 우상향하면서 올라가는 그림을. 이 간단한 그림은 지금까지 언급했던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값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기후시스템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지구시스템모델이 알려주는 지금은 과연 몇 년일까? 지구시스템모델에 나타나는 2023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420PPM이다. 지금과 같은 겨울철에 약 420PPM의 대기 중 농도는 우리나라 강원도 평창 같은 곳에서 측정되는 값과 거의 유사하다. 반면에 같은 기간 서울 도심 같은 곳은 500PPM 정도로 평창보다 약 80PPM 큰 값을 보인다. 그리고 500PPM은 기후변화의 시나리오에서 보면 약 2047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농도가 낮은 하와이 마우나로아섬 같은 경우도 이제 막 420PPM을 돌파하였다. 즉 지구시스템모델이 예측하는 2023년 현재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나타나는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알려진 하와이, 그리고 우리나라 같으면 평창 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서울은 25년을 앞서가 2047년에 사는 것이다.
공단은 도시보다 더 미래에 사는 것
비록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전 세계인이 기후의 미래라고 하는 것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틀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탄소의 시차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2023년에 어울리는 탄소를 가진 평창과 그보다 더 먼 미래에 사는 서울을 비교해보라. 서울은 분명히 평창보다 더 나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수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면 평창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반면에 서울은 어떤가, 한마디로 Never sleep city, 잠들지 않는 도시다. 어둠이 밀려와도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하여 가냘픈 달빛을 조롱하듯 강력한 인공 빛을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도시다. 결국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자동차, 더 많은 폐기물, 더 많은 건물, 더 많은 에너지 사용으로 더 많은 탄소를 공기 중으로 뿜어내 서울은 2047년으로 내달려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탄소의 시간을 바로잡아야 한다. 평창이나 하와이처럼 지구상 모든 곳의 탄소 시간은 2023년으로 맞추어져야 한다. 즉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값으로 지구 전체가 일정해지면 되는 것이다. 서울 같은 곳은 더는 대기 중으로 탄소를 배출하면 안 된다. 바로 서울이 탄소중립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건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로 배출이 많이 일어나는 전 세계 대도시 그리고 주요 공단 모든 곳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사실 울산의 화학공단 같은 곳의 일반 대기는 서울보다 훨씬 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다. 즉 탄소의 나이로 보면 공단은 도시보다 더 미래에 사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탄소의 시간으로 볼 때, 인류가 하나의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도시, 공단 등 주요 배출원이 있는 지역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너무 앞서 가버린 지역의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지역이 얼마나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국가의 인프라가 부족한 것 같다. 탄소의 시간을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인 모니터링 체계가 구축된다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시간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아갈 때 기후변화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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