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무엇인가, 시공초월 판타지 소설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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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나 세계에 관한 질문을 던지거나 남기면,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다.
세상이나 삶에 대한 답을 내놓거나 제공하면, 대중성이 높은 작품이다.
작품이라는 틀 안에서 물음과 답 사이를 계속 오가며 진동을 줄곧 멈추지 않는 소설도 있다.
작가 안지숙의 세 번째 장편소설 '스위핑홀'(걷는사람 펴냄·사진)은 풍성하고 치밀하게 짠 이야기 속에서 질문과 답 사이를 활기차고 절실하게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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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의 의미 찾아가는 과정 그려
- 평행우주 이론·아나키즘 등 조화
삶이나 세계에 관한 질문을 던지거나 남기면,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다. 세상이나 삶에 대한 답을 내놓거나 제공하면, 대중성이 높은 작품이다. 더 많은 사람이 ‘답’을 쥐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거나 좋아한다. 홍상수 영화보다 마블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이 더 많다.
이건 ‘경향’이어서 늘 이렇지는 않다. 요즘 같은 초연결 시대엔 어떤 것이 더 높고, 어떤 것은 더 낮다는 식으로 규정할 수도 없다. 예술에서 초연결 시대란, ‘공감’이라는 요소의 중요도가 크게 올라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작품이라는 틀 안에서 물음과 답 사이를 계속 오가며 진동을 줄곧 멈추지 않는 소설도 있다. 이럴 때 소설은 긴장감 넘치는 줄타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작가 안지숙의 세 번째 장편소설 ‘스위핑홀’(걷는사람 펴냄·사진)은 풍성하고 치밀하게 짠 이야기 속에서 질문과 답 사이를 활기차고 절실하게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새해 벽두를 맞으며 주목할 만한, 부산 작가의 새 장편소설로 불쑥 다가왔다.
신화·전설, 성장소설, 게임 서사, 평행우주, 아나키즘, 체 게바라, 대학사회 부조리, 장기 이식과 이를 둘러싼 논란, 정의·공정에 관한 확신과 회의 그리고 허무와 성찰.
‘스위핑홀’에는 이토록 다채로운 요소가 어우러져 탄탄하고 세심하게 이야기를 뜨개질처럼 짜나간다.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유진은 온라인카페를 통해 알게 된 남자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제 발로’ 어딘가로 가고 있다. 유진은 ‘어느 정도 의료기기는 갖춰져 있고 의료진도 있겠지’ 기대했는데 웬걸, 차가운 도축장 분위기다.
엄마를 살리려고 자기 콩팥을 팔러 왔던 유진이 이러다 여기서 장기 이것저것 다 뺏기고 ‘헐렁해진’(18쪽) 상태로 죽겠구나 하는 공포에 빠질 즈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틀림없이 나타날 분위기의 알렉스가 단기필마로 등장해 유진을 구하고 은신처인 ‘나무달 카페’로 데려간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장편소설 ‘스위핑홀’의 앞머리는 4쪽짜리 프롤로그인데, 여기를 두어 번 읽으면 독자가 전체 이야기를 장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디 오더’(The Order)라는 중심 없는 점조직 같은 조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악행을 일삼으며 이 세상을 지옥처럼 만드는 것들을 잡아내 그들의 욕망으로 가득찬 ‘다른 세상’(여기서 평행우주 개념이 나온다)으로 보내 버리는(죽이는 게 아니라 보내는 거다) 조직이다.
디 오더 구성원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없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성취감·정의감이 충전될 뿐이다. 지난달 30일 안지숙 작가를 만나 “이건 아나키즘 느낌이네요” 물었고, 안 작가는 “그렇다. 아나키즘을 바탕으로 투쟁한 항일투사들은 오래된 내 관심 영역”이라고 답했다. 근데, 간단치가 않다. 나무달 카페를 중심으로 활약하는 디 오더의 중심인물 알렉스와 베티에게는 개인의 복수라는 강한 동기가 있다. 과연 이런 방식이 옳은가 하는 회의가 강하게 제기된다. 그 의문을 던지는 이가 어린 유진이다.
유진 스스로 ‘다른 세상’으로 뛰어들어 만나는 존재가 체 게바라인 점이 새 차원의 돌파구를 열어준다. 여기에, 다채로운 다른 요소가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어 ‘스위핑홀’을 고등어처럼 펄떡펄떡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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