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저예산 영화 되살려야 충무로가 산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2023. 1.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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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한국영화 과제

2022년 한국영화는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운 한 해를 보냈다. 코로나 국면에 따른 극장의 위축만이 아니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2022)과 홍상수의 ‘소설가의 각오’, ‘탑’이 한국영화 작가주의의 대표 격으로 흐름을 지속한 가운데, 독립영화에서는 김세인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이재은의 ‘성적표의 김민영’, 박송열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2021) 같은 신진의 등장이 있었고, 양영희의 ’수프와 이데올로기‘, 김동원의 ’2차 송환‘은 역사와 현재의 관계를 고민하는 다큐멘터리의 심도를 내비쳤다.

양영희 감독의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왼쪽)와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 한 장면.


작가의 독자적인 관점과 통제력을 관철할 수 있는 행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헤어질 결심’의 경우처럼 감독 개인의 국제적 명성과 문화 권력이 필요한 규모의 제작비 조달을 뒷받침하거나, 정반대 극점에서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도 운신할 수 있도록 스스로 초저예산의 한계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영화가 거둔 미학적 성취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영화계에 닥친 근본적인 문제의 징후를 드러내준다. 바로 주류 상업영화의 총체적 실패다. 최동훈의 ‘외계+인 1부’, 한재림의 ‘비상선언’은 메이저 영화사의 사운을 건 텐트폴 영화였지만,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고, ‘범죄도시 2’ ‘한산-용의 출현’ ‘헌트’가 흥행에 성공했지만, 침체된 극장의 흐름을 뒤바꿀 파급력은 아니었다. 이는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 진단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초호화 캐스팅, 장르 관성을 답습하는 내러티브, 실적이 검증된 기성 감독의 연출 등, 안정된 조건을 갖춘 한국형 블록버스터 기획에 200억~300억 규모의 거대 예산과 와이드 릴리스의 상영관 배분 등, 흥행의 물적 기반이 쏠리는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점점 득보다 실이 많음이 입증되고 있다. 영화사의 상업적 판단이 작품의 품위에 우선하면서 작가적 성향을 관철해온 감독은 타협과 절충으로 자기 주관과 미학을 희생한 불완전한 결과물을 내놓게 되고, 철저한 상업영화를 지향하는 경우는 기존 영화의 스타이미지, 관습화된 기호와 서사에 기대는 매너리즘을 반복하며 갈수록 열화되어 간다.

장기적 관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산업을 지탱해야 할 상업영화의 지형도에서 허리 역할을 할 중간 규모 영화가 극장에서 실종되는 점이다. ‘벌새’(2018)의 김보라, ‘죄많은 소녀’(2018)의 김의석 등 최근 한국 독립영화에는 괄목할 인재들이 거듭 나오지만, 인디펜던트에서 주목받은 신진 감독이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기 위한 교두보인 중간규모 상업영화의 자리는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심지어 장르적 완성도를 갖춰도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거나, 극장 개봉은커녕 OTT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제작비보다 홍보에 드는 비용이 더 커지는 바람에 공개를 망설이는 경우까지 종종 접하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한국영화 르네상스였던 2000년대 초반, 신인 감독들은 30억~40억 수준 제작비를 들인 중간규모 영화로 장르와 작가성을 조화시키는 재능을 입증하며 한국영화를 짊어질 루키로 떠올랐다. 봉준호는 ‘플란다스의 개’(2000) ‘살인의 추억’(2003), 장준환은 ‘지구를 지켜라’(2003), 류승완은 ‘피도 눈물도 없이’(2002)를 발표한 시대였고 1000만 영화는 드물었다. 그토록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던 건 중저예산 상업영화가 극장 개봉해 일정수준의 수익을 거두며 종잣돈 역할을 톡톡히 했고, 그런 영화에도 관객이 들 만큼 관객의 심리·경제 문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중저예산 상업영화의 역할은 OTT 드라마의 몫으로 넘어갔다. 영화사들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모든 패를 베팅하고, 주머니가 얇아진 관객은 올라간 기회비용을 보상받기 위해 ‘범죄도시 2’나 ‘탑건-매버릭’ ‘아바타-물의 길’ 같이 쉽고 안전한 선택으로 대거 몰린다. 작가주의와 다양성은 실종돼가고, 동맥경화된 한국영화에 새로운 피로 수혈될 신진 감독 대두는 낙타가 바늘귀에 드는 것처럼 어려워진다.


지금 한국영화는 지속불가능한 모델을 고집하며, 빙산에 부딪친 타이타닉호처럼 한계점에 직면해 침몰해가고 있다. 마치 고전기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클레오파트라’(1963)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면서 일거에 몰락한 역사를 상기케 한다. 옛 질서가 붕괴하고 나서야 뉴 아메리칸 시네마와 ‘영화 악동’(movie brat) 세대 출현을 맞았던 것처럼, 한국영화도 지금의 파국을 견뎌낸 후에 있을 뉴웨이브를 기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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