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생각이 나나” 은둔하던 中빅테크 수장 180도 변신
지난달 30일, 지난 1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알리바바의 마윈 창업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농촌 교사들을 위한 마윈 재단 자선행사에 화상으로 참여해 약 2분 30초 동안 축사를 했다. 마윈은 이날 교사들을 격려하면서 “하루빨리 여러분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마윈은 지난 2020년 중국 정부의 경제 정책을 공개 비판했다가 업계에서 사실상 추방된 상태였다. 중국 현지에선 “알리바바 회장직을 내려놓으며 은둔했던 마윈이 컴백 카드를 만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2년 동안 중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움츠렸던 빅테크 기업들에서 대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알리바바·텐센트·징둥닷컴과 같은 빅테크들은 정부 압박에 총수들이 줄사퇴하고, 계열사 상장을 포기하거나 주요 사업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 빅테크 기업의 오너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 실패와 심각한 경기 침체 탓에 중국 정부가 다시 중국 빅테크에 손을 내밀었다는 분석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중국 빅테크 오너들이 일제히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은 중국 당국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긴 잠에서 깨어나는 中 빅테크들
장융 알리바바 회장은 지난 29일 2023년 경영의 핵심 키워드를 ‘진(進·전진)’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 ‘정(定·안정)’을 키워드로 삼았던 것에 비하면, 올해에는 공격적으로 신사업을 발굴하고 시장 공략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장 회장은 이날 이례적인 고위 임원 인사도 했다. 중국 펑파이신문은 “이번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총괄(CPO)을 바꾸고 최고기술책임자(CTO)를 80년대생으로 교체한 것”이라며 “2023년에는 대대적인 세대교체와 함께 이커머스·클라우드·핀테크 등 신산업에서 성장을 이루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게임 기업인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은 지난달 15일 100여 명의 임원이 참석한 내부 전략회의에서 일부 사업 담당자들에게 “사업이 망해가는데 골프 칠 생각이 나느냐, 부패가 도를 넘었다”며 “알아서 흑자 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사업부를 통째로 잘라내겠다”고 경고했다. 중국 빅테크 총수 가운데 가장 은둔형으로 꼽히는 마화텅 회장이 자사 사업을 공개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현지에선 규제로 마화텅 회장이 옴짝달싹을 못 하는 지난 2년 동안 그룹 내부에 팽배한 나태함에 격노했다는 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텐센트의 올 1~3분기 누적 매출은 4096억위안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52% 줄었고, 순이익률도 급감했다. 텐센트의 실적이 역성장한 것은 코로나 발발 후 처음이다. 현지 IT업계에선 “텐센트 내부에 과거 고속성장을 이루던 시기에 있었던 건강한 긴장감이 돌아왔다”는 평이 나온다.
중국 2위 온라인 쇼핑몰인 징둥닷컴의 류창둥 창업자도 지난 11월 내부 전략 회의에서 “현란한 PT(발표자료)와 숫자로 날 속이려 들지 말고, 실질적인 수익을 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역시 지난 4월 징둥닷컴 CEO(최고경영자)직을 내려놓은 후 은둔 생활을 했지만, 지난달부터 다시 소셜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며 조직 ‘기강 잡기’에 나섰다. 이와 함께 중국의 ‘배달의 민족’인 메이퇀그룹의 왕싱 창업자 역시 최근 침묵을 깨고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마켓과 연계한 총알 배송 등 수익성 신사업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레이쥔 샤오미 창업자 역시 고위 임원 물갈이에 나서며 수요가 점차 떨어지는 스마트폰 대신 전기차 산업에서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中 당국, ‘빅테크’에 기대 경제 살린다
당국의 주목을 받지 않기 위해 숨기 급급했던 빅테크들이 다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최근 들어 중국 정부의 경제 정책이 친(親)빅테크 성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코트라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예상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1%로, 코로나가 발발한 2020년(2.2%)에 이어 역대 최저 수준이다. 특히 성장이 정체된 빅테크 기업들은 올들어 잇따라 대규모 감원에 나섰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자 젊은층의 취업난도 심화됐다. 그동안 경제 고성장을 앞세워 정치적 반발을 억눌러왔던 시진핑 주석에게는 최악의 위기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과거 중국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 돼주었던 빅테크들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의 최근 연설에는 빅테크 부자들의 자산을 나누도록 강요해온 ‘공동부유’라는 슬로건이 아예 사라졌다. 알리바바의 본사가 있는 저장성 지방정부 권력 서열 1위인 이롄훙 당서기가 지난달 알리바바 본사를 깜짝 방문한 것도 당국이 빅테크에 제시한 ‘화해 제스처’로 읽히는 대목이다. 국내 IT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중국 빅테크들은 정부의 도움을 받고 급성장했었다”라며 “올해엔 정부의 지지를 받게된 이들 기업이 빠르게 사업을 재정비하고 수익 창출에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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