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완결이라는 판타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은 이슈만큼이나 거대한 논쟁을 낳았다. 한쪽에서는 드라마 역사상 역대급 최악 엔딩이라는 비판부터, 다른 한쪽에서는 일반적인 드라마 문법을 따른 안전한 엔딩의 구조였는데 대중 소비자들이 웹 콘텐츠 시대에 너무 서사를 자극적이고 판타지적으로만 소비한다는 지적이 맞붙었다.
나는 웹소설 작가이자 연구자이다 보니 이런 논쟁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기껍다. 웹소설의 시장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으나 그것은 소비자의 높은 충성도 때문일 뿐, 그 안의 소비자 모수의 총량은 그렇게 높지 않다. 그렇다 보니 웹소설 개별 작품에 대한 비웹소설 독자의 관심이 많아질수록 독자층이 좀 더 확대되지 않을까 기대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기대엔 다른 근거 또한 존재한다. 바로 판타지의 기능에 대한 것이다. 웹소설을 비롯한 장르문학은 판타지, 즉 환상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러한 환상성은 현실이 혼란스러울수록 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환상이라고 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무맹랑한 공상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문학 이론에서 환상은 단순한 공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좌절과 우울, 슬픔과 역경들을 마주한다. 내가 알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것의 모습을 만들어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환상이다. 이러한 환상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이다. 독자들은 현실에서 볼드모트 같은 악당 마법사를 만날 리는 없겠으나 현실에서 자신만의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됐을 때 볼드모트와 맞서 싸우던 해리포터의 모습을 떠올리며 버티고 극복할 힘을 얻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작가로 유명한 J R R 톨킨은 좋은 판타지 작품의 특징은 이처럼 세상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고, 즐거움을 주고, 마침내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러한 기능을 위해선 유카타스트로피(eucatastrophe)라고 불리는 해피엔딩을 통해 어려움이 극복되는 상황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몇 년은 죽음과 경제위기 등 침체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재벌집 막내아들>에 열광했던 건 드라마 속 환상이 현실을 버틸 수 있게끔 즐거움을 줬기 때문이리라. 작금 사회의 가장 큰 불행은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들 중 어떤 것도 깔끔한 엔딩이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몇 년이면 끝나리라 예견했던 코로나19는 벌써 3년째 변이종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고, 각종 정치 현황의 진행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재벌집 막내아들> 속 성공을 단순히 열광한 것이 아니라, 환상을 통해 현실을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었던 것이다. 이러니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의 엔딩은 환상이라는 도구를 택해놓고도 환상이란 기능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방식이라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제 해는 바뀌었지만 아직도 많은 이슈들이 여전히 미완인 상태이다. 2023년 새로 다가오는 해에선 좋은 완결이란 판타지를 마주할 수 있을까. 사회의 이슈들이 하나둘 완결된다면 이런 사소한 콘텐츠의 완결에 일희일비할 일은 없을 텐데. 부디 그 어떤 판타지보다도 환상적인 완결을 소망한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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