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핵화 떠나, 이산상봉 제의라도 해야
새해가 시작됐고, 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설 명절이지만 ‘고향’과 ‘가족’이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북녘 땅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과 탈북민이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어쩌면 끝내 서로의 생사도 확인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살아계실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을 뿐이다.
지난 세월 이산가족 상봉 현장에서 피 말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헤어질 때가 다되어도 서로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는 것을 보는 내 마음이 미어지도록 아팠다. 나는 저 시간들이 멈추어 서로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남북 이산가족과 탈북민들은 고향 땅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다. “아버지, 어머니 어느 하늘 아래 계시더라도 뵙는 그날까지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라고 북녘을 향해 소리친다.
분단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더디게만 진행돼 원망스럽다. 이산가족 문제는 이념적·정치적 상황에 관계없이 인도적 원칙에 따라야 한다. 그동안 북측은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다 해결될 문제라며 대북지원과 남북 간 정치적 문제를 연계해 왔다.
그러나 최근 남북관계 상황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제7차 핵실험을 코앞에 두고 있는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대남·대외 강경기조 유지를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등 군사적 긴장을 연일 고조시키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산가족은 정부가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회담을 제의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2022년 11월 말 기준 생존 이산가족은 4만2888명이고, 10명 중 6명이 80세 이상 고령자이다. 매년 3000여명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더 이상 미적거려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비핵화 문제를 북한 쪽에 떠넘기는 것으로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닌 것이다. 2008년 ‘남북 이산가족 생사 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률은 이산가족 생사 확인과 교류 확대, 남북회담 추진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남북 교류와 이산가족 상봉의 과제는 통일의 그날까지 어느 정권에서나 유효하다.
북한 주민과 정권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북한 주민은 동포이자 통일의 동반자로 도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먼저 손을 내밀어 끊긴 대화를 잇고 이산가족의 인간적 고통을 덜어 주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인도적 분야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생사 확인이 가능하도록 호소하는 등 다각적인 시도를 이어가야 한다.
가깝고도 먼 북녘 땅과 남한 땅에 진정 이산가족의 슬픔과 통일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 것은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인가. 빛바랜 부모님 사진을 보며 이산가족과 탈북민들은 울고 있다.
전원균 전 대한적십자사 동우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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