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테이 窓]고수(高手)를 기다리며

김창훈 KRG 부사장 2023. 1. 3.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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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훈 대표

과거 농경사회부터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최첨단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고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는 현 시대에도 고수는 분명 존재한다. 고수(高手)는 사전적 의미로 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기술이나 능력, 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고수와 비슷한 뜻으로 달인(達人)이란 단어가 있다. 달인은 널리 사물의 이치를 통달한 사람을 말한다. 방송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은 우리 일상생활에 숨어 있는 달인들을 소개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고수는 드물고 희귀하다. 우리 같은 일반인은 대부분 중수나 하수에 머무른다. 누구나 고수를 추구하지만 말처럼 고수가 되는 건 쉽지 않다.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닌 경우도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공지능 같은 첨단기술들이 고수의 자리를 대체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고수는 어떤 사람들일까. 골프에서 고수와 하수를 구분할 때 흔히 드는 비유가 있다. 고수는 잘 안 되는 샷을 연습하지만 하수는 잘되는 샷만 연습하고 고수는 다음 샷을 염두에 두지만 하수는 다음 샷을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수와 비(非)고수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통찰력에 있을 것이다. 고수는 예상되는 문제를 미리 생각하고 이에 맞게 최적의 대비책을 세우고 실행한다. 그리고 고수는 남 탓을 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하에서 움직인다. 남 탓을 하기 전에 내가 부족한 게 무엇인지 복기한다. 고수는 잘난 척하지 않는다. 남들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개의치 않고 묵묵히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의 할 일을 찾아 그저 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명예나 부, 권력을 추구한다면 이미 고수가 아니다. 고수는 허허벌판에서 외로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인류 역사 이래 세상은 오염된 리더들이 지배하는 회오리에 휘말린 적이 허다했지만 이처럼 고수들이 묵묵히 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금 세상은 살 만한 것이다. 아무리 AI가 초지능을 구현하는 시대가 된다 해도 고수의 영역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무엇보다 지도자나 의사결정권자들은 테크니컬한 측면의 고수가 아니라 통찰력을 갖춘 고수가 돼야 한다. 지도자가 통찰력을 갖춘 리더십의 고수가 돼야 국민이나 집단은 안심한다. 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끈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리더십의 고수였다. 그의 뛰어난 판단으로 됭케르크 철수작전은 성공적으로 완료됐고 히틀러의 야심을 꺾을 수 있었다. 처칠은 독일의 침공으로 불안에 떠는 영국 국민에게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고,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국민을 독려했다. 반도체 신화를 이룬 이병철 삼성 회장은 1976년 위암투병 와중에도 모두 반대하고 나선 반도체사업에 승부수를 던졌다. 이병철 고수의 승부수였다. 결과는 우리가 지켜본 바 그대로다. 리더십의 고수로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거스 히딩크 감독도 있다. 그는 취임 후 전술훈련보다 체력훈련에 집중하는 한편 젊은 선수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 월드컵 평가전에서 프랑스에 5대0, 체코에 5대0으로 패하면서 '오대영 감독'이란 비아냥을 들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결국 4강신화를 달성하면서 우리 국민에게 불멸의 추억을 안겨줬다.

고수는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도 실수하고 실패한다. 하지만 실수를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극복할 수 있어야 고수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무리 재기가 뛰어나고 능력이 출중해도 통찰력이 없다면 그는 준(準)고수일 뿐 진정한 고수가 아니다.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쉽지 않다. 아니 어느 해보다 힘들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어려움이 가중되는 이 시기에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구세주가 아니다.

지금은 통찰력을 갖춘 고수가 필요한 시대다. 인공지능나 빅데이터 같은 첨단 디지털기술이 세상을 뒤흔들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시대는 통찰력 있는 고수의 능력이 더 필요한 세상이다. 첨단기술을 통해 얻은 조각 조각의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분석한 정보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역설적으로 지금 시대는 더 높은 수준의 고수를 필요로 한다.

김창훈 KRG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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