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가 된 체육소녀

서재원 기자 사진=권욱·이호재 기자 2023. 1. 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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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골프를 그만둘까’라는 고민을 수없이 했다. 유효주에게 6년의 시간은 그만큼 힘들었다. 2부 투어에서의 2년을 어렵게 버텨낸 뒤 다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 투어로 올라왔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2022년에도 10월 위믹스 챔피언십 전까지 출전한 25개 대회 중 절반에 가까운 12개 대회에서 컷 통과에 실패했다.

하지만 골프를 끊는 건 그 무엇보다 힘든 일이었다.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거듭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당장 내년에 투어를 안 뛴다고 생각하니 슬픔부터 올라왔다. 그래서 즐기기로 했다. 웃으면서 버티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믿음 하나로. 그 결과 유효주는 10월 위믹스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또 하나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완성했다.

두 번째 우승은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유효주는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나아가려 한다. ‘지금 이렇게 골프를 하고 있는 게 행복한 거구나’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KLPGA

위믹스 챔피언십 이후 달라진 유효주의 겨울

위믹스 챔피언십 전까지 유효주를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지난 시즌 출전한 대회에서 단 한 번도 톱 10에 들지 못했으니 말이다. 대회에는 꾸준히 출전했으나 컷 통과에 실패한 대회가 많았고 상금 랭킹은 87위까지 추락했다. 데뷔 시즌인 2017년을 제외하고 매년 참가해왔던 시드전에 또 참가해야 할 상황이었다.

“사실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10월 27~30일)을 끝으로 시드전을 준비할 생각이었어요. 시드전을 대비한 연습 라운드를 하려고 전남 무안CC까지 예약을 해놨죠. 오로지 시드전만 생각하고 마음 편히 쳤던 것 같아요.”

마음을 비웠기 때문일까. 위믹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선두 한진선에 2타 뒤진 공동 3위로 출발한 유효주는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타를 줄이며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워낙 예상치 못했던 우승이라 본인도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모두들 왜 안 울었냐고 하는데 실감이 나지 않아 눈물조차 나지 않더라고요.”

데뷔 후 104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거둔 생애 첫 우승.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하루 만에 약 2000명이 늘어났고 동료들의 축하 메시지도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올겨울 계획이 모두 급변했다. 시드전만 생각했는데 휴가를 떠날 수도 있는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제 MBTI가 완전 J(계획형)거든요. 나름대로 계획을 짜놨는데 다시 계획을 짜야 했어요. 그래도 조금 더 행복하게 계획을 짤 수 있어 좋네요.”

깜짝 우승으로 ‘신데렐라’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신기하게도 유효주는 원래부터 밤 12시 전에는 집에 꼭 들어간다고 한다. “제 기준에서는 일탈을 해본 게 없어요. 집에 너무 늦게 들어간 적도 없고요. 클럽을 가본 적도 없고 친구들과 술 한 잔을 해도 집에서 마시는 게 다예요.”

피겨, 테니스, 농구 등...체육 소녀를 만든 아버지

유효주의 우승 순간을 가장 뿌듯하게 지켜본 이는 골프백을 메고 있던 아버지 유광수 씨였다. ‘첫 우승은 무조건 아빠랑 하겠다’고 말한 딸이 그렇게 대견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죠. 너무 바르고, 착하고, 또 쾌활하고···.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어요.” 아버지의 말이다.

지금의 유효주를 만든 이는 아버지 유광수 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도 선수 출신인 그는 아마추어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운동 신경이 뛰어났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유효주도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운동을 접했다. 피겨스케이팅을 시작으로 발레, 테니스, 농구 등을 배웠고 골프는 중학교 1학년 여름 방학부터 시작했다. 3학년 때까지는 정규 수업을 다 들었으니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많은 운동을 배웠는데 가장 적성에 맞는 스포츠가 골프였어요. 가장 좋아하기도 했고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정말 좋아했어요. 피아노 학원은 ‘땡땡이’를 쳐도 운동하는 시간은 빼 먹지 않았죠.”

체육 소녀 유효주가 만약 골프 선수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유효주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운동을 좋아하니 체육 쪽으로 갔을 것 같아요. 굳이 운동을 안 하더라고 공부를 해서 체육학과를 간다거나 운동과 관련된 직업을 찾았을 걸요.”

6년간 103개 대회...유효주가 버틴 시간

유효주는 사실 그저 그런 선수에 가까웠다. 데뷔 첫해인 2017년에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컷 통과와 탈락을 반복했고 그해 10월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깜짝’ 3위를 기록한 게 거의 유일하게 두드러진 성과였다. 2년 차에는 더 내리막을 탔다. 출전한 25개 대회 중 9번만 컷 통과에 성공했고 시드전마저 통과하지 못해 2부 투어로 내려가야 했다.

“처음 KLPGA 투어를 실감했을 때 그저 꿈꾸던 무대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렜던 것 같아요. 정말 잘하고 싶었고 그만큼 욕심도 많았는데, 점점 안 나오는 성적을 보고 ‘나는 재능이 없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2부 투어에서 2년을 버틴 유효주는 2021년 KLPGA 투어로 복귀했지만 롯데 오픈에서 7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곤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몸도 말을 듣지 않았다. 어깨 부상으로 원하는 스윙이 나오지 않았다. 답답함이 반복되니 포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최근까지도 ‘골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2022년 초반에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니 되게 슬프더라고요. 제가 내년에 투어를 안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슬펐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유효주는 대회를 최대한 즐기기 위해 휴대폰 카메라를 들었다. 친구이자 선수인 전우리, 강지선과 함께 대회장에서 재밌는 동영상을 찍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즐거움을 찾았다.

골프에 대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20년 5월에는 큰 결심을 했다. 9년 간 함께했던 코치를 떠나 김대원 프로에게 스윙을 교정 받았다.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스윙으로 변화를 준 후 조금씩 볼이 잘 맞아갔고, 꾸준한 관리로 지독했던 어깨 통증도 완화됐다. “김대원 프로님을 만나 어깨에 무리 가지 않는 스윙을 배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9년 동안 가르쳐 주신 이경훈 프로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정말 커요. 저에게는 두 번째 아빠 같은 느낌이에요. 정말 많이 도와주셨고 정말 많이 배웠어요.”

시구 하는 유효주. 연합뉴스

유효주의 에너지 ‘SSG’

자신의 KLPGA 투어 두 번째 우승과 SSG 랜더스의 프로야구 KBO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니 유효주는 “정말 못 고르겠다”고 답했다. 유효주에게 SSG는 그 정도로 큰 존재였다. 마지못해 “제가 우승하는 게 더 좋겠죠?”라고 했지만 그녀의 동공은 흔들리고 있었다. SSG는 실제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골인했다.

유효주가 골프 외에 유일하게 ‘꽂힌’ 것도 야구였다. SSG의 전신인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팬이라고 밝힌 유효주는 골프보다 야구 얘기를 할 때 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제 유일한 취미는 야구예요. 거의 매 경기 다 챙겨 보고 있죠. 중학생 때 아빠랑 한국시리즈를 보러 갔는데 김광현 선수가 나왔어요. 아빠가 ‘저 선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던지는 선수야’라고 설명해주셨는데 거기에 꽂힌 거죠. 그때부터 SK 팬이 됐어요. 김광현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뒤에는 최지훈 선수의 팬이 됐고요.”

유효주는 야디지북에도 SSG 로고가 있을 만큼 열혈 팬으로 유명하다. 한 인터뷰를 통해 SSG 홈 구장에서 시구 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는데 이를 본 구단 관계자의 제안으로 지난해 7월 마운드에 서기도 했다. “사실 첫 우승을 한 뒤 시구를 하고 싶었는데 구단 관계자분께서 시구를 하고 좋은 기운을 받아서 우승하면 되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실제로 우승을 하니 신기했어요. 구단 관계자분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셨고요.”

유효주는 또 시구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거라고 한다. “최지훈 선수의 ‘찐팬’이라서 시구 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일정이 안 맞아 아쉬웠어요. 제 인생에서 제일 떨렸던 날이었던 것 같아요. 제대로 던지지도 못했는데 해설자님이 ‘어프로치 시구’라고 하셨더라고요. 다음에 한 번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PROFILE

출생: 1997년

정규 투어 데뷔: 2017년

소속: 큐캐피탈파트너스 골프단

주요 경력:

2022년 위믹스 챔피언십 우승

2021년 롯데 오픈 7위

2017년 KB금윰 스타챔피언십 3위

서재원 기자 사진=권욱·이호재 기자 jwse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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