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 새해 '尹' 대신 '文' 찾은 의도는
"文 '李 대표 중심으로 노력해달라' 말씀" 메시지 전달
尹 신년인사회 불참 이유 묻자 李 "처음 듣는 얘기"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만남이 또 불발됐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초청한 '신년인사회'에 불참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 예방을 위해 PK(부산·경남)행을 택했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민생경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고 힘을 실어줬다. 이 대표의 검찰 출석을 앞두고 '사법 리스크' 우려가 짙어진 가운데, 당내 불협화음을 줄이고 최대 계파인 친문계와 단일대오를 구축해 '당내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2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아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당대표 취임 후 두 번째 방문이다.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문 전 대통령과 함께 김정숙 여사가 직접 만든 평양식 온반으로 오찬을 하며 정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예방 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가 평산 문 전 대통령 내외를 찾아뵙고 신년 인사를 드린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문 전 대통령은 먼저 찾아준 이 대표와 최고위원들에게 새해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시라 덕담했고, 민주당이 잘해서 국민에 희망이 되는, 희망을 주는 정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예방 후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대표 중심으로 민생 경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는 말씀을 주셨다"며 "무엇보다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선 안 된다'는 점에 대통령님도 저도 깊이 공감했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번 예방이 새해 인사 차원이라며 특별한 의미 부여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지만, 예방 후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적극 홍보했다. 예방 사진을 웹하드에 게시해 취재진에게 공유했고, 이 대표는 관련 SNS글의 표현을 두 차례 수정할 정도로 문구 하나하나에 정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당초 "'대표 중심으로 민생 경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는 말씀을 주셨다'"라며 문 전 대통령을 '말씀의 주체'로 뒀다가 "'대표 중심으로 민생 경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가 오갔다"로 고쳤고, 이내 다시 처음 표현으로 되돌렸다.
반면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이 초청한 '신년인사회'에는 불참했다. 민주당은 부산 현장 최고위와 문 전 대통령 예방 등 지역 일정이 먼저 잡혀 있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천준호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2시경 행정안전부로부터 신년인사회 초청 이메일이 저희 대표 이메일로 접수됐다"며 "오후 6시까지 회신달라는 요청이 왔었고, 저희는 오늘 예정된 일정이 있어서 참석 불가하다는 내용으로 행안부에 회신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의 초청 방식도 문제 삼았다. 천 비서실장은 "이메일로 통보됐고 저희에게 따로 행사 관련 참석 요청이 있던 상황이 아니었고 선약도 있어서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며 "야당 지도부를 초청하면서 전화 한 통 없이 이메일 '띡' 보내는 초대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신년 인사회 초청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도 했다. 전화나 대면 없이 이메일 초대장만 받았다는 점을 부각한 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야당과 소통하는 건 대통령 정무수석실에서 한다. 이메일로만 (행사 참석을 초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 투샷 잡히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선(先) 일정이 있다는 점을 불참 이유로 들었지만, '강한 야당'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적인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이 5부 요인과 각계각층 인사를 초청하는 신년인사회는 매년 치르는 정례 행사이기에 만남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일정 조율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25일까지도 문 전 대통령 사저 방문 일정을 확정하지 않고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의당에 따르면 이정미 대표 역시 행정안전부 실무진으로부터 이메일 초대장만 받았을 뿐, 전화를 통한 초청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이정미 대표는 이날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에게 날 선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래 고민했지만 대통령을 만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다. 오늘 대통령께 그 말씀을 꾹꾹 눌러쓴 자필 편지와 얼마 전 타계하신 고 조세희 작가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한 권을 선물했다"며 "법 앞에 힘 있는 사람만이 우선되는 사회가 아니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며 나아가 약한 자들을 먼저 지켜주는 '법의 정의'가 우선하는 시대를 열어달라 부탁드렸다"고 전했다. 자필 편지에는 야당과의 적극적인 소통, 안전운임제 3년 연장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여당은 민주당 지도부가 대통령실을 핑계로 들며 불참했다고 비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여야 공히 똑같이 참석 요청 과정을 진행했음에도 특별 대우를 바라며 불참 핑계마저 대통령실로 돌리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신년인사회 참석 요청을 두고 '예의'와 '관례'를 따지는 민주당의 모습이 국민 앞에 좀스럽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대통령 초청 행사에 야당 대표가 불참하는 일은 과거에도 종종 있어 왔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첫 '신년인사회' 때도 야당에선 이정미 정의당 대표만 참석하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이 대표가 당대표 취임 후 줄곧 "정치를 떠나 민생을 구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허심탄회하게 머리 맞대고 논의하자"면서 윤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회담을 요청해온 만큼 이번 불참이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민주당 지도부의 신년인사회 불참에 대해 "협치할 분위기가 사전에 전혀 안 된 것이다. 정식으로 팩스나 전화 등 다방면에 걸쳐서 해야 했다. 여러 방법으로 초청했는데도 민주당이 거부했다면 윤 대통령이 긍정 평가를 들었을 것이다. 성의가 조금 부족했다. 이 대표 역시 (적극적이지 않은 초청에도) 참석했다면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협치의 장을 마련할 기회였는데 양쪽 모두 놓쳤다"고 지적했다.
반면 신년인사회 불참은 '사법 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가 내부 결집과 강한 야당 전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이 대표는 지금까지 협치를 주장해왔고 여러 차례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검찰 소환(통보)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신년인사회에 참석한다면 민주당 당원과 의원들 사이에서 '살겠다고 고개 숙인다'라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며 "또, 윤 대통령이 조언을 받을 만한 준비가 돼 있으면 고민하겠지만 (참석해도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이 대표는 (협치로) 지금 지지율 2%, 3% 올리는 것보다 지지층 결집이 더 중요하다. 문 전 대통령과 같이 손을 잡고 당의 단합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 예방은) 내부 결집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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