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밖 거주 피폭자 수당 지급 이끈 곽귀훈씨 별세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이면서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피해를 입은 뒤 해외로 이주한 사람에게도 일본 정부가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피폭자 곽귀훈씨(郭貴勳·98)가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항년 98세.
교도통신도 일본 시민단체 ‘한국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모임’ 이치바 준코 회장의 말을 인용해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고인은 1944년 9월 전주사범학교 5학년 재학 때 히로시마 서부에 있던 부대로 징집됐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당시 원폭 투하 지점에서 약 2㎞ 떨어진 공병대에서 파견 근무 중이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상반신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 후 귀국한 뒤 일간지에 피폭 수기를 연재해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를 제기했고, 1967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를 결성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보상은 끝났다”며 거절했다.
그는 1998년 입원 치료차 일본에 갔다가 7월 귀국 후 수당 지급이 중단되자 같은 해 10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 정부가 원폭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원호 수당을 일본 밖에 거주한다고 해서 못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오사카지법에 소송을 냈다. 2001년 6월 1심과 2002년 12월5일 고법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이 판결 덕분에 해외에 거주하는 원폭 피해자 5000여명이 매년 1인당 400만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게 됐다. 여기에는 3200여명에 이르는 한국인 생존피폭자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3년 원폭 피해 경험과 재판 과정을 담은 책 <나는 한국인 피폭자다>를 출간했다.
고인은 대한산악연맹이 선정한 ‘산악계의 별 50인’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산악인이기도 했다. 1962년 대한산악연맹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고, 이후에도 이사와 감사를 맡으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1971년에는 국내 최초의 해외원정대였던 대만 옥산 원정대장을 맡았고, 1995년과 1997년 티베트 탐사에 나섰다.
고인은 2일 새벽 발인을 거쳐 전북 임실 선영에 안장됐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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