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준이 대박 낸 ‘아폴로’처럼…경차, 다시 달릴까

김상범 기자 2023. 1. 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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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불던 경차 시장 ‘꿈틀’
2015년부터 판매량 쭉 내리막길
작년 현대차 캐스퍼가 반등 주도
‘박스카’ 매력에 레이도 인기 상승

“순양자동차의 사활이 걸린 신차 ‘아폴로’는 실패가 예견된 상품입니다. 경차로 돈을 버는 길은 박리다매, 싼값에 많이 파는 거죠. 그런데 아폴로는 고급 내장재와 부품을 쓴 탓에 싼값에는 못 팝니다. 게다가 경차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 많이 팔 수도 없고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주인공 진도준(송중기)이 순양자동차의 경차 ‘아폴로’를 소개하고 있다. JTBC 제공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 진도준(송중기 분)이 순양차의 야심작 ‘아폴로’의 마케팅 회의에서 내린 진단이다. 경차 아폴로의 흥행 여부에 순양차의 운명이 걸린 만큼 그는 절박했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낸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국가 대표팀 성적에 따라 아폴로를 경품으로 뿌리기로 했다. 16강에 400대, 8강에 500대, 그리고 4강에 오르면 1000대. 물량 공세로 화제성을 잡는 프로모션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극중 아폴로는 “최단 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경차”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쾌거를 거둔다.

드라마 속 2002년처럼, 현실 세계의 2022년은 ‘경차 부활’의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인가. 그동안 찬바람 불던 경차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 2015년 이후 7년 만에 경차 내수 실적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중형급 이상의 세단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같은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모습이다.

업계에 따르면 2022년 1~11월 경차 누적 판매량은 12만2453대로 2021년 같은 기간(1~11월)의 8만6267대 대비 43.6%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전체 승용차 판매량이 4%가량 줄어든 데 비하면 돋보이는 성장이다. 경차 연간 판매량이 10만대를 넘긴 것은 2019년 이후 처음이다. 이미 2021년 전체 판매량(9만5305대)도 뛰어넘었다.

현대차 캐스퍼가 반등을 주도했다. 2022년 캐스퍼 판매량은 4만4493대로 전년 같은 기간(1~11월) 대비 6배 이상 급증했다. 기아 레이도 2022년 11월까지 4만257대가 팔리면서 2021년 전체 판매량을 압도했다.

경차는 보통 경기 침체기에 잘 팔려왔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의 경차 판매량은 직전 연도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난 15만6521대였다. 순양차 아폴로의 모델이 된 대우 마티즈의 출시 시기가 1998년이다. 마티즈는 출시된 해에만 10만대 가까이 팔리며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경차 판매량은 꾸준히 늘어 2012년에는 20만2313대로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2015년부터 경차 판매량은 줄곧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러다 2022년 처음으로 반등에 성공한 것이다. 다만 최근의 경차 부활을 단지 거시경제 상황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준금리가 오르기 전인 2022년 상반기에도 잘 팔렸기 때문이다. 경차의 출고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타 차종 대비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해 SUV 등 인기 차종은 최종 인도까지 1년 넘게 걸리는 등 심각한 병목 현상을 겪었다. 반면 경차 모델들의 대기 기간은 1~3개월 남짓에 불과했다. 경차가 다른 차종에 비해 고급 옵션이 적어 필요로 하는 반도체 부품 숫자도 적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생겨난 ‘차박(차에서 숙박)’ 같은 레저 문화도 경차의 인기에 기여했다. 현대차 캐스퍼와 기아 레이는 “경차이지만 차박이 가능하다”는 점을 앞세웠다. 이 같은 마케팅이 합리적인 가격에 캠핑을 즐기려는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분석된다. 이외에도 75만원 미만 취득세 전액 감면, 개별소비세 면제, 유류비 환급, 고속도로 통행료 및 공영주차장 50% 할인 같은 정책적 혜택도 매력적이다.

기아 모닝은 전년비 판매량 감소
한국지엠, 스파크 생산 중단 결정
업계, 전기 경차로 ‘돌파구’ 모색

하지만 앞으로도 경차가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산 경차 ‘4형제’ 중 캐스퍼·레이를 제외한 두 차종의 인기는 점차 시들고 있다. 기아 모닝, 쉐보레 스파크는 2021년 대비 판매량 감소를 겪었다. 한국지엠의 경차인 스파크는 생산이 중단되기까지 했다. 이들과 같은 경차 등급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레이는 알찬 공간감을 확보한 ‘박스카’ 이미지를, 캐스퍼는 ‘최초의 경형 SUV’라는 점을 내세워 차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시각이 대다수다. 게다가 2022년 잘나가던 경차 판매량도 연말에는 다소 주춤했다. 현대차는 12월 캐스퍼 재고 할인을 진행했다. 금리 인상으로 신차 수요가 꺾이며 재고가 늘어난 데 따른 프로모션인데, 현대차의 재고 할인은 캐스퍼가 유일했다.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모델인 경차를 추가해 시장의 돌파구를 열려 하고 있다. 캐스퍼 생산을 담당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2024년 전기차 양산 체제에 돌입할 계획이다. 기아 레이도 2023년 2세대 전기차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관건은 주행거리다. 경차에 탑재가 가능한 작은 배터리로는 400㎞가 넘는 최대 주행거리에 익숙한 전기차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다. 이미 기아도 2012년 레이 1세대 전기차를 내놓은 바 있으나 짧은 주행거리(도심 기준 139㎞)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가볍고 간편한 도심용 자동차’라는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면서도, 충분한 주행거리를 제공하는 고효율 배터리 시스템을 갖추고, 동시에 ‘가성비’까지 확보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내는 게 경차 흥행의 최대 과제일 것으로 보인다.

좁은 국토 대비 높은 인구밀도를 고려하면 현재의 경차 시장을 정책적으로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전기차 전환 이후 페이스리프트 등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라며 “2~3가지의 경차 모델이 더 추가돼야 (해당 세그먼트가)주도권을 잡고 움직일 수가 있고 정부도 경차 혜택을 추가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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