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초대 금융위원장 “지금 한국 경제는 복합위기…즉각적 한 방으론 해결 못한다”
올해는 전반적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공포가 화두 될 듯…자금시장 경색·투자자 공포뿐 아니라 실물경제 위축 우려
국민연금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으로 추진해 개선된 노후 보장의 밑그림 필요
깊어진 미·중 갈등에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으로 각국이 생존 전략 짜야 하는 상황…구조 개혁 통한 ‘경제 체질 개선’이 핵심 과제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거품이 꺼지면서 2008년 세계 5대 투자은행(IB) 중 하나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했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로 보고 있다. 금융위기 충격을 맞은 2009년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저치다. 코로나19 사태로 풀려버린 유동성과 고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과 긴축 통화정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세계 공급망 붕괴의 여진이 계속되면서 2023년 경제위기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까. 15년 전 출범한 금융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장관급)으로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했던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73)을 만나 새해 경제전망과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19일 서울 삼성동 세계경제연구원 사무실에서 박병률 경제부장이 진행했다.
- 올해 한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는지.
“전반적으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와 공포가 화두가 될 것으로 본다. 자금시장 경색, 투자자의 공포뿐 아니라 실물경제의 급속한 위축이 우려된다. 한국은 지난해 반도체 등 주력산업 수출이 급속도로 줄었다. 지난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위기도 확산되면서 고물가 상황 타개가 핵심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렸다. 올해도 인플레이션 상황은 계속되겠지만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위축 효과가 1년~1년6개월의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기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2020년 등) 단기적 금융 충격 차원보다도 훨씬 파장이 클 수 있고 실물경제 악화도 두려운 상황이다. 주요 기관의 세계 경제성장 전망치도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을 제외하면 최근 30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도 2023년 화두로 ‘퍼머크라이시스’(영구적 위기)를 꼽았다.”
- 정부 등의 전망을 보면 올해 경제상황이 상반기에는 어렵지만 하반기에는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11월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7.1%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1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이어서 인플레이션이 진정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7.1%도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세계의 중앙은행이라고 할 수 있는 연준이나 한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연 2%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부에서는 (2%를 포기하고) 목표치 자체를 높여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올 상반기를 정점으로 (위기가 계속된 후) 하반기에 금리, 주식 등 금융시장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게 희망적인 시나리오지만 최근 연준 분위기는 매파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인플레이션이 조기에 잡힐지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푼 것은 (한편으로는) 환영할 일이지만 베이징 등 중국 주요 도시에 대규모 감염이 확산되면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이 재발해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 2008년 초대 금융위원장으로서 금융위기에 직접 대응했다. 그때와 현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병에 비유하면 2008년은 급성질환이었다. 응급실로 실려가 급히 수혈하고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단기충격’ 상황이었다. 반면 현재는 ‘복합위기’ 상황이다. 관점에 따라 현재 위기가 당시보다 낫다는 분석도 있고 더 심각하다는 해석도 있는데 양 측면을 다 고려해야 한다.”
-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게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정확히 9월15일이었다. 경제위기는 사전에 징후가 있을 때가 종종 있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었다. (취임한) 2008년 3월부터 해외시장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했다. 딕 풀드 리먼 회장이 파산 직전 산업은행, 영국, 일본 등에 인수를 타진할 정도였으니 상황이 나빠질 것으로 생각하긴 했지만 시장의 충격은 예측보다 더 컸다. 월가에서 발생한 쓰나미가 세계를 덮친 셈이다. 미국 내에서도 ‘Too big to fail’(대마불사)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 당시 정책에 가장 중점을 둔 분야는 무엇이었나.
“‘시장 안정’이 1차 목표였다. 코스피 1000이 무너졌고 채권시장과 외환시장도 불안정했다. 금융시스템이 마비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의 역할이다. 증권시장안정기금, 채권시장안정기금 등에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은행이 유동성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얼어버린 시장을 녹일 수 없다. 이에 은행 자본 확충에 힘썼다. 응급처방에 초점을 맞춘 결과 다행히 실물 부문까지 전이되기 전에 위기를 극복했다고 판단한다.”
- 만약 산업은행이 리먼을 인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리먼 사태 10주년을 맞아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침몰하는 타이태닉(리먼)을 건지기에는 돛단배(산업은행)가 너무 작았다’고 표현했다. 만약 리먼을 구하려 했다면 산업은행도 위험에 빠졌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풀드 회장이 산업은행을 기업 인수·합병(M&A) 상대로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국 등에 매각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일부에서는 그때 인수했으면 어땠을까 말하지만 낚시하다 놓치면 다들 월척이었다며 아쉬워한다. 만약 산업은행이 리먼 인수 작업에 말려들어갔다면 한국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은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 2009년 1월 금융위원장에서 물러난 후 그해 12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았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은 보험료 현실화와 소득대체율 인상 여부인데 이는 수도 없이 생각하고 토의했던 부분이다. 특별히 새로운 게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8%까지 높여야 한다거나, 몇 년에 걸쳐서 해야 한다는 식의 논의는 이미 나왔다. 중요한 것은 ‘의지’이다. 보험료 인상은 연금 재정의 지속성을 위해 불가피하지만 미래세대가 떠안는 구조가 뻔히 보이는 만큼 현재보다 보험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거나 좀 더 오래 받게 하는 방식으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더 내고 덜 받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손봐야 하는데 이건 정말 어렵다. 더 내되 더 받는 쪽으로 가야 한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개선된 노후 보장의 그림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 연금개혁 논의에서 빠져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기금 운용이 중요하다. 수익을 1%만 높일 수 있다면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 구성 자체에 전문성의 한계가 있다. 금융을 전혀 모르는 비전문가가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캐나다는 자산운용 전문가가 연금기금을 운용하게 하고 자율성도 부여하고 있다.”
- 국민연금기금이 국내 투자를 줄이고 해외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보는지.
“자산 포트폴리오는 그다음 문제이다. 위원 구성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하는 게 바람직하다. 각 분야나 단체에서 추천한 자산운용 전문가로 구성해야 한다. 과거 채권 등의 금리가 두 자릿수일 때는 앉아서 나오는 채권 수익으로 운용할 수 있었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 역대 금융위원장 중 유일한 민간 출신이다. ‘제2의 전광우’가 나와야 하지 않나.
“훌륭한 위원장이 많다(웃음).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는데 이 전 대통령이 독대한 자리에서 ‘한국 금융이 성장하려면 민간 경험을 접목할 필요가 있다’며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금융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으려면 (주요 인사가) 해외 경험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관료사회에도 인재가 많다. 어디 출신이냐보다는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훌륭한 인재를) 잘 활용하고 (인재가) 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힘을 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지난해 말부터 금융당국의 관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완전 민영화가 된 금융사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인사를 자율적으로 하는 게 정상이지만 당국이 느슨하게 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만큼 상황에 따른 대처가 필요하다. 지배구조(거버넌스) 문제에 정답은 없고 장점만 있는 제도도 없다. (예컨대) 국내 금융지주는 최고경영자(CEO)를 연임시키는 의사결정을 해왔는데 일각에서는 ‘셀프 연임’을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반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등은 20년 넘게 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 지난 6개월간 금융위, 기획재정부 등의 정책을 평가한다면 몇 점을 주고 싶나.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부동산시장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공감대(컨센서스)가 있다. 특히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지난해 10월 ‘50조원 플러스알파’ 규모의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은 후 자본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 다만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추가적인 위험 요인에 대해 선제적으로 해야 하고 적어도 비상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가끔은 과잉대응이 문제가 될 때도 있고, 정부가 미리 하면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발생할 수도 있다. 2008~2009년 금융위기를 함께 경험했던 이창용 한은 총재(2008년 금융위 부위원장), 김주현 금융위원장(2008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추경호 경제부총리(2009년 1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가 잘 화합할 수 있는 팀인 만큼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한다.”
- 올해 필요한 정부 경제정책은 무엇인가.
“현재 경제위기의 원인은 다각도로 퍼져 있다.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대폭적으로 인상하다 보니 시장에 충격이 갔고, 글로벌 공급망 훼손과 코로나 사태의 여진도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다. 정부도 즉각적인 한 방보다는 폭넓고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 현재는 2008년처럼 세계 공조 체제가 잘되는 상황도 아니다. 미·중 갈등이 깊어졌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각국이 생존전략을 짜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미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해 대응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과거 위기와 달리 진원지가 복합적이고 파장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특정 대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구조 개혁을 통한 경제 체질 개선이 핵심 과제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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