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119신고 대사까지 정해둔 '연극'...'병역 면탈' 시나리오 분석

박지영 기자 2023. 1. 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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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진단' 허점 노린 수법...의료계 "제도 개선해야"

검찰과 병무청은 '병역 면탈' 사건을 수사 중입니다. 수사 대상은 5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프로스포츠 선수나 배우, 고위공직자 자녀 등도 여기에 포함된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뇌전증'이란 병의 허점을 노렸습니다. 다른 말로는 '간질'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발작이나 경련을 일으킵니다.

JTBC가 확보한 '병역 면탈' 시나리오
JTBC는 브로커들이 만들어낸 뇌전증 '가상 시나리오'를 입수했습니다. 브로커 구 씨와 김 씨는 의뢰인들에게 가짜로 뇌전증을 앓는 척을 하라며 구체적인 상황과 대사까지 지정해주고 그대로 실행하도록 했습니다. 증상이 나타나 119를 부르는 상황, 병원에 가서 의료진에게 진찰받는 상황까지. 시나리오는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119 신고부터 응급실 상황까지...대사·배경 '짜여진 각본'
의뢰인들이 발작을 일으켰다고 짠 상황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난 직후 등 일상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도록 보이게 하는 겁니다.

JTBC 화면 캡쳐
119 상담원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부모나 친구 등 보호자들이 "(아들 또는 친구가) 방바닥에 누워 전신을 떨고 있고 불러도 대답이 없다"는 식으로 답하게 했습니다. 실제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하면 의뢰인이 정신을 차리고 휴식을 취하는 듯하게 보이게 한 다음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지럽다"는 등의 말을 하도록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의료진 진료를 받을 땐 좀 더 전문적인 답변을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평소에도 두통이 있거나 속이 안 좋을 때가 있다" "어깨나 팔이 갑자기 움찔할 때가 있었다"는 식으로 과거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도록 했는데, 꾸준한 증상과 진료 기록이 중요한 뇌전증 진단의 특성을 노린 겁니다.

"뇌전증에 대한 이해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성한 듯"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신원철 교수는 이들이 "뇌전증에 대한 의학적 이해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뇌전증 진단은 뇌파검사나 뇌 MRI를 통해서도 명확히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검토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건 "꾸준한 추적 검사와 관찰"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JTBC 화면 캡쳐
이들이 노린 허점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실제 병이 없어도, 또 검사 결과 명확한 이상증세가 보이지 않아도 꾸준한 진료 기록만 남기면 뇌전증 진단을 받고 병역 등급을 바꿀 가능성이 있었던 겁니다. 실제 브로커 구 씨와 김 씨는 병원이나 의사, 진료 날짜까지 지정해주며 "최대한 빨리 검사를 진행해라" "약을 처방받고는 바로 다음 진료일을 예약하라"는 식으로 조언했습니다. 꾸준한 치료 기록을 남기기 위해섭니다.

JTBC는 브로커 김 씨 측 대리인 법무법인 대환 측에 입장을 물었지만, "수사 중인 사안이라 밝힐 입장이 없다"면서도 "수사에는 적극 협조 중"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설명했습니다.

제도 보완 목소리...병무청, 대한뇌전증학회에 자문 구해
의료계에선 제도 보완에 대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최근 병무청은 대한뇌전증학회에 자문을 구하고 제도 개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뇌전증 자체가 의학적으로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정밀하게 분석, 판단해야 하는 만큼 제도에 있어서도 허점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홍승봉 교수는 "입영 대상자들이 가지고 온 진단서나 진료기록 등을 다양한 전문가들이 보고 교차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뇌전증은 뇌파검사나 뇌 MRI 검사 결과와 과거 병력, 증상을 다각적·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전문가 한 명의 소견으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브로커들이 의료기관이나 의사와 유착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이 자주, 구체적으로 언급한 병원이나 의사들에 대해서도 유착 의혹을 들여다볼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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