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노동은 같은 무게인가요
김미르(가명) | 쿠팡 신선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
한 번도 정규직이었던 적이 없었다. 계약직이었다. 계약만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 바뀌었다. 그게 일상이었다. 이전에 하던 일은 제조업이었는데 탄력근로제 때문에 노동시간이 길어서 힘들었다. 그래도 생계 걱정은 없으니 참고 다닐 만했다. 하지만 2년 되기 전에 회사에서 내미는 서류 한 장 ‘자진 사직서’에 서명하고 ‘계약만료’가 되었다. 실업급여를 타서 생활한 지 몇 달이 지나자 슬슬 생계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구직 사이트를 열심히 뒤졌다. 여전히 코로나19 영향 탓인지 공단 일자리는 절반 이상 줄어버렸고 어떻게든 내 이력으로 비벼봐야 했다. 그러다 ‘쿠팡 신선 물류센터 계약직 모집’이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원하는 일만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싶어서 지원을 했다. 합격 통보를 받았고 그렇게 신선물류센터에서 일이 시작되었다.
안전중시는 말뿐
첫날, 내가 일할 현장의 모습은 담기지도 않은 교육 영상자료를 보고 나서 계약서를 적었다. 3개월짜리였다. 그러고 나서 작업할 때 쓸 물품이 지급되었다. 방한 장갑과 방한화를 받았는데 방한복은 아직 줄 수 없다고 했다. “맞는 사이즈가 들어오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사람들이 워낙 잘 그만두니 한 달은 지나야 한다고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정확히 한 달 뒤에 방한복을 지급한다는 문자가 왔다. 어렵사리 받았다. 첫 단추가 힘겹게 끼워졌다.
방한복 없는 한 달 내내 낡은 롱패딩을 입으면서 일했는데 방한복을 받고 바로 버렸다. 더 이상 입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서 계속 몸을 움직여야 해서 옷이 빨리 상해버렸다. 방한 장갑은 3일 만에 구멍이 났다. 그러고는 다시 주지 않았다. 현장에서 매일 지급하는 일반 장갑을 쓰기로 했다. 고무가 동글동글하게 박힌 면장갑을 지급하는데 그걸 쓰고 있다. 방한화는 매일 신는 신발이지만 세탁은 내가 직접 세탁소 가서 해야만 한다. 몇천 원이지만 빠듯한 월급에는 망설여지는 액수다.
‘현장 일은 장비빨’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장비를 처음부터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에 당황스러웠다. 방한 장갑, 방한화 그리고 방한복은 그냥 추위를 막아주는 용도가 아니다. 나를 보호해주는 것이다. 꽝꽝 얼어있는 아이스팩이나 드라이아이스를 만지는데 방한 장갑이 없으면 손에 동상이나 습진이 생긴다. 방한화는 안전화 기능도 있어서 떨어지는 물건들로부터 다치지 않게 해준다. 그런 안전을 막아주는 방한용품들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니, 너무한다 싶었다. 단 하루를 일해도 안전하게 일하고 싶은데 그러기 쉽지 않았다.
OB 업무로 배정받다
‘OB계약직’이라고 적힌 사원증을 찍고 현장에 들어갔다. OB는 Out Ban의 준말로 출고 업무를 뜻한다. 배송할 물건을 내보내는 출고 쪽은 공정에 따라 집품, 리빈, 포장으로 나뉜다. 신선식품을 다루는지라 현장 온도는 영하 1도로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일을 마치고 나오면 바깥온도(약 28도)와 삼십도가량 차이가 나다 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몸에서 열이 났다.
현장 안은 냉장고의 냉랭한 느낌을 여과 없이 바로 받는 느낌이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시린 기운이 온몸에 가득 퍼졌다. 건물은 층별로 용도가 달랐는데 1층은 냉장이고 2층으로 올라가면 냉동 창고가 나온다. 꼭대기 층은 식당인데 이곳이 바로 내가 일하게 될 곳이었다. ‘잘 견딜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불안했지만, 실전에 바로 투입되었다. 처음에 배정받은 업무는 ‘리빈’이었다. 집품된 물건 중 멀티 건에 해당하는 물건들을 분류하는 일이다. 집품된 제품들은 싱귤과 멀티로 나뉜다. 싱귤은 하나의 포장에 한 종류의 물건이 배송되는 것이고, 멀티는 여러 종류의 물건이 하나의 포장으로 합쳐져서 한 집에 배송되는 것이다. 신기한 제품이 많아서 구경하랴 바코드 찍으랴 제대로 된 세트(Set, 물건을 분류해두는 물품으로 책꽂이처럼 생겼다)에 집어넣느라 혼이 쏙 빠져버렸다.
갑자기 바뀐 업무
오후에 다시 현장에 들어갔는데 캡틴이라 불리는 관리자가 오더니 “리빈 업무를 하고 계신데, 포장 업무를 받은 분이 최종 합격을 해놓고 출근을 안 해서 업무 변경을 해야 할 것 같다. 대신 포장 업무로 가셔야 하는데 괜찮으시냐?”고 했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찮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최종적으로 포장 업무를 배정받았다. 그날은 싱귤 쪽에 가서 일했다.
업무는 토트(상품을 담는 파란 플라스틱 장바구니)에 물건이 오면 토트 바코드를 찍고 그 안에 있는 제품의 바코드를 찍고 자리마다 있는 모니터에 맞는지 확인한 후 프레시백이나 종이 박스에 넣고 아이스팩을 개수만큼 넣은 다음에 운송장 자리에 운송장을 부착해서 레일에 태워 보낸다. 그 밑에 있는 허브 담당 직원들이 지역마다, 시간마다 분류를 한다. 그러면 트럭에 실리고 각 지역 캠프로 가서 집마다 배송이 된다. 이걸 알고 나니 사람들이 편리하게 누리는 시스템 모두가 사람의 노동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신선하면서 놀라웠다.
본격적인 포장 업무 시작
다음날 조를 배정받고 ‘이제 매일 하게 될 과정이겠지.’하면서 포장하는 준비과정을 배웠다. 아침에 그날그날 배정받은 작업대로 가서 물건을 싣고 나르는 U카트(U자형으로 생겨 붙여진 이름)에 실린 프레시백을 챙기고 뽁뽁이(에어캡)와 대나무 죽간처럼 세로형 에어캡이 이어 붙은 오퍼스(opus)를 챙긴 후 운송장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업무 수행하다가 끊어지지 않게 새것으로 하나를 여분으로 준비해둔다. 테이프와 커팅 기계를 챙기고 있으면 워터(Water·포장에 필요한 부자재를 채워주는 것) 업무를 맡은 사원들이 와서 자리마다 박스를 사이즈별로 채워준다. 8시 정각 레일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하루의 시작이다.
물건을 옮길 때 사용하는 파란색 플라스틱 바구니인 ‘토트’에 담긴 한가지 상품을 하나로 포장하는 건 싱귤(Singulation) 업무로 불렸다. 다양한 상품을 한데 모아 한집으로 배달하는 멀티(Multi) 업무는 배송할 물건들이 무분별하게 담긴 토트가 도서관 서가처럼 생긴 리빈(Rebin) 세트에 꽂히면 반대편에서 이를 꺼내 프레시백이나 박스에 정갈하게 포장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주간 조인 나는 오전 10시50분, 11시50분 이런 업무를 마감해야 했는데, 마감 시간만 다가오면 현장은 전쟁터가 된다. 쿠팡은 로켓 배송, 당일 배송을 내세우는 곳이라 물량이 쏟아져 나와도 시간 안에 다 쳐내야 하는데 압박이 상당하다. 정기 배송 날이나 제품 행사라도 하는 날이면 제품들이 마구 날아다닌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1·4후퇴는 별것도 아니여.”가 딱 어울리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현장에서 이렇게 바쁘게 일하다 보면 갑자기 어딘가에 상처가 나 있기도 한다. 급하게 물건을 담고 포장하다 보면 어딘가에 멍이 들어있기도 하고 피부가 베이는 경우도 생긴다. 처음엔 놀라서 응급처치를 급하게 하지만 어느 순간 일상이 되어버렸다.
1년 만에 만신창이가 된 나와 동료들
바빠서 화장실 갈 시간을 준다거나 따로 쉬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마땅히 휴게실이라 불리는 곳도 없다. 급한 마감이 끝나면 주변 동료들과 눈치껏 화장실을 다녀올 뿐이다. 4시간에 30분 휴식이 법에서 정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오전 4시간 통째로 일하고 점심시간 1시간, 그리고 오후 4시간을 일한다. 현실적으로 4시간 연속으로 일하면 탈이 나기 마련인데 법에서는 그걸 허용하고 있다. 회사를 원망하다가 제도를 탓하게 되었다. 그래도 일에, 사람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조원들과 교대로 화장실 가는 때를 만들어 생리 현상만큼은 참지 않고 해결하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
바삐 일하는 날들이 쌓여 내 몸에도 흔적이 남았다. 손목, 팔목, 허리, 목, 어깨 등 온갖 근·골격계가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싱귤 업무를 할 때는 물건이 너무 무거울 때가 많고, 멀티를 할 때는 쪼그려 앉거나 머리 위로 손을 뻗어서 물건을 들고 와야 하는데 그 작업을 8시간 반복하다 보니 몸 구석구석 남아나지 않는다. 이제 1년 6개월째 일하는 나도 손목에 두 번, 팔꿈치에 한 번 인대 주사, 염증 주사를 맞았다. 목에는 늘 부항 자국을 달고 다닌다.
어깨에 염증이 생겨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옆의 이모는 어깨에 뼛가루가 쌓여 약을 먹고 있다고도 했다.
아직 살아갈 남은 날들이 많은데 내 몸이 과연 버텨줄까 싶긴 하다. 천천히 일하려 해도 마감 때가 다가오면 아픈 줄 모르고 빠르게 하게 된다. 먼저 일하던 언니, 이모들은 근·골격계 질환을 직업병이 아니라 고질병처럼 여긴다. 아프면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숨 막히는 감시와 통제
힘들게 일을 시킨다고 노동자들에게 미안해하는 회사가 없듯이 이곳도 마찬가지다. 알게 모르게 통제가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다. 취업규칙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다. 사내 게시판이 있어도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그걸 볼 여유는 없다. 또 급하게 일하다 보면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송장을 놓치거나, 물건을 빼먹거나 하면 ‘사실관계 확인서’라고 반성문 같은 것을 작성해야 한다. 뒤돌아볼 여유 없이 돌아가는 구조 안에서 실수는 온전히 ‘내 몫’이 된다. ‘산재 부정수급 금지’ 포스터, 사내 물건 훔치면 징계한다는 포스터, 화장실 휴지 걸이마다 ‘훔치는 것 금지’ 경고장 등 온갖 곳에서 노동자들을 도둑 취급하는 포스터들을 보면 과연 이런 회사를 위해 몸 상해가면서 일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포장할 때 사용하는 컴퓨터 모니터 상단에 보면 ‘메시지 없음’이라는 직사각형의 칸이 있다.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관리자가 찾아와 “무슨 일 있어요? 왜 속도가 느려요?” 하면서 압박을 했다. 현장 상황을 수시로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니터의 ‘메시지 없음’은 원래 자신이 하는 업무의 속도나 양을 표시하는 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구 쿠팡센터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장덕준 님 사건 이후 그 창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업무 성과, 속도에 대한 압박은 줄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현장의 숨통을 조금 트여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작업자들 컴퓨터에만 표시되지 않을 뿐 관리자들의 컴퓨터에는 누가 얼마나 했는지 다 기록되어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언제 어느 곳에서건 감시와 통제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과로해서 죽었으니 겉으로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회사의 기만이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여전히 성과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고, 그게 재계약에 불리할까 불안해하면서 감시와 통제 안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당신과 나의 노동은 같은 무게
사람들은 흔히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것을 ‘현대판 노가다’, ‘막장’이라 부른다. 일이 그만큼 고되고 힘든데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곳이라 그렇게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에서 누군가 꼭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이다. 요새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인권실태, 열악한 환경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럼 꼭 따라오는 이야기가 다른 곳에 가서 일해라, 열심히 공부했으면 그런 곳에 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불쌍하다 등이다. 그런 표현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사회의 변화를 막을 수 없다. 로켓배송으로 문 앞에 필요한 물품이 놓이는 편리함을 이미 알아버렸는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굳이 “사회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 단지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편리함이 누군가의 값진 노동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것, 그 값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좀 더 나은 노동 조건과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열악한 곳에서 일할수록 세상의 패배자로 취급하기보다 그 노동의 가치를 나의 노동의 가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주면 조금 더 존중받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거기서 공정과 평등이 시작되지 않을까.
불안정한 노동 그리고 불안한 삶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대다수가 계약직이다. 정규직들은 소수의 관리자만 있을 뿐이다. 현장 노동자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현장 노동자들은 1년이 지나면 다시 계약서를 작성하고 총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 여부를 회사가 판단하게 된다. 그전까지 다시 계약하기 위해서 온갖 불합리한 것들을 참아가면서 일한다. ‘내 옆의 동료들보다 잘해야지’하는 묘한 긴장감에 싸여 모순적인 현장의 상황들을 참아내다 보면 갖은 내 권리들을 박탈당한다. 그나마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노동조합마저도 ‘쪼개기 계약’에 발목 잡혀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이 악순환의 굴레가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더 열악한 노동 환경만이 기다리고 있다.
하루를 일해도 안전한 현장에서 인간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누적되는 질병 없이, 사고 없이,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다다르기 위해 현장에서 꿈틀거려야 한다. 그 생각이 고된 노동 사이의 한 줄기 희망의 씨앗 같다. 오늘도 순조롭게 하루가 흘러가길, 밤하늘을 바라보는 내가 숨이 붙어 있기를 바라며 마음을 다잡고 문을 나선다. 출근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2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작입니다. 다음주에는 최우수상 수상작이 실립니다. <한겨레>는 해마다 수상작 일부를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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