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 처벌기준·전례 어떻게?…‘이태원참사’가 남긴 또다른 과제
[왜냐면] 양중진 |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1954년 일본 도쿄 일왕의 거처 부근에서 비좁은 다리로 진입하던 군중들이 뒤엉켜 넘어지면서 16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다쳤다. 1956년에는 니가타현 신사에서 전병을 서로 먼저 받으려던 참배객들이 넘어져 124명이 사망하고 94명이 부상당했다. 2001년 효고현 아카시에서 열린 여름축제 때는 불꽃놀이가 열리는 해변으로 가려던 시민들이 비좁은 인도교로 몰려들면서 11명이 숨지고 247명이 다쳤다.
이 사고들의 형사책임은 어떻게 됐을까.
첫번째 사고 때는 아무도 형사책임을 지지 않았다. 두번째는 신사 직원 한명이 과실치사상죄로 벌금형을 받았다. 45년이 흐른 뒤 아카시시 사고에서는 경찰서 경비과장, 시청 시민경제부장과 차장, 상공관광과장과 경비회사의 책임자 5명이 업무상과실치사장죄로 금고형 등을 선고받았다. 사고 10여년이 지난 뒤 검찰심사회에서 경비계획 책임자인 경찰서장에 대해서도 기소하라고 의결됐지만 이미 사망한 뒤였고 부(副)경찰서장만 강제 기소됐다. 하지만 법원은 공소시효(5년)가 지났다며 면소 판결을 선고했다. 결과적으로 경찰서장과 부경찰서장은 처벌받지 않았지만, 항소심에서는 계획단계에서 적절한 관리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은 과실이 맞다고 판시했다.
2005년 10월3일 경북 상주시에서 콘서트장에 입장하던 시민들이 넘어져 11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다쳤다. 2014년 4월16일에는 세월호 참사로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됐다. 그리고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 사망하고, 197명이 부상했다.
상주 참사 때는 시장과 담당 국장, 과장, 실무자는 집행유예를, 행사를 주최한 협회장과 부회장, 경호업체 대표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공동주최한 방송사 피디 역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세월호 참사 때는 선장과 선원을 비롯한 선사 관계자, 현장에 구조하러 갔던 해경 책임자 등이 업무상과실치사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세월호 참사는 구조의무가 있는 공무원의 형사처벌이란 점에서 다른 사례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안전 사고에 대한 책임을 폭넓고 엄중하게 묻고 있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졌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죄명이 바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다. 업무상 해야 할 조치를 다하지 못해 다른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때 적용되는 죄다. 그런데 누구에게 어떤 주의의무가 있는지, 어떤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지, 조치를 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적절한지 등은 사건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도 확실히 죄가 된다, 안된다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문제는 현대사회에 들어 안전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면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해야 하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사회에서는 그다음으로 떠오르는 게 ‘안전’이다. 그렇다면, 안전 문제는 어디까지 확대돼야 할까. 개인의 안전과 관련해 사회나 국가가 책임져야 할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2017년 12월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 16명이 숨지고, 22명이 다쳤다. 경찰은 소방서장과 현장지휘팀장을 입건했다. 적절하지 못한 소화작업과 구조작업으로 인해 진화가 늦어져 희생자가 많아졌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이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소방관들이 화재로 곤경에 처한 시민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맹렬한 화염과 건물 붕괴 위기 속에서 어디까지 구조의무를 지워야 할까?
현재 경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이태원 참사 수사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6명이 구속됐다. 경찰은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구속영장도 신청했지만, 검찰은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영장을 돌려보냈다. 최 서장 구속수사에 제동을 건 검찰로서도 법리 판단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때처럼 위험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지 명확한 기준이나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안전 문제는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다. 국가는 이를 위해 기업이나 지자체 등에 여러 의무를 지우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국민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구조자가 구조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 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참사를 예방하는 구체적 준비 만큼이나, 시대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합리적인 안전사고 처벌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과제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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