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녀가 이기적 선택이라고요? [편집국에서]

정은주 2023. 1. 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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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겨레> 자료사진

[편집국에서] 정은주 | 콘텐츠총괄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이기적인 선택이지 않나요?”

몇년 전 내가 “아이가 없다”는 얘기를 했을 때 50대 남성이 이렇게 물었다. 당시 꽤 당황했는데, ‘이기적’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무자녀의 삶’을 나는 선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04년 29살에 결혼할 때만 해도 아이를 낳지 않을 줄 몰랐다. 어린 시절부터 길에서 만나는 아이에게조차 눈길을 떼지 못할 때가 많았던 터라 나에게 출산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직장생활 3년차고, 남편은 새롭게 공부를 시작해 우리는 각자의 일에 몇년간 집중하려 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났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자였고 남편은 불안정한 프리랜서였다. 새해가 되면 ‘아이를 낳으라’는 집안 어른들의 덕담이 잦아지자 우리는 ‘자녀 계획’을 1차 논의했다.

20평이 채 안 되는 전셋집에 아이 공간을 만드는 것도 걱정이고, 사실상 홑벌이라 양육비도 버거웠지만, 무엇보다 난제는 육아 그 자체였다. 양가 어른들이 지방에서 조카들을 키우고 있어 ‘조부모 돌봄’에 우리 부부는 닿을 수 없었다. “육아를 절반 맡을 수 있어?” 주중에는 밤 11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는 잠만 자는 내 일상을 아는 남편이 먼저 물었다. “아니, 어려울 것 같아.” 프리랜서라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남편이 육아에 더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답했다. “나도 절반 이상은 못해. 출발도 늦었는데 막 시작한 일을 포기할 수 없어.” 남편의 말도 맞았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아도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아이의 미래도 걱정스러웠다.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얘기하자.” 1차 논의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후 2차 논의를 못했다. 주거도, 일도, 보육 환경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절한 때를 기다렸고 어느새 출산이 위험한 나이에 나는 이르렀다.

우리 부부처럼 준비가 덜 되면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 것을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완벽한 부모 신드롬’이라 명명한다. 이는 경제적이든, 심리적이든, 정서적이든 안정된 상태에서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에 부모 되기를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초저출산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열망이 커서 역설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두려움과 이타심이 결합한 복합적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경향은 밀레니엄 세대(1980년대~1990년대 중반 출생자)에 더 강해져 결혼도, 출산도 점점 늦어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1년 평균 초혼연령은 남성 33.4살, 여성 31.1살로 2001년 남성 29.6살, 여성 26.8살보다 3.8살, 4.3살 높아졌고, 특히 여성의 상승 폭이 더 가팔랐다. 결혼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탓에 만혼은 늦은 출산으로 연결된다. 엄마의 첫째 아이 출산 연령은 2021년 32.6살로 2001년 28살보다 4.6살 올라갔다. 생물학적으로 가임기 연령대는 정해져 있는데 첫아이를 늦게 낳기 시작하면 합계출산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가임기 여성 수가 연령이 낮아질수록 적어지는 인구구조라 더욱 그렇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또다시 세계 최저 출산율 기록을 깰 것으로 보인다. 2021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은 0.81명이었고, 2022년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9명이었다. 전쟁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출산율 0점대 합계출산율이 5년째 이어지고 있다. 2020년 태어난 사람이 사망한 사람보다 적은 데드크로스가 한국전쟁 이후 처음 나타났다. 그뿐 아니다. 코로나19로 결혼이 줄어들면서 2024년에는 합계출산율이 0.70명으로 주저앉을 전망이다.

그나마 합계출산율이 0점대에 머물더라도 2030년까지 20만명대 출생이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서울대 인구학연구실). 출산하는 주요 연령대인 29~35살 여성이 2030년까지 210만명 안팎으로 유지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2030년대에는 초저출산 세대(출생아 수 평균 45만명)가 부모가 돼 연간 출생아 수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구학자들이 2020년대를 인구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이기적인 선택’이라고만 바라보면 우리는 2023년에도 답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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