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음악계 1월의 게으름을 돌아보며

2023. 1. 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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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월간 객석 발행인

저를 아시는 분들은 다 아는 사실 하나가 매일 아침마다 카톡 메시지에 음악과 시를 담아 보낸다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제가 음악계 출신이 아니라서 안부 인사차 간단한 해설을 곁들인 음악과 시 한편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7년이 지난 지금은 쉴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카톡을 보내다 보면 답장을 받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중 원로 작곡가 이영조 선생은 제 카톡에 가장 많은 답장을 보내는 분 중 한 분이십니다. 저와 띠 동갑인 선생은 팔십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두세 번은 발표되는 당신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연주회에 참석하시고, 여전히 새로운 곡 작곡에도 몰두하십니다. 6년 전쯤 후배 작곡가 김택수와 함께 '객석'에 등장하시기도 했습니다.

한국 작곡가들의 현실을 되짚으시고, 발전을 위한 제언 좌담을 하신 후 "한적하던 내 일상이 '객석' 때문에 바빠져 버렸다"라고 농담을 건네시곤 하는데, 사실 그 분의 예술 인생은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봄이 오면' '바위고개' '섬집아기' 등의 작곡가 이흥렬(1909~1980) 선생의 아드님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음악을 시작한 것은 물론, 중년 이후엔 독일로 건너가 작곡 공부에 몰두하셨죠. 영화 같은 오페라 '황진이'와 한국형 오페라 '처용' '이사부' 등을 국내외에서 공연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원 설립 후엔 초대원장을 지내며 어린 예술인들을 키우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 큰 힘을 기울였습니다. 요즘엔 또 내후년 개원 예정인 이천예술학교의 공사현장까지 직접 챙기시며 바쁜 일상을 보낸다고 하시네요. 제가 감탄하는 것은 그분의 그런 경력보다, 어쩌면 그렇게 부지런하실 수 있을까 싶은 성품입니다. 각종 공연 소식은 물론, 동영상과 악보까지 덧붙여 보내주시는 그 기술(?)과 열정에 저는 늘 자극을 받곤 합니다. 지난 연말 여행지에서 보내주신 메시지에는 작은 새의 지저귐 소리를 녹음한 동영상이 담겨 있더군요. 새들이 앉아 있는 전선의 모습이 마치 오선지 같다는 코멘트도 달려 있었습니다. 이분의 메시지를 보면서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합니다. 음악을 향한 예술가들의 열정에는 늘 그렇게 쉼도, 만족도 없다는 얘기겠지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이라 일컫는 젊은 음악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2월 16일, 저는 서울시향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을 보기 위해 롯데콘서트홀에 갔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를 비롯하여 세계 무대를 누비는 베이스 바리톤 박종민 씨가 독창자 중 한명으로 출연했더군요. 그와, 부인인 소프라노 양제경 씨와는 3년 전 빈에서 만난 후 서너 차례의 식사를 나눈 사이이기에 더욱 반가웠습니다.

연말을 맞아 고국에 왔으니 이참에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웬걸! 그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프랑스 낭시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 있다는 소식을 올렸더군요. 양제경 씨는 아마 빈에서 오페라 공연 중일 터이니, 가족 모두가 모이는 연말연시도 없이 바쁜 음악가 부부의 일상입니다. 음악가들의 이런 부지런함이 있으니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행복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거겠지요.

그런데 이번 1월호를 준비하면서 갖게 된 하나의 의문점이 있습니다. 음악가들은 이렇게 부지런히 살고 있는데, 왜 해마다 1월에는 공연 횟수가 그렇게 줄어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각 교향악단의 신년음악회조차 '신년'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만큼 1월 중순 이후이고, 그나마 신년 인사 겸 음악회를 아예 거르는 단체도 꽤 있었습니다. 통계적으로 동절기엔 관객 동원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크겠지요.

그러나 예술 애호가들 중에는 신년의 시작을 공연과 함께 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빈 신년음악회같은 행사가 왜 몇 십 년 동안 계속되며 전세계로 생중계 되는 걸까요? 예술이야말로 사람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또 한해를 시작하고 싶다는 염원을 잘 반영할 수 있는 거국적인 행사가 아닐까요?

그런데 제가 참석했던 우리의 신년음악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내외 및 정재계 인사들이 잠깐 얼굴을 비추는 그런 행사인 경우가 많았지요. 그것도 일반 국민들은 참석이 어려운 공연이 많았고, 중계는 물론 없었습니다. 1월호를 만들면서 공연이 줄어 고민에 빠진 편집부를 보면서 '꾸준한 부지런함'이야말로 우리 예술계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써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 올해도 예술과 함께 하며 행복과 건강 듬뿍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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