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교육 등 5대 개혁 만시지탄···원칙 맞게 잘하면 표 많이 나올 것” [어떻게 지내십니까]

오현환 논설위원 2023. 1. 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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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전 국제형사재판소장)
떼 쓰기로 무너진 법치 질서 바로세우면 국민이 편해져
尹,국민 행복 목표로 원칙 세워 지키면 후세에 기억될 것
대법원장 판사 인사권 독점 세계에 유례없어···수술해야
李대표 ‘사법리스크’ 개인 문제, 당이 나서는 건 어불성설
[서울경제]

새해가 밝았지만 경제는 혹한기로 접어들었고 북한의 도발 위협은 계속되는 등 대한민국이 중층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도 거대 야당은 사사건건 정부 발목을 잡는 등 정치 실종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취임 2주년을 맞아 구조 개혁의 닻을 올렸지만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제형사재판소장을 지낸 송상현(82)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2일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노동·연금·교육·공공·건강보험 개혁은 시급한 과제”라며 “원칙에 맞게 개혁을 잘만 하면 다음 총선에서 표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명예교수는 “다 무너져 버린 법치 질서를 바로 세우면 국민이 편해지고 정부와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상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가 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구조 개혁을 윤석열 대통령이 혼자 다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올바른 방향으로 시스템을 완벽히 구축해놓고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교직에 계시면서도 한평생 봉사 활동을 해왔는데.

△남을 돕기로 마음먹고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교수 임명 직후인 30세 때였다. 집안 배경 좋고 학벌 좋은데 서울대 법대 교수로 들어갔으니 금수저 중의 금수저라는 식으로 사람들이 얘기했다. 내가 금수저라면 흙수저에 뭔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빈촌의 노인들을 찾아 목욕과 이발을 도와 드리고 병원에도 모시고 가는 등 여러 봉사 활동을 했다. 3년 정도 지나니 학생도, 교수도 일부 알게 됐고 국회의원 나가려고 쇼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당시 생각에 어린이는 유권자가 아니니 그런 오해는 안 받을 것 같아 어린이를 돕는 걸로 바꿨다. 이렇게 50년을 봉사하다 지난해 유니세프(UNICEF) 한국위원회 회장직을 그만두고 마무리했다.

-고하 송진우 선생의 손자로서 영향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다. 삶에서 무엇을 중시해왔나.

△이분이 내 나이 다섯 살 때 암살 당하셨다. 어린 나에게 사서삼경을 가르치며 민족 정기라든가 역사와 관련된 말씀을 많이 하셨다. 돌이켜 보면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국가와 민족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생을 살다 보면 기막힌 일들이 많이 생기는데 일희일비하지 말고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해 결론이 나면 과감하게 실천하라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일자리 부족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가족도 해체되면서 청년들이 줄고 있다. 개인주의에 빠져 고립되지 말고 가슴을 넓게 열고 포용하면서 낙관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다. 어른들은 ‘꼰대’ 행태를 보일 게 아니라 젊은 세대가 가슴을 활짝 열고 뛰어놀 수 있도록 뒷바라지할 필요가 있다.

-국제기구인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무장 및 도발 위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ICC는 전쟁, 침략, 집단 학살, 반인도적 범죄 네 가지를 관할한다. 러시아와 북한은 관련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비(非)회원국이어서 ICC의 형사재판권이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를 ICC에 회부하는 결의를 하면 할 수 있다. 독재자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이뤄지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ICC 검사는 현장에 간다. 실제로 ICC 검사가 지난해 5월 많은 수사관을 데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에 가서 많은 범죄 증거를 채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은 국제 정치적 차원의 문제여서 눈치를 보고 있다. ICC 검사가 신청해 ICC 재판부가 발부한 구속영장은 시효가 없고 취소도 안 된다. 범죄 혐의자는 죽는 날까지 외부에 돌아다니지 못해 굉장히 정신적 부담을 안게 된다.

-세계의 가치 흐름이 많이 바뀌는 것 같다.

△현재 세계의 흐름이 ‘정의 없는 평화는 없다(no peace without justice)’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의가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세계 평화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가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밀어붙였다.

△국가는 국민을 범죄나 무질서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갖는다. 검수완박을 하면 이 기능이 굉장히 약화된다. 왜냐하면 검사가 수천 명인데도 검찰에 공소권만 주고 경찰에 수사를 맡겼다. 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따로 뒀다. 국민 보호를 위한 동일 목표를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나눠서 나아가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 틈새를 이용해 범죄자들이 활개를 칠 가능성이 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법이다. 나중에 복귀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추진한 데 대해 반론도 많이 제기됐는데.

△고등법원장·지방법원장·지원장은 사법부 조직 내에서 하나의 기관장이다. 법원장이라는 사람은 소속 판사들에게 재판이나 법원 운용 측면에서 좀 싫은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장악해야 할 판사들의 추천과 투표로 원장이 되면 그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고 외려 눈치를 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운용하면 법원은 물론 일반 회사의 조직도 엉망이 된다. 차제에 대법원장이 독점한 인사권을 수술해야 한다. 대법원장 한 사람이 뛰어난 인재 집단인 3000여 명의 판사 인사권을 독점하는 것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유럽도 미국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를 세우고 헌법 정신을 뿌리내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떼를 쓴다고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 너무 오랫동안 관행이 되다 보니 사람들이 일단 법을 지키지 않고 떼부터 쓰려고 한다. 심지어는 정부 말과 반대로 하면 손해 보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있다. 건국 이후 많이 노력해 법치 질서를 어느 정도 확립해왔는데 최근 많이 흐트러졌다. 정부가 법치를 확고히 세우고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유지해 나가면 외려 국민들이 편해진다. 법에 미리 정해놓은 대로 따라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담당 공무원의 재량이 줄어들게 되므로 공무원을 찾아가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어진다. 결국 정부와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게 된다.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이호재기자

-서울대 법대 제자였던 윤석열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법학과에 수많은 학생들이 입학해 잘은 모르지만 세 가지 정도 기억에 남아 있다. 보통의 법조인들과 달리 책을 많이 읽어 인문사회학적 소양이 풍부했고 아이디어가 많았다. 또 기본적으로 독하지 않고 인간적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올해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힌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만시지탄이다.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다. 건강보험·공공기관도 함께 고쳐야 한다. 원칙에 맞게 잘만 하면 다음 총선에서 표가 많이 나올 것이다. 저항이 많아 윤 대통령이 혼자 다 하기는 어렵다.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올바른 방향으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해놓고 나가야 한다.

-기득권 세력의 반발 등이 있어 개혁 과정에서 의견 절충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절충해야 할 것이 있고 원칙을 지켜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돈으로 승부하는 경우라면 조금 절충해도 되지만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은 조금도 타협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된다. 가령 중고교 교과서의 역사 왜곡은 굉장히 심각해 손을 많이 대야 한다. 고구려·발해 등 고대사 서술은 중국에 기울어져 있고 근세사 중 항일독립운동사, 해방전후사, 6·25동란사 등 세 가지는 완전히 거꾸로 돼 있다.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 하려고 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기초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금비 대신 퇴비를 열심히 생산해 뿌려주는 역할을 하고 떠나야 한다. 떼쓰기에 다 무너져 버린 원칙을 바로 세워놓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 국민의 최대 행복인가, 무엇이 국민에게 가장 좋은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원칙을 세우고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후세에 굉장히 기억되는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아왔는데.

△야당이 덩치가 크다 보니 국민에 대해 오만해졌다. 여당도 여당대로 내분이 있다. 정당의 기능은 국민을 포용하면서 민생을 챙기고 상대를 인정하면서 협치나 통합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당은 아무 내용도 없는 걸로 말꼬리를 잡고 싸움만 하고 있다. 차라리 국회의원을 좀 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에 몰두하고 있다.

△이 대표 개인이 과거 몇 년 전에 저지른 혐의에 대해 검찰이 수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절반 가까운 국민들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대변인·최고위원 등이 벌떼처럼 일어나 옹호해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껏해야 수사 검사 이름이나 공개하는 저질 책략을 쓰고 있다. 쪼잔한 행태다.

-부강한 국가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 정치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를 넘었지만 행복한 사람이 많지 않다.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헬(hell) 조선’을 외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대로 가면 건국 100주년인 2048년까지 발전하면서 존속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게 정치의 최대 임무일 텐데 쓸데없는 일로 말싸움이나 하고 있다. 사람들이 정치에 흥미를 잃어 정치 엘리트 공급마저 끊길까 걱정이다. 개헌 논의 수준을 넘어 폭넓고 심각하게 정치 개혁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He is···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사법고시에 합격했지만 교수의 길을 택했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35년,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소장으로 12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으로 9년을 지냈다. 한국지적소유권학회·국제거래법학회·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등을 거쳤다. 사법연수원 운영위원장, 대법원 대법관제청자문위원장으로도 일했다. 주요 저서로 민사소송법, 지적소유권법전, 해상법원론, ‘회고록-고독한 도전, 정의의 길을 열다’ 등이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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