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격차, 5~6학년 때 확 벌어져…집안 독서 분위기 중요”

한겨레 2023. 1. 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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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문해력 지도법
문해력 약해서 초5때 학습격차
초3 문해력 머무는 경우 많아
성인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 읽고
독후 대화 통해 사고력 키워야
아동심리 전문가 박찬선씨는 “문해력이 약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 정보를 구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되기 때문에 느린 학습자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여러 정보를 읽고 해석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느린 학습자’들이 늘었다.

‘느린 학습자’란, 경증 지적장애나 경계선 지능(IQ 70∼84) 또는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등으로 학습이 더디고 한 번에 많은 내용을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뜻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14%가 느린 학습자로 추정되고 있는데,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교육 전환과 상호작용 부족, 학습결손 등으로 유아동부터 청소년까지 느린 학습자가 많이 늘어난 것으로 현장 교사들은 느끼고 있다. 교육 환경의 변화가 학습동기나 학습 습관이나 태도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지적 능력 저하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느린 학습자들이 느리게라도 학습을 꾸준히 따라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문해력’이다. ‘문해력’이란 글자의 의미와 낱말의 뜻을 알고 문장을 독해하는 능력을 넘어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사고력을 뜻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서나 학습서의 문장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문해력을 키우지 않고선 공부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느린 학습자들의 문해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아동심리전문가로서 20년 이상 현장에서 일하며 경계선 지능 치료에 전념해온 박찬선씨를 찾아가 들어봤다. 그는 경계선 지능 전문 치료센터인 ‘연아혜윰’ 대표로 일하면서 <경계선 지능과 부모> <느린 학습자의 공부>에 이어 최근에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문해력>(한국도서관저널)를 펴냈다.

느린 학습자들은 문해력이 약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이 ‘국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글자가 많고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가 가득한 국어 교과서는 느린 학습자들에게 고통감을 준다”며 “글을 읽고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느린 학습자들도 이야기 글 속의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유추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어휘력도 부족하고 글자와 문장, 글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서 글의 주제와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문해력이 약하기 때문에 느린 학습자와 일반 학습자 사이에 학습격차가 초등학교 5∼6학년 때 확 벌어진다. 초등 고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지식을 배우면서, 계산능력이나 단순한 글 읽기 능력만 가지고 학습을 하기가 어렵다. 그는 “느린 학습자들은 기계적으로 글자를 읽을 뿐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느린 학습자들이 초등 3학년 또는 초등 4학년 1학기 수준의 문해력을 갖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학교 생활을 무난히 하는 줄 알았던 자녀가 이때 확연한 학습격차를 보이면서 느린 학습자라는 걸 발견하는 부모들도 종종 있다.

이에 따라 느린 학습자들의 문해력 지도의 목표는 “초등 6학년 이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초등 6학년 수준 이상의 문해력이란, 모르는 어휘가 나와도 전후 맥락을 생각해서 이해할 수 있거나 혹시 모르는 경우 스스로 찾아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자발적 태도를 갖추는 것, 글을 줄거리를 알고 해당되는 부분이 글 전체에서 어느 부분에 해당되는지 아는 것, 글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고 글의 내용과 연관지을 수 있는 것 정도를 갖추는 단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한 독서습관 들이기, 적정 분량의 책 읽기, 이야기 글 꾸준히 읽기, 다양한 주제의 글 읽기 등의 경험이 있어야 하고 각 독해 상황에서 어떻게 글을 읽어야 하는지 기술적으로 배워야 한다. 이같은 느린 학습자들의 문해력 지도는 성인기 초기까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청소년기까지는 학업을 따라갈 수 있는 문해력 지도를 해야 하지만, 사회진출을 앞두고는 실생활과 사회 생활에 필요한 문해력 지도를 도와줘야 한다. 실제로 박씨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문해력을 지도하고 있다. 성인의 경우엔 유명 소설이나 자기계발서를 함께 읽으면서 문해력을 키운다.

느린 학습자의 독서습관을 잡아줄 때,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도록 하면서 독서 권수보다 책을 읽은 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문해력 지도를 할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부모가 지도를 할 때,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그는 “학습만화와 같은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며 “학습만화가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는 좋은 방식이 될 수 있지만 글을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만화 형식뿐만 아니라 그림책, 글로만 이루어진 책을 골고루 읽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단순히 몇 권을 읽었는지 체크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며 “책의 내용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 책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일부만이라도 자기 의견을 담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책은 도구일 뿐이고 사고력을 키우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책을 읽은 뒤 자신의 것으로 얼마나 소화하고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부모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책을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엄마 아빠와 도서관 나들이를 하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데이트를 하기, 책 한권을 읽으면 떠들썩하게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등 책을 읽는 것이 즐겁고 자랑스러운 일이 되도록 하면 좋겠지요.”

느린 학습자에 대한 교육의 궁극적인 방향과 목표는 “독립된 학습자이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독립된 학습자란 지식이 많지 않아도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낄 때 책이나 정보를 찾아서 자기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고 자신에게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문해력이 약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 정보를 구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되기 때문에 느린 학습자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여러 정보를 읽고 해석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느린 학습자들은 익숙한 활동에 대해서는 덜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려서부터 꾸준한 독서습관이 잡히면 느린 학습자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고, 문해력을 향상시키면 느리게라도 자신을 위한 정보를 찾고 사고력을 발달시키며 살아갈 수 있다고 그는 마무리했다.

글·사진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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