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집단사고에 빠지는 법
집단사고 매몰 빈번
구성원 다양성 부족에
독자 판단 차단된 결과
대학교수는 학교 운영에 관한 여러 위원회에 참가합니다. 워낙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토론은 좀처럼 지루하지 않습니다. 저와 같이 말하기와 듣기가 어눌한 외국인은 조용한 편입니다. 모국어를 쓴다면 저도 할 말이 많겠지만, 대체로 외부자의 시선으로 회의를 관찰합니다.
회의가 끝날 때마다 깊은 회의감에 빠집니다. 도대체 "왜 회의를 할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습니다. 관찰자 입장에서 본 토론과 의사결정은 집단지성의 힘을 거부하고 집단사고에 매몰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습니다. 똑똑한 이들의 토론이 바보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인문대에서 소수 그룹인 경제학 교수 동료들은 종종 이런 불만을 토로합니다. "오늘 회의에서도 통계학의 기초를 무시한 영문학과 교수의 시적 정의가 승리했다."
집단지성의 힘은 개인이 빠지기 쉬운 다양한 편향과 오류를 줄여주는 것입니다. 1907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소 무게 맞히기 대회' 이야기는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참가자 787명의 추정치 평균값은 1197파운드였고, 실제 소 무게와의 차이는 단지 1파운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경제지표, 주가, 날씨 예측 등에서도 전문가집단의 평균이 상당히 높은 예측력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구성원이 독자적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면, 집단지성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회의 결과는 누가 더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누가 더 확신에 차 있는가, 심지어 누구의 목소리 크기가 더 큰가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집단 압력과 진영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다양성을 잃은 집단의 회의는 집단사고에 갇히고 편향과 오류를 증폭시킵니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면 그저 그런 아이디어를 대단한 아이디어로 판단합니다. 극단적인 의견에 더욱 결속력을 보입니다.
이런 상상을 자주 합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여러 집단이 따로 토론하고 의사결정을 해보는 것입니다. 각 집단의 결정은 얼마나 비슷할지 궁금합니다. 누가 먼저 목소리를 내는가에 따라서도 각 집단은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까요? 결과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실제 실험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72개의 새로운 노래 음원을 제공하고 각 노래의 다운로드 수를 살펴보았습니다. 통제군에 속한 이들은 다른 이의 선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자기가 좋다고 생각한 노래를 다운로드합니다. 8개로 나뉜 실험군 속 이들은 다른 이들이 어느 노래를 얼마만큼 다운로드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비슷한 노래가 모든 집단에서 인기를 얻었을까요?
인기를 얻은 노래와 그렇지 않은 노래는 집단마다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집단 간 차이는 어느 곡이 처음에 인기를 얻는가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그저 우연히 어떤 특정 곡이 어느 집단에서 먼저 다운로드되었고, 실험대상자는 다른 이의 다운로드 수에 큰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의사결정도 내렸습니다. 연구자들은 얼마나 쉽게 사람들의 선택을 조작할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습니다. 통제군에서 얻은 노래 인기도 순위를 거꾸로 바꾸어서 다른 실험군 대상자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들의 다운로드 수를 보니, 인기가 없던 곡이 인기를 얻고 인기 있던 곡은 인기를 잃었습니다.
구성원이 동질적이고 독자적 판단이 어려운 권력기관은 집단사고에 빠지기 더 쉽습니다. 정부 주요 인사가 검찰 출신 위주로 구성된다고 해봅시다. 예를 들어, 핼러윈 참사의 원인을 진단하는 회의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책임자를 지목한다고 해봅시다.
이런 상황은 집단사고가 발생하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정부 조직의 집단사고를 더욱 염려하는 이유는 온 국민이 대통령과 특정 집단의 편향과 오류에 갇힌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재수 美인디애나 -퍼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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