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에 충실해야 고전의 매력 살아납니다"

고보현 기자(hyunkob@mk.co.kr) 2023. 1. 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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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갈매기' 연출 겸 배우 이순재 인터뷰
기성세대에 좌절당하는
젊은세대 슬픔 묘사한 작품
체호프의 철학 살려 공연
6월에 '리어왕'으로 컴백
"다 죽어가도 무대 오르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요"
지난달 30일 연극 '갈매기'가 공연 중인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연출가 겸 배우 이순재가 미소를 짓고 있다. <박형기 기자>

대배우와 대문호가 만나 연극의 정수가 탄생했다. 지난달 30일 러시아 대표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 공연이 열리는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아흔을 앞둔 노배우 이순재(89)를 만났다. 그는 끊임없이 "고전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원작이 항상 최고"라며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연출이라는 것은 유능한 배우라면 다 하기 마련이죠. 어떤 형식으로 연출하느냐가 다른 겁니다. 원작 그대로 작품의 진가를 인정하고 충실히 재현하는 방법과 연출 배짱에 의해 해체하거나 뒤집는 형식. 결국 원작 이상을 능가하는 작품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연극 갈매기는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성공한 스타 작가 '뜨리고린'과 중년의 유명 배우 '아르까지나', 그의 아들이자 젊은 작가 지망생 '뜨레쁠례프'와 여자친구 '니나' 사이에 오가는 비극적 갈등과 꿈과 사랑을 그렸다. 물에서 떠나 살고 싶어하나 평생 물을 떠날 수 없는 존재인 갈매기를 통해 기성세대에게 좌절당하는 젊은 세대의 슬픔을 묘사한 고전 중의 고전이다. 국내에선 수많은 버전으로 무대에 올라 '연극인의 교과서'로 불린다.

그는 "체호프가 쓴 원작에 담긴 사상과 철학, 작품 그대로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며 "작품 속 대사의 길이나 분량으로 봤을 때 배우의 연기가 살아야 되는 공연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화법, 화술 등으로 연기를 극대화하는 것에 특히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젊은 세대가 가진 꿈과 유능함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발판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 대중에게 사랑받아온 매력, 작품이 끝난 뒤 더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깊이를 지닌 배우는 이 고전 작품과 비슷하게 닮아 있었다. 최고령 리어왕 역을 맡아 화제가 됐던 2021년 연극 '리어왕'에서도 그는 "배우란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전해야 한다"며 꾸밈없는 연기를 내세운 바 있다.

그는 "당시에도 3시간 넘는 공연이 한 달 가까이 전석 매진이었다"며 "예전 같았다면 관객에게 너무 어려운 작품이라고 여겨져 간추리거나 따로 해석했을 것이다. 이제는 한국 관객의 수준도 정말 높아졌고 그에 대한 요구도 많기 때문에 걱정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공연에는 소유진, 오만석, 김수로, 진지희, 강성진 등의 배우들이 함께한다.

특히 이순재와 진지희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할아버지와 '빵꾸똥꾸' 손녀로 호흡을 맞춘 뒤 13년 만에 무대에서 재회했다. 그는 "지희뿐 아니라 젊은 배우를 보면 요즘 세대가 아예 달라졌다고 느낀다"며 "처음 맡는 역할에도 창의력이 나오고, 연출가인 제게 와서 적극적으로 소통도 한다"며 흐뭇해했다.

새해 그의 행보는 언제나 그랬듯 무대와 스크린을 바쁘게 오갈 예정이다. 드라마에 영화 2~3편까지 촬영이 계획돼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는 6월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최고령 리어왕을 맡았던 연극 '리어왕'으로 컴백한다. 그는 "2022년은 복잡한 한 해였지만 새해에는 늘 앞을 보며 희망과 가능성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60년 넘는 연기 인생 동안 쉴 새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는 열정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는 "나에겐 일한다는 것이 바로 살아 있는 것"이라며 "생존의 보람을 느낀다"고 미소 지었다. "다 죽어가도 무대 위에 올라가면 살아요. 무당이 멍석 깔아놓으면 춤추는 것과 마찬가지지.(웃음)" 2월 5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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