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 Now] 시장을 너무 몰랐던 일본은행
10년물 국채 금리까지 통제
채권시장 왜곡으로 이어져
국가 중앙은행의 정책 번복에
시장선 '못 믿겠다' 우려 증폭
'투기세력에 몰렸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금융 완화를 지속하던 일본은행(BOJ)이 최근 사실상 금리 인상에 나선 배경을 두고 이런 평가가 나온다. 결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금리 인상에 나선 상황에서도 '나홀로 금융 완화'를 유지했지만 시장을 이겨내기는 어려웠다는 얘기다.
일본은행은 장기금리(국채 10년물 기준)를 '0%±0.25% 정도'로 유지하는 금융 정책에서 변동허용폭을 '±0.5% 정도'로 바꿨다. 일본은행은 변동허용폭 이상으로 금리가 올라가는 움직임을 보이면 '지정가격 오퍼레이션(공개시장조작)'으로 불리는 국채 매입을 통해 이를 억제해왔다. 따라서 변동허용폭 확대는 사실상 금리 인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고 실제 시장금리도 움직였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에 해당하는 조치를 취한 이유에 대해 많이들 주목하는 것은 엔화가치 약세와 물가 상승이다. 작년 초 달러당 115엔 수준이던 엔화가치가 10월에는 32년 만에 최저치인 151엔대까지 떨어졌고 이 같은 엔저가 국제 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과 겹치며 '디플레이션'의 대명사였던 일본에서 물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민들이 물가 고통을 호소하니 지지율에 민감한 일본 정권과 일본은행이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엔저와 물가 상승 이외에도 일본은행을 금리 인상으로 몰았던 배경에는 채권시장의 왜곡이 있다. 일본은행이 장기금리의 기준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촘촘하게 통제했고 상대적으로 30년물처럼 다른 만기의 채권 금리에 대해서는 관리가 느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자나 투기세력이 이런 상황을 활용해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예를 들어 장단기 금리 차가 확대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포지션을 취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고 이런 현상들은 채권시장의 왜곡을 증폭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채권시장 왜곡은 결국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고 이런 상황들이 일본은행이 금융 완화 정책을 수정한 이유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시장의 압박에 몰렸던 일본은행은 금융 완화 정책의 수정 과정을 거치며 '신뢰 약화'라는 부작용도 안게 됐다. 금융 완화 정책 유지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오던 일본은행이 예상을 깨고 사실상 금리 인상에 나서자 시장에서는 '이제 못 믿겠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신뢰가 약해지면 시장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나홀로 금융 정책'을 언제까지나 지속하기는 힘들 것이고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4월 이후에 정책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에 몰렸던 데다 신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으니 정책 변화까지 가는 길이나 그 후의 행보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김규식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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