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중’자 팝콘은 ‘미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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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으로부터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세 코스에 나오는 음식의 종류, 맛, 재료, 조리법, 자신의 배고픔 정도 등을 면밀하게 고려해서 가성비가 제일 좋은 코스를 합리적으로 고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제일 비싼 코스는 부담스럽고, 제일 싼 코스는 체면이 안 서는 듯해서 중간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다.
만약 이 미끼를 없애면 제일 싼 '학' 코스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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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으로부터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평소에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자주 한다. 똑똑한 척하지만 실은 돈을 쓰면서 오류와 실수를 밥 먹듯 한다.
평소에 돈을 아끼는 사람도 일 년 전에 입었던 옷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돈이나 복권에 당첨돼 받은 돈은 횡재했다며 헤프게 써버리는 경향이 있다.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이나 복권 당첨금이나 다 같은 돈임에도 사람들은 꼬리표를 달리 붙여 씀씀이를 달리한다.
가격 할인을 하며 판매 수량을 5개로 한정한다는 광고를 보면 굳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5개를 주문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고는 집에 보관할 장소가 없어 애를 먹거나 심지어 유효기간이 지나서 버리는 경우까지 생긴다.
‘유기농’ ‘자연산’ ‘프리미엄’ ‘골드’ ‘무지방’ ‘웰빙’ 같은 수식어를 보면 상품의 진정한 성분과 가치를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성급하게 마음의 문을 연다. 값이 좀 비싸더라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지갑을 선뜻 꺼낸다.
기업은 소비자의 이러한 행동과 선택을 철저히 파고든다. 정상 가격을 높게 적은 뒤 그 아래에 할인 가격을 표시하는 방법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소비자들은 본능적으로 정상 가격과 비교하고 값이 싸다고 인지한다. 돈을 냈음에도 정상 가격보다 싸게 샀으니 돈을 벌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노리는 판매 전략이다.
식당에 가면 코스 요리가 있다. 세 가지 코스 ‘경’ ‘제’ ‘학’의 가격이 각 10만원, 5만원, 3만원이라 하자. 세 코스에 나오는 음식의 종류, 맛, 재료, 조리법, 자신의 배고픔 정도 등을 면밀하게 고려해서 가성비가 제일 좋은 코스를 합리적으로 고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할까? 상당한 돈을 내면서도 대개는 주먹구구식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100원을 아끼겠다고 아등바등한다.
주먹구구식 선택에서 제일 인기 있는 건 중간 코스인 ‘제’이다. 제일 비싼 코스는 부담스럽고, 제일 싼 코스는 체면이 안 서는 듯해서 중간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다. 극단을 회피하는 심리가 작동한 탓이다.
한 끼에 10만원이나 하는 비싼 ‘경’을 선택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도 식당은 이 코스를 메뉴에서 없애지 않는다. 중간인 ‘제’를 선택하게 만드는 미끼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미끼를 없애면 제일 싼 ‘학’ 코스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영화관에서 파는 팝콘에도 미끼가 있다. 가격을 비교해보면 ‘중’자 팝콘을 사느니 1천원을 보태 거의 두 배 크기의 ‘대’자를 사는 게 나아 보인다. 이때 ‘중’자는 ‘대’자 팝콘을 사게 유혹하는 미끼이다. 실제로 대부분 영화 관람객이 미끼를 물고 ‘대’자 팝콘을 주문한다. 소비자의 선택에 영화관은 빙그레 웃는다. <끝>
한진수 교수(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 ‘청소년 ‘경제톡톡’’ 연재를 마칩니다. 한진수 필자님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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