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 정교회에겐 ‘십자군 전쟁’… 총대주교가 푸틴 조종”
작년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푸틴의 복사(服事ㆍ사제의 미사 집전을 돕는 소년) 노릇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은 키릴 총대주교가 아니라 푸틴이 키릴의 복사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 전쟁은 서방의 반(反)문명ㆍ적(敵)그리스도 세력인 이교도들이 장악하려는 ‘예루살렘’ 우크라이나를 구하려는 키릴 총대주교의 ‘십자군 전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주장을 편 사람은 우크리아나 정교회 신부로서, 2012년까지 10년간 키릴 총대주교의 비서로도 일했던 키릴 호버런(Cyril Hovorun) 교수다. 호버런 교수는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러시아 정교회 신학에 해박한 인물로 널리 알려졌으며, 현재 스웨덴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스톡홀름에서 종교 및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다.
호버런 교수는 지난달 프랑스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만행은 우크라이나를 악(惡)에서 구한다는 ‘러시아적 메시아주의(救世主義)’라는 사상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며 “푸틴과 그 일당은 자신들이 십자군이란 생각을 갖고 있고, 그들에게 우크라이나는 예루살렘”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십자군이 이교도들이 더럽힌 성지(聖地)를 정화하려 했듯이, 이제 러시아군은 동성애자ㆍ세속주의자ㆍ가톨릭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노예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이교도’들의 땅(우크라이나)에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호버런 교수는 이어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푸틴은 깊게 사고를 할 수없는 인물이며, 푸틴의 메시아적 영감은 스스로 러시아의 역사와 경전을 읽어서 터득한 것이 아니라 이 전쟁을 지지한 러시아 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의 입력(input)이 없었다면, 전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총대주교가 생각하기에는, 복사 노릇을 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푸틴”이라고 말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교회가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상을 믿으며, 그에게 ‘러시아적인 세계(Mir)’는 공적 영역에서도 정교회가 최상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호버런 교수는 말했다.
호버런 교수는 키릴 총대주교와 측근들이 1993년 처음 논문으로 나온 새무얼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을 읽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문명의 예외적 탁월성이란 입장에서 이 논조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2번 연임한 푸틴은 헌법에 따라 3선 연임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최측근 심복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잠시 대통령직을 맡겨 놓았다가 2012년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곳곳에서 부정 선거를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그해 5월 6일에도 수도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려 400여 명이 체포되는 등 그의 당선은 정통성이 의문시됐다. 푸틴은 이를 러시아 정교회와 키릴 총대주교에게서 찾았다.
키릴 총대주교는 2012년 “푸틴의 지배는 신이 이룬 기적”이라고 했다. 그 얼마 뒤 호버런 교수는 총대주교의 비서 직을 사임했다. 10년 뒤인 지난 9월 총대주교는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러시아 예비군들에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 신과 함께 있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성시했다.
키릴의 생각은 그대로 메드베데프의 텔레그램 메시지에서도 읽힌다. 그는 최근 “우리와 대적하는 자들은 누구인가”라고 묻고는, “우리의 언어와 가치, 신앙을 금지하려는 자들, 우리 조국의 역사에 증오를 퍼뜨리는 자들” “미친 나치 쓰레기들과 서방의 개집에서 짖는 개떼들”이라고 했다. 메드베데프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신앙도 이상도 없으며, 보통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도덕성도 부인한다”며 “우리는 창조주의 말에 경청하고 일어남으로써 신성한 파워를 획득했다”고 주장했다.
호버런 교수는 “푸틴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키릴 총대주교가 준 선물이고, 이 이데올로기를 구축한 이들은 ‘정치적 이슬람주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자신들의 교회에 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와 푸틴이 보기엔 “선과 악의 세력 간 형이상학적인 전쟁을 치르는 중이며, 메드베데프의 표현을 빌리자면(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옥의 최고 군주를 막는 전쟁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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