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하락에 "계약갱신 안써요"
임대차법, 갈수록 무용지물
"계약갱신권을 왜 써요. 요즘 그거 쓰는 사람이 바보죠."
경기도 일산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직장인 이 모씨(42)는 최근 같은 동네 구축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2년 전 3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을 했는데 전셋값이 많이 떨어져 구축 아파트로 옮기면 2억원대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주인은 계약을 연장하기를 원하는 눈치였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계약갱신을 쓰는 게 바보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셋값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임대차 시장에서 계약갱신권 사용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 임차인들은 계약갱신권을 사용하지 않고 전세가가 더 낮은 곳으로 이사가고 있다.
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 주택 전월세 신고 건수는 총 4만579건으로, 이 가운데 갱신계약은 27.7%인 1만2487건으로 집계됐다. 갱신계약은 지난해 5월 24.6% 이후 가장 낮아졌다. 같은 해 11월 갱신계약 건 가운데 세입자가 갱신권을 사용한 경우는 5171건으로 41.4%를 차지했다. 이는 2022년 들어 가장 낮은 비중이다. 전세가가 떨어지면서 계약갱신을 청구하지 않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더 싼 전셋집으로 이사하는 사례도 많다. 굳이 계약갱신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세입자가 귀한' 만큼 임대인들은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권을 쓰길 원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계약갱신권의 '독소조항' 때문이다. 계약갱신권을 사용한 임차인은 계약 기간이 남았어도 언제든 이사를 갈 수 있다. 임대차법 제6조 2에 따르면, 묵시적 갱신의 경우 임차인은 언제든지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를 할 수 있고 3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한다. 임대차법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경우에도 이 조항을 준용한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임차인이 이사를 가겠다고 통보하면 3개월 안에 임대인은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5% 이내 보증금 인상으로 세입자를 붙잡은 임대인은 언제든지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리스크'에 노출되고 있다. 임대인은 세입자가 연장 의사를 밝히면 차라리 임대료를 깎아줄 테니 계약갱신권을 쓰지 않고 계약갱신을 하자고 권유하고 있다. '언제든지 세입자가 퇴거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시장 안정화를 위해 도입됐다는 법이 시장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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