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포용과 약자 이용은 달라 …'정중함' 갖춘 사회 되길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 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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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거목' 이문열 작가
새해를 맞아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만난 이문열 소설가는 "정연하지 않은 말은 사회가 망해버리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박형기 기자>

의혹과 낙심에 세상이 가마솥처럼 들끓던 시절을 지나 정권이 두 차례 바뀌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화한 듯 변화하지 않았고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새해를 여는 모든 마음도 큰 기대 없이 시작된다. 지금 우리는 유구한 길의 어느 지점을 걷고 있는 것일까. 새해를 맞아 소설가 이문열을 만나 시대의 병폐, 언어의 타락, 견해의 피폐, 복수의 정치, 비관과 낙관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 봤다. 지난달 22일 만난 그의 집필실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 탁자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史)' 교정본이 놓여 있었다.

―근황이 궁금하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를 다시 읽고 있다. 추천사를 써달라고 요청이 들어와 한동안 읽었고 요즘 재독 중이다.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행방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16세기 서술로 도시 피렌체만의 역사라기보다는 '로마사, 그 후'가 정확한 주제다.

―꽤 벽돌책인데 왜 이 책인지.

▷로마가 망해서 사라진 게 아니라 나름의 생존을 통해 현재까지 올 수 있었다는 단서가 숨겨진 지점이 흥미롭다. 피렌체는 전쟁에서 패하면 불행해졌고, 승리하면 훨씬 더 불행해졌다. 한국 사회, 한국 정치와 겹쳐지는 지점도 있다. 묘한 책이다.

―고령에도 직접 그은 숱한 형광펜 밑줄이 눈에 띈다.

▷나도 이제 일흔다섯이다. 책은 더러 넘겨 보기도 하고 시간이 되는대로 펼쳐 숙독하는 편이다. 출판사가 보내준 책 중 몇 권은 주제별로 책장에 꽂아뒀다. 아직 읽지 않은 이 방의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진 모르겠다. 요즘은 읽을수록 좀 무력감이 들어서.

―작가로서 무력감의 원인은 뭘까.

▷요즘 두어 달간 '말'에 관해 생각 중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또 어디서부터 문제였는지 고민이 돼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결국 이 사회의 문제는 말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그 언어는 엄연한 선택의 결과였다. 경우에 따라 음감까지 고려해 말을 고르는 게 인간 언어 사용의 역사였다. 이제 말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는 시대다. 온 세상의 말이 비명이고 욕설 같다.

―정치권의 혼탁해진 언어를 말씀하는 것인지.

▷언어의 타락이고 오활한 말들의 잔치다. 한쪽 진영만 콕 집어 말하는 게 아니다. 좌우 정치권을 가만히 보면 '어떻게 저리도 표독스럽고 야비하고, 그리고 패악스럽게 말할 수가 있나' 싶은 순간이 잦다. 우리가 지나온 한국사회는 깡패의 시대에 이어 군인의 시대까지 지나왔다. 그럼에도 그때조차 요즘처럼 잔인한 언어를 사용하진 않았다.

―심부를 찔러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 없이 상대를 죽이려는 말을 향한 개탄으로 들린다.

▷나는 평생 말(언어)을 다뤄 왔다. 처음엔 좋게 말해서 억눌리고 빼앗기며 살던 피해자의 언어가 정치권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소수가 아닌데도 소수로 무시되다가 이제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그렇게 도망치고 회피하던 자들의 언어가 세상의 중심 언어가 됐으니까. 그런데 어느덧 여야가 공히 그러하다. 한순간 정치 언어를 임의로 꺼내서 분석해보면 제대로 된 명구 하나가 없다. 정치의 언어 수준이 그렇다.

―비극의 원인은 뭘까.

▷상대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내가 아니다"라는 논리적 과정이 없이 "네가 바로 그렇다"고 받아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걸 '말'이라고 할 수가 있고 또 정치라고 할 수가 있나. 악다구니로 한주먹이 되어서 고함을 지를 뿐 논리에서 이탈해 정중함을 잃으면 절대 승자가 나오지 않는다.

―언어가 타락하면 뭐가 문제일까.

▷불비(不備)한 언어는 결국 사회가 망해버리는 길이다. 언어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행동은 곧 현상으로 연결된다. 제대로 계획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달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추앙하고 저속한 선동의 언어에 익숙해지면 그 사회는 빈민 대중이 사회의 주인이 된다. 약자를 보듬고 받아들이고 적극 대응하는 것과 약자만의 사회를 주장하면서 정치인들이 그들을 도구로 써먹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역사를 보면 약자는 혁명의 동기가 되긴 했어도 혁명의 반듯한 결과로 이어지진 못했음이 자명하다.

―누구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나.

▷특정인을 꼽을 순 없다. 모두가 둔감해진 이 사회의 속도 역시 문제다. 생각할 틈도 없이 쏟아붓는 문화,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이 시대의 속도는 사유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좀 더 현실로 가보자. 2016년 칼럼에서 보수를 향해 '죽어라, 죽기 전에'라고 일갈했고, 그 이후 정권이 두 차례 바뀌었다. 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는 '잘 버텨냈구나'하는 느낌으로 보고 있다. 어떤 건 이미 성공했고 어떤 건 결과를 봐야 한다. 우리가 잘 모르던 사람, 누군가에겐 악명까지 높던 사람이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이 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이 잘해도 소용이 없는 세상이라 그게 우려스럽다. 대선 표차 0.73%포인트가 현 정부의 발목을 끝끝내 잡을 것 같아 걱정이다.

―전 정부 적폐 청산에 대한 반작용, 또 최근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언급해 올해 큰 변화가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가 태어난 건 문재인 정부의 실패 때문이므로 적폐 청산은 피할 수 없는 물줄기가 될 것이다. 소설 '젊은 날의 초상'(1981)의 배경이던 경북 산지에 가니 풍차(풍력발전기) 아니면 태양광 설비만 가득하더라. 우리나라 산지가 칠할인데 이게 뭔가 싶었다. 노동개혁을 언급한 건, 글쎄다. 얼마나 쥐여 터지려고 그러나 싶기도 하고(웃음).

―얼마 전 경북 영양에서 만나 뵈었을 때 '필론과 돼지'(1980)를 중단편 중 최고작으로 언급했다.

▷특수부대 무리가 열차 승객을 갈취하고 참다 못한 열차 내 전역병들이 다시 폭력으로 맞서는 내용이다. 당시 유신이 끝나면서 사람들은 이제 자유라고 생각했고 난 그런 분위기에서 '필론과 돼지'를 5월 16일 발표했다. 사흘 뒤가 5월 18일이었다. 국군보안사령부 쪽에선 내가 '유신 끝나서 살 만한데 또 군인이 왔다'는 식으로 전두환을 비판했다고 하고, 광주에선 내가 자신들을 폭도(소설에서의 전역병들)로 몰아붙였다고 하니 참 고약한 상황이었다.

―특수부대 무리와 전역병 무리의 살기등등한 결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옆 칸에서 소주를 마시며 잠이나 자는 후반부 인물(홍동덕) 묘사가 탁월했다.

▷한 인간이 하늘에서 내려준 파도를 어찌 막겠나. 소설가는 하나의 방향만을 겨냥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다만 내가 소설에서 말하려던 건 '무지(無智)와 혁명이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느냐'였다. 소설에서 화자인 이형도 홍동덕처럼 체념한 채 소주병을 받는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는데 '오디세이아 서울'(1993)이 출간된 지 올해가 30주년이다. 몽블랑 만년필을 1인칭 삼아 한국 자본주의와 윤리를 보여준 작품으로, 지금도 울림이 크다.

▷서민의 열망은 부동산으로 표출되고 한바탕 벌어 올라서려는 졸부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었다. 베스비우스 화산이 터지던 폼페이에도 비슷한 졸부는 있었을 것이다. '나까마'라고 해서 1990년대에도 차액만 먹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직접 관찰할 기회도 마침 있었다. 노동자도 아니고 자본가도 아니면서 묘하게 소득을 취하는 사람들.

―왜 하필 몽블랑 만년필이었나.

▷당시 여행을 다니다가 공항에서 값이 3700달러나 하는 금장(金裝) 몽블랑 만년필을 보고 자본주의의 소용돌이를 그려 보려 했다. 소설에선 파리 드골 공항에 간 김왕흥 사장이 산 몽블랑 펜 하나를 갖고 윤리의 잣대나 전제 없이 그 시대의 초상화를 그려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자본주의의 비판과 타락, 부패를 이야기하려면 자본주의의 자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신문 연재였는데 다 끝나고 나니 몽블랑 본사에서 만년필 하나를 보내주더라(웃음).

―장편 대표작은 아무래도 '사람의 아들'(1979)이 아닐까 싶다.

▷젊은 때는 총기도 좋았고 히브리어 수사학을 공부해 소설에 담을 정도로 열의가 있었다. '낡은 신은 죽었고, 새로운 신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세계관으로 소설을 평가받았지만 당시 내 세계관은 '새로운 신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올 새로운 신은 있는가'였다. 이를테면 위장된 유신론, 관념으로 만들어낸 신이랄까. 독자는 읽어 알겠지만 민요섭을 돌려보내면서 난 스스로를 '신이 있기를 바라는 무신론자'로 정의했다.

―영성에 귀의하는 지성인의 전철을 밟은 생각은 없으신지.

▷'사람의 아들'은 기독교에 대한 내 작별의식이었다. 다만 신 그 자체보다도 신을 믿는 인간들의 정성과 열의에 간극을 둘 때가 있다. 2000년 이상 수십억의 인간들이 저기에 모든 걸 걸고 지나왔다는 건데, 그렇다면 저걸 함부로 폄하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람의 아들' 속편을 낸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웃음).

―이제 다시 새해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비관해야 할까, 낙관해야 할까.

▷둘 중에 내 선택을 묻는다면 사실 낙관보다는 비관에 가깝다. 한 시대의 이후를 바라보려면 다음 세대를 보면 되는데, 다음 세대가 형성이 되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그건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속도의 문제도 있을 테지만 적어도 전통과 전승이라고 할, 어떤 연결감이 사라졌음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수없이 몰아가는 것들, 또 빠른 시간 안에 사고와 결정을 해야 하는 속도감을 해결한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정신적인 공허가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걱정스럽다.

[김유태 기자]

이문열은… 1948년 종로에서 태어나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 사범대학을 중퇴했고 1979년 중편 '새하곡'으로 문단에 나온 뒤 시대를 읽어내는 독보적인 문제의식과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불세출의 문장가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 자택과 집필실이 있는 이천 부악문원에서 1980년대를 정의하는 소설 '둔주곡' 연재 재개를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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