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판인 피의자 사진 논란…신상공개 규정엔 ‘동의 얻어 촬영한 사진·영상물’로 제한

김동환 2023. 1. 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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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신상 공개한다면서도 사진 등에는 ‘동의 전제’ 규정에 포함
최근 이기영 사진 공개하고도 뭇매 맞은 경찰…당사자 ‘선택’으로 과거 사진 공개
신상 공개 겨냥한 비판 지속…‘무죄추정원칙’ 위반 반론 등도 제기돼
경기북부경찰청은 지난달 29일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4개월 사이 동거녀와 택시기사를 잇따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의 신상정보를 이날 공개했다. 연합뉴스
 
‘호송·송치 시에 피의자 얼굴의 노출 가능성이 있어 언론이 이를 활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해도….’

앞서 2021년 열린 경찰청과 국가경찰위원회의 ‘제475회 국가경찰위원회 회의 개최 결과’ 관련 자료에 이 같은 말이 등장한다. 재범 방지 등 ‘국민의 알 권리’ 외의 공공 이익이 현저히 크다고 인정될 때, 신상공개로 지침을 수립해야 한다는 ‘피의자 얼굴 등 신상공개 지침 일부 개정 지침안’ 소개 부분에서다.

자료는 언론이 무분별하게 피의자 신상공개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면서, ‘수사기관이 법률에 근거한 엄격한 판단 기준 하에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고 인권 보장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미공개 사유의 강화·보완으로 실무 적용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검찰 송치 과정에서 피의자 얼굴이 언론에 노출되고 보도로 이어지는 것까지 막을 수 없더라도, 경찰 자체적으로는 피의자 인권 침해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리에서는 피의자의 신분증 등 공개방안의 신규 도입과 함께 ▲신상공개위원회 개최사실 사전 통지 ▲대상자 의견 청취 ▲공개결정 시 처분 통지(서면) 등 피의자 방어권 보장 절차 마련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4개월 사이 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이기영(31)이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만 해도 아직 이기영의 이름과 얼굴 등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여서 언론에서는 그의 실명 대신에 A씨 등의 표현을 썼다. 뉴스1
 
최근 4개월 사이에 동거녀와 택시기사를 잇따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의 얼굴과 신상정보가 지난달 29일 운전면허증 사진 등을 통해 공개된 후, 실물과 다르다는 논란이 제기된 것도 이러한 지침안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기북부경찰청이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이씨의 얼굴과 이름·나이 등을 공개했지만, 제일 중요한 이씨의 얼굴은 당사자 ‘선택’에 따라 최근 사진이 아닌 면허증 속 과거 사진으로 대체돼 경찰이 뭇매를 맞았다.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경우 등 피의자 얼굴과 나이 등을 공개토록 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을 경찰이 따랐지만, 반쪽짜리 공개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는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의 공보에 관한 기준과 절차 등을 규정한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과도 맞닿아 있다.

규칙은 특정강력범죄법에 따라 피의자의 얼굴과 성명 등을 공개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얼굴 공개 시 얼굴 가리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 수사과정에서 취득하거나 피의자의 동의를 얻어 촬영한 사진·영상물 등을 공개할 수 있다’고 밝힌다.

과거 ‘얼굴을 공개하는 때에는 얼굴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던 내용에서 개정돼 한 발 나아갔지만, 피의자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소극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피의자 얼굴 등 신상공개 지침 일부 개정 지침안’이나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모두 실효성 논란에 부딪힐 수밖에 없어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관련 규정을 비판하는 누리꾼들 목소리는 피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사자의 최신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는 쪽으로 뭉치는 분위기다. 경찰이 피의자 얼굴 등 공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이 택시기사를 살해한 이기영(31)의 전 여자친구 살해 후 시신 유기 자백을 확보한 지난달 27일, 경기 파주시 공릉천 주변 시신 유기 장소를 경찰이 수색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아직 이기영의 실명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뉴스1
 
‘공소 제기’ 전 상황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피의자 신상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특히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도 않은 피의자의 얼굴과 성명 등 공개는 당사자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고, 무죄추정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피의자 신상공개를 둘러싼 비판적인 여론은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의 보고서에도 언급되어 있다.

헌법재판연구원이 2021년 펴낸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에 관한 헌법적 연구’보고서는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는 제도 도입 시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고 밝혔다.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신상공개 여부를 법관이 아닌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명확하지 않은 기준을 통해 정하게 한 점이 제도 본질이라고도 보고서는 말한다.

위원장 1명을 포함해 총 7명(경찰 3명·외부 위원 4명)으로 구성하는 경찰청 산하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놓고는 “지방경찰청장 자의적 판단에 (구성이) 맡겨진다는 지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보고서에는 “객관·공정·전문성 확보가 어렵고 피의자 인권보다는 국민 여론이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신상공개 여부가 결정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고 적혀 있다.

비슷한 관점에서 ‘무죄추정원칙’ 위배 우려에는 “피의자 신상 공개로 입법 목적이 달성된다고 해도 공익달성 효과에 비해 피의자 기본권은 매우 구체적으로 제한돼 침해에 이를 정도에 해당한다”며 “사익 침해를 상쇄하고 남을 정도의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로 신상공개에 무죄추정원칙 위반 여지가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이러한 점 등을 종합해 보고서는 “공익을 위해 기본권이 제한될 수는 있지만,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는 기본권 제한을 넘어 침해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헌법적 정당성을 갖춘 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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