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판결문] '채용 비리' 정직 받은 MBC인사부장에 法 "징계무효"

김도연 기자 2023. 1. 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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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사유 인정되나 정직 3개월 과도해
법원 "징계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남용"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MBC가 2018년 특별감사를 통해 드러난 '경력 기자·사원 채용 비리'를 이유로 담당 인사부장에게 중징계인 정직 3개월을 내렸으나 법원은 “징계권 남용”이라며 징계 무효 판결을 내렸다. 인사부장에 대한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징계 수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서울서부지법 제11민사부(재판장 박태일 부장판사)는 지난 9월29일 오아무개 전 MBC 경영지원본부 인사부장이 MBC를 상대로 제기한 징계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양쪽 모두 항소하지 않아 지난해 10월22일 판결이 확정됐다.

내년 정년을 앞둔 오 전 부장은 1987년 7월 MBC에 입사한 직원으로 2015년부터는 경영지원본부 인사부장으로 근무했고 현재는 자산운영국 정보콘텐츠팀 소속이다. 그는 1노조인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나 3노조 MBC노동조합 소속이 아닌 직원이다.

MBC는 기자·PD들의 '공정방송 파업'으로 말미암아 2017년 말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고 최승호 사장이 신임 사장에 임명됐다. 진보개혁 성향의 최 사장과 MBC 경영진은 2018년 '적폐 청산과 조직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자체 감사와 정상화위원회 가동을 통해 대대적 인적 쇄신에 나섰다. 이 과정에 MBC 임직원 다수에게 해고, 정직 등 중징계가 내려졌으나 일부는 법원에서 징계권 남용이 인정돼 제동이 걸렸다.

▲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오 전 부장은 2018년 두 차례 정직을 받았다. 2018년 3월 MBC 감사국은 2013년~2017년 MBC 직원들의 정기 승진에 관한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를 표적으로 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감사 결과 MBC 승진 대상자 명단에 특정 노조 가입 여부, 소송 여부 등을 표기하고 이를 실제 승진 심사에 반영하는 등 부당노동행위가 실재했다고 결론 내렸다.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170일 파업에 참여한 기자·PD·아나운서 등 언론인과 직원들에 대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것이다.

MBC는 그해 5월 오 전 부장에 대해 “직접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으나 2016년 소송 중인 직원 명단 작성에 관여해 승진 관리 내규를 위반했고, 승진 관리 담당 부장으로서 책임이 있다”며 정직 1개월 처분(이하 ① 징계 처분)을 내렸다.

MBC는 2018년 6월과 9월에도 MBC 경력 기자·사원 채용 실태에 관한 특별감사를 실시해 전임 경영진 등의 비위 사실을 밝혔다. MBC는 오 전 부장이 경력 기자 채용 과정에서 “지원하지 않은 사람을 비밀리에 면접에 끼워 넣었고 특정인 합격을 위해 '추천' 글자를 서류 전형표에 표기하도록 지시했다. 인사부장으로서 경력 검증을 방기했고 시용계약서 문안의 조건을 부당하게 완화한 방향으로 작성하도록 지시했으며, 일부 합격자의 합격 전 비위 사실을 알고도 계약해지 등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2018년 10월 정직 3개월 처분(이하 ② 징계 처분)을 내렸다.

오 전 부장은 재판에서 ① 징계에 관해 “경영지원본부 인사부장에 불과해 MBC 직원들의 승진, 채용 등에 있어 결정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경영진인 각 본부장 요청에 따른 자료를 준비해 제공하는 업무를 수행할 뿐”이라며 징계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② 징계에 관해서도 “경력 기자·사원 채용 과정에서 인사담당국장 등 상급자 지시에 따라 실무자들과 면접을 진행했을 뿐 미지원자 채용 및 특정 인원 추천 등을 주도하거나 경력 검증이 부실하게 이뤄진 데 대해 직접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①·② 모두 징계 사유가 인정된다고 봤다. 특히 정직 1개월(① 징계)에 관해서는 “원고(오 전 부장)의 비위 사실은 원고가 인사 업무를 담당하면서 MBC 경영진들의 부당노동행위에 관여했다는 것으로서 그 비위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보인다”면서 “설령 원고가 소송 현황 자료 등의 문서를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고 그런 자료가 승진 심사 과정에 포함된 것이 상급자 지시에 따른 것이라 해도, 단순한 실무자가 아니라 인사부장으로서 중간 관리자 지위에 있던 원고로서는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인사 업무가 공정하게 규정에 따라 처리될 수 있도록 잘못을 시정하고, 통제할 책임이 있었다. 이를 다하지 못한 채 실무자들에게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가 그대로 전달되도록 한 것은 가벼운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직 3개월(② 징계)에 대해서는 오 전 부장의 비위 사실에 비해 양정이 지나치게 무거워 징계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남용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판결했다.

MBC에 따르면, 오 전 부장이 인사부장으로 관여한 2012년, 2014년, 2015년 MBC 경력 기자 채용과 2010년부터 2017년까지의 경력 사원 채용 과정엔 △미지원자 면접 포함 △전형 평가표 가운데 특정 인원에게 '추천' 표기 △경력 검증 부실 △무기계약직 전환 관련 규정 위반 △인위적 선발 배수 조정 등 비위 사실이 적발됐는데 재판부는 오 전 부장이 “적어도 이를 감독·통제하거나 시정하지 못한 채 인사 업무가 부당하게 처리되도록 한 잘못이 있다”고 봤다.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정직 3개월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비위 사실 중) 경력 검증 부실과 같은 상당 부분은 고의적으로 인사 규정을 위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과실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며 “원고가 일부 지원자들에게 어떤 특혜를 주려 했다는 등의 부당한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경력 기자 채용에 있어 미지원자를 면접에 참여시키도록 한 행위나 전형 평가표에 '추천' 표기를 한 행위 등은 상급자 지시를 그대로 따른 것에 불과하다고 보이고, 그 외의 상당수 징계 사유에 관해서도 원고가 해당 비위를 주도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MBC는 원고에게 해고 바로 다음 단계로서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처분이 아니라 그보다 비교적 가벼운 징계 처분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 전 부장이 정직 1개월(기간: 2018년 5월19일~6월18일)과 정직 3개월(2018년 10월31일~2019년 1월30일) 징계로 인해 받지 못한 급여 및 수당(4368만8980원) 가운데 3573만8846원에 대해 MBC가 오 전 부장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 ⓒMBC

오 전 부장은 2일 통화에서 소송 배경에 “노조에 소속돼 있지도 않거니와 30년 다닌 회사에서 개인 명예 회복을 위해 진행했던 것”이라며 “퇴직도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그냥 나가면 징계를 인정하는 꼴이기도 해서 소송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 징계에 관해 재판에선 한두 개 쟁점을 놓고 다툰 것이지만, 당시 MBC 감사는 무리하고 불법적인 면이 적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며 특별히 악의를 가진 적 없었고, 당시 후배 직원들에게도 MBC 감사가 나오면 최대한 협조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닌 걸 뒤집어쓰면서 같은 동료로서 좋게 표현하면 아쉬움, 나쁘게 표현하면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인적 청산'을 목표로 한 MBC의 조치들이 합법과 불법 경계를 오가며 이뤄졌던 것에 대한 비판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6월 대법원도 MBC 정상화위원회가 직원들을 강제로 소환해 진술을 강요한 행위가 헌법상 자기 방어권을 침해했다며 위자료 1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하기도 했다. 오 전 부장은 “소송비도 만만치 않고, 재직 중에 회사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도 부담”이라며 “재판을 더 이어나갈 이익이 없다고 생각해 항소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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