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커스] 관치의 역설… 국책은행, 잇따라 내부 출신 CEO 선임

김유진 기자 2023. 1. 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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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금융 논란에 금융 전문성 높은 인물 발탁
금융당국과 교감 충분한 인사를 선정했다는 시각도 있어

이맘때면 금융가에 늘 떠돌던 관치(官治) 논란이 주춤하다. 정부 입김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지대 중 한 곳인 국책은행이 낙하산 대신 잇따라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국책은행에서 내부 출신 행장이 연달아 나오자 ‘관치 논란의 역설’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책은행 3곳 중 산업은행을 제외한 기업은행, 수출입은행에서 내부 출신 행장이 선임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신임 기업은행장으로 내부 출신 김성태 전무를 임명 제청했다. 김 행장은 1989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미래기획실장, 마케팅전략부장, 전략그룹장 등을 지낸 전략통이다.

당초 기업은행장 자리는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 등 관료 출신이 유력하다는 설이 무성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고심 끝에 업무 능력 등을 고려해 내부 출신 인사를 택하기로 결정했다. 역대 다섯 번째 내부 출신 행장인 김 신임 행장은 3일부터 임기를 시작해 3년간 기업은행을 이끌게 된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7월 윤희성 행장이 임명됐다. 윤 행장은 1988년 수은에 입행해 사상 첫 내부 출신 행장이 됐다.

국책은행은 통상 정부 고위직으로 통하는 등용문이어서 기획재정부 등 정부 출신 관료나 대통령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금융 전문가가 수장으로 가는 게 관례였다. 현 산업은행장인 강석훈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강 회장은 선거대책위원회 후보 비서실 메시지 팀장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특보로 윤석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관치 낙하산 강행 금융위원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금융가에서는 반복되던 국책은행장의 임명 행태가 윤 정부 들어 깨진 데 대해 관치금융 논란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에서 최근 민간금융의 수장 선정에도 입김을 불어넣으며 관치라는 지적이 커지자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정하는 금리부터 지주 회장의 거취까지 당국이 개입하는 발언이 끊임없이 나오며 관치금융 논란이 일고 있었다”라며 “금융당국도 이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어 국책은행에 대해선 검증된 내부 인사를 위주로 기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근 관치금융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소집해 “경영진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선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관치 논란을 일으켰다. 겉으로 보면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각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나온 발언인 만큼 현 회장의 연임에 대한 압박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언 이후 금융지주 회장들은 자리를 하나 둘 내려놓았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책임을 거론하며 용퇴했다.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후임에는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인사였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선임됐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연임 여부를 두고 장고에 돌입했다.

이 원장은 연임을 위해서 라임펀드 중징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손 회장을 향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연일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회사 인사권을 사실상 정부가 쥐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전 정권들과 다르게 특별히 챙길 인물이 없다는 점도 관료 출신 국책은행장이 나오지 않은 이유로 꼽혔다. 행정고시 25회인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금융당국 수장을 맡고 있어 직접적으로 김 위원장과 연을 닿은 국장급 이상 인물이 없고, 이들 중 윤석열 캠프에서 활약한 인사도 없어 따로 금융권의 요직을 맡길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일각에서는 이번 국책은행 인사가 관치금융에서 벗어난 인사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금융 전문성이 높은 측면은 분명하지만, 내부 출신 인물인 만큼 오랜 기간 금융당국과 손발을 맞춰와 이미 정권의 방향성에 대한 교감이 충분한 인물을 CEO로 앉혔다는 것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관치금융 논란에 대한 의식이라기보다 해당 인물을 미는 힘이 누가 더 셌는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이라며 “은행별 인사를 모두 묶어서 해석하는 대신 건별(case-by-case)로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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