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밥 잘해주는 엄마’를 투사로 만드는가 [김영희 칼럼]

김영희 2023. 1. 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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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이태원 참사]참사 뒤 2주간 괴롭고 무서워 보지 못했던 뉴스들을 뒤늦게 보며 의문은 커갔다. 처음엔 지한씨 할아버지가 소식을 모르는 상황과 아들에 대해 쏟아지는 가짜뉴스에 얼굴을 숨긴 채 인터뷰를 했다. 평범한 삶을 살던 그들에게 악성 댓글은 말 그대로 ‘칼에 찔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우리가 부끄러울 것도 잘못도 없는데 왜 이래야 하나’ 싶어졌다.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광장에 차려진 시민분향소에 모인 이태원 참사 유가족 50여명이 0시에 맞춰 희생자들의 이름이 띄운 휴대전화를 하늘로 들어 올린 채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김영희 | 논설위원실장

코로나19로 병원 응급실이 부족하던 2021년 겨울,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월1일, 홀로된 아빠의 집 창밖으로 새해 일출을 바라보다 새삼 ‘이제 우리 엄마는 저 해를 보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사무쳤다. 매해 첫날을 함께해온 건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이 아침을 맞지 못한다는 감각만큼 생생하고 아픈 현실은 없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50여명이 12월31일 밤 11시30분 녹사평역 시민분향소에서 함께 새해를 맞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고 이지한 배우의 아버지 이종철씨와 어머니 조미은씨는 지난해 11월22일 유족들의 첫 기자회견 이후 가장 얼굴이 알려진 이들 가운데 하나가 됐다.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이종철씨는 25년 넘은 수입사업을 중단한 채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다. “돈 버는 게 의미가 없어요, 내겐.” 정신없이 장례가 지나고 지하주차장 차 안에서 목 놓아 울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다른 희생자 아버지와 연락이 닿아 처음 만났다. “이상하죠. 그게 조금은 위안이 되더라고요.”

틈틈이 학원강사 일을 해온 조미은씨는 ‘아이들이 집에 오는 시간이면 하던 일을 멈추고라도 챙기러’ 오는 엄마였다고 자신을 말했다. “지한이가 엄마처럼 밥 잘 챙겨주는 엄마는 없다고 늘 말했어요.” 참사 뒤 2주간 괴롭고 무서워 보지 못했던 뉴스들을 뒤늦게 보며 의문은 커갔다. 처음엔 지한씨 할아버지가 소식을 모르는 상황과 아들에 대해 쏟아지는 가짜뉴스에 얼굴을 숨긴 채 인터뷰를 했다. 평범한 삶을 살던 그들에게 악성 댓글은 말 그대로 ‘칼에 찔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우리가 부끄러울 것도 잘못도 없는데 왜 이래야 하나’ 싶어졌다.

조씨는 지난달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영정 앞에서 고운 말 하던 옛날의 엄마는 잊어라, 너의 죽음의 진상이 명명백백히 밝혀질 때까지 유가족들과 함께 투사가 될 것을 맹세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국조특위에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가슴을 치며 분노하다가 다시 손을 붙잡고 ‘죄송하다’며 읍소했다. “엄마니까. 내가 너무 볼품없고 초라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어요.”

지난주 찾은 녹사평역 광장 시민분향소에는 영정 사진마다 핫팩이 붙어 있었다. 2014년 5월9일 청와대 인근 효자동이 떠올랐다. 아이들 영정이 따가운 봄 햇살에 색이 바랠까, 그들은 손수건이나 천으로 영정을 감싸고 있었다. 당시 경찰은 3호선 경복궁역부터 효자동 주민센터 앞까지 늘어서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의 통행을 차단했다. 지금은 그러진 않는다. 대신 온갖 플래카드를 펼쳐놓고 사람들만 모이면 확성기를 트는 극우성향 단체가 늘 곁에 있다. 당시 청와대는 유족들의 대통령 면담 요청에 “‘순수’ 유가족이면 만날 방침”이라고 했다. 대통령 면담을 요청한 국민제안에 지금 대통령실은 일언반구도 없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씨 어머니인 조미은씨와 남편 이종철씨가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골목길을 처음으로 찾아서 오열했다. 처음으로 참사 현장을 찾았다는 조씨는 “그동안 무서워서 못 찾았다. 참사 현장을 찾으려고 해도 내 아들과 여기서 숨진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못 왔다”라며 골목길에 주저 앉아 오열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시민분향소를 찾은 정부 인사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유일했다. 비록 극우 단체 인사와의 악수와 무단횡단 사건으로 남았지만, 그의 예고없는 방문이 결코 나쁜 마음에서 나온 일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랬다면 더욱, 거친 욕을 듣고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하더라도, 자리를 지키며 사죄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유족들이 지금처럼 정부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있다는 생각은 덜 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이태원 참사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결말을 반복하길 바라진 않는다. 그 마음은 유족들이 가장 절실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발언이 때로 지나치게 직설적이라 할지 몰라도, 사실 ‘정쟁’ 프레임에 휩쓸릴까 유족들은 가슴에 담긴 분노와 의문의 전부를 쏟아내지도 못한다고 했다.

배·보상 언급이 유족에 대한 ‘모욕’이라 하는 것도 자칫 ‘자식팔이’ 같은 비난들이 일말의 진상규명 기회조차 날려버릴까 조심하는 마음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지난달 27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닥터카 탑승 문제 하나에 매달리는 여당 의원들을 향해 격한 감정을 쏟아낸 조미은씨와 유족들을 두고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편이네, 같은 편이야”라고 말하며 국조특위장을 떠났다. 설사 민주당이 여당이더라도, 같은 상황이라면 유족들 분노는 매한가지였을 것임을 조 의원은 정녕 모르는 걸까.

파행 속 국조지만 유족 명단 존재를 두고 서울시와 이상민 장관의 상반된 증언이 나왔고, 김광호 서울지방경찰청장의 부인에도 2017년부터 매해 핼러윈데이에 경찰이 인파관리 대책에 따라 이태원에 경비대를 배치해왔음이 확인됐다. 오는 7일 국조가 이대로 종료된다면, 이런 조각은 그저 진실의 파편으로만 남을 것이다.

신년사에서 이태원 참사는 언급도 않던 윤석열 대통령은 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정무적인 책임도 책임이 있어야 묻는 거다”라고 했다. 이 정도면 참사와 유족을 ‘없던 사건’ ‘없는 존재’로 여기는 듯한 의도적 무시다. 국민을 ‘선택’할 수 있는 대통령은 없다. 검찰총장 윤석열을 응원하고 ‘정치경험이 없어도 참모들을 잘 쓰면 된다’라는 생각에 대선에서 찍었다던 이종철 대표는 “왜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단톡방은 이제 109명 국내 희생자의 유가족 190여명이 참여하게 됐다. “연령도, 사는 곳도 워낙 다양하다 보니 생각도 다르다. 하지만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단 한명도 낙오하지 말자고들 다들 말한다.” 지금 유족들을 투사로 만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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