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이슬? 처음처럼? 소주 취향에 답 있다”...1등 소믈리에의 비결

홍성용 기자(hsygd@mk.co.kr) 2023. 1. 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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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수 롯데백화점 소믈리에 인터뷰
‘아시아 최고 와인대회’ 여성 첫 우승
“와인 고를 땐 가격 편견부터 없애야
내가 원할 때 마실 수 있냐는 게 중요”

“가격이 3만원대인 와인이라도, 지금 당장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마실 수 있고, 나에게 맛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와인입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8월 영입한 한희수 소믈리에는 “30만 원, 50만 원짜리 값비싼 와인도 15년을 묵혀둬야 와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면 지금 당장 즐기고 싶은 나에게 좋은 와인이 아니다”라며 “내가 마시고플 때 맛있는 와인이 가격과 상관없이 좋은 와인”이라고 설명했다.

한 소믈리에는 지난해 12월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제8회 프랑스 와인 아시아 소믈리에 경연’서 1등을 거머쥐며 아시아 최정상의 자리에 본인의 이름을 새겼다. 프랑스 정부가 만든 브랜드 ‘테이스트 프랑스’가 주관하는 이 대회는 1990년 첫 대회 이후 소믈리에 경연대회 중 가장 이름있는 대회로 꼽힌다. 이 대회서 여성 소믈리에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한 소믈리에가 최초다.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카파 포르마시웅’ 와인 전문학교를 졸업한 한 소믈리에는 23살의 어린 나이에 SPC그룹 외식사업부에 입사했다. 이후 롯데백화점에 합류하기 전 4년동안 SPC그룹의 28개 레스토랑 전체를 관리하는 헤드 소믈리에직을 맡아 업력을 키워왔다.

한 소믈리에게 직접 ‘좋은 와인을 고르는 방법’에 관한 특급 비밀을 들어봤다.

롯데백화점의 한희수 소믈리에. <사진=이승환 기자>
다음은 일문일답.

-어떤 가격대의 와인이 좋은 와인인가

▷소비자의 눈으로 봤을 때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면 정말 좋은 와인이 많다. 선물을 받았을 때 기분 좋은 와인이 현재 한국 시장에 정말 많다는 얘기다. 좋은 와인을 구별하는 데는 가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싼 와인이 더 좋은 와인이라는 편견을 버리면, 더 좋은 와인을 분별할 눈이 생긴다.

예를 들면 진짜 비싼 와인과 저렴한 와인 두 잔을 블라인드 테스트해보면 둘 다 맛있을 수 있다. 롯데백화점에 ‘신퀀타’라는 와인이 있다. 롯데백화점 합류 전에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서 계속 추천을 받아서 3만원을 주고 사 마셨다. 정말 맛있더라. 이런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30만원, 50만 원짜리 비싼 와인인데 15년은 숙성해야 맛있어진다고 하면, 15년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 그걸 열어서 마시고 싶어도, 지금 마시면 이 와인은 본 모습을 못 보여준다. 그럼 나에게는 좋은 와인이 될 수 없다. 적재적소의 시기에 내가 마셨을 때 맛있는 와인이라면 3만원의 가격이라도 정말 좋은 와인이다.

-즐기기 좋은 와인은 어떻게 고르면 되나

▷사실 어려운 질문이다. 와인을 구매하러 가서 추천받는 게 제일 바람직한 방법이다. 하지만 먼저 와인을 추천받기 전에 본인의 취향을 간파하는 게 중요하다. 본인의 취향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얘기하면, 누군가는 “와인을 안 마셔봤으니 좋은 와인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게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와인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자주 쓰는 꿀팁은 평상시에 소주를 즐겨 먹는지, 맥주를 즐겨 먹는지, 위스키를 즐겨 먹는지 묻는 게 방법이다.

예를 들어 에일맥주를 즐겨 마신다고 얘기하면, ‘깊이 있는 청량감을 좋아하겠구나’하고 추측할 수 있다. 이후 자주 마시는 게 밀맥주인지, 앰버맥주인지, 흑맥주인지에 따라 어떤 바디감을 좋아하는 지 유추해볼 수 있다. 혹은 꽃향기가 나는 맥주를 좋아하면 플로럴한 향을 좋아한다고 파악할 수 있다. 청량한 느낌의 맥주라면 스파클링 와인인데, 플로럴한 제품을 추가로 찾는 식이다. 샴페인에서 화사하고 산뜻한 제품을 추천할 수도 있다.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 사례를 예로 들면 될 것 같다. 예전에 나는 ‘참이슬’을 먹다가 이후 최근 5년간은 ‘처음처럼’을 즐겼고, 요즘에는 ‘새로’ 소주를 즐긴다. ‘참이슬’은 내게 좀 달다. 예전에는 그 단맛이 좋았는데, 나중에는 덜 단 제품을 찾다가 처음처럼으로 넘어갔다. 요새 즐기는 새로는 처음처럼보다 덜 달고, 드라이하다. 알코올 도수도 살짝 낮아서 목 넘김도 부드럽더라. 덜 달고, 살짝 드라이한 입맛에 맞는 와인을 고른다면 실패할 확률이 낮아진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높은 알코올 도수에 저항감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위스키 한 병 딴 뒤에 가끔 한 잔씩 먹는 방식을 즐겨왔다면, 한 병을 단번에 먹지 않아도 되고, 가끔 한잔씩 즐길 수 있는 와인인 ‘포트 와인’을 추천한다.

이처럼 본인의 와인 취향을 모를 때는, 나의 다른 알코올 취향을 연계해 파악해볼 수 있다. “5만원대에서 와인 추천해주세요” 하는 것과, “화이트 와인 5만원대에서 추천해주세요” 하는 것, “과일향이 나는 청량한 스타일의 와인, 가격대는 5만원대에서 추천해주세요” 세 개 중에 어떤 게 추천하기 더 쉽겠나. 가장 후자가 더 좋은 와인을 추천받을 수 있지 않겠나.

-빈티지는 오래된 게 더 좋은 와인이 아닌가

▷‘맞을 때는 맞고, 틀릴 때는 틀리다’고 할 수 있다. 와인의 재료인 포도가 수확된 해를 표시하는 빈티지는 사실 제일 어려운 부분이다. 일례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산불이 났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해당 빈티지의 캘리포니아 와인은 다소 좋지 않다. 소믈리에들이 전 세계 이슈를 꿰뚫고 있어야 좋은 와인을 골라내기 쉽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프랑스 보르도에 2017년에 냉해가 있었다. 그럼 보르도의 2017년 빈티지는 다소 좋지 않다. 프랑스라고 해서 다 빈티지가 똑같은 것도 아니고, 지역마다 다르다. 2017년은 보르도에서 힘들었던 빈티지고, 2018년은 보르도에서 정말 좋았던 빈티지 중에 하나다. 빈티지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사람은 보르도 와인은 2017년 빈티지보다 2018년 빈티지를 고르지 않겠나.

와인 코르크 마개와 스크류 캡의 차이도 와인의 특징을 가른다. 보통 코르크 마개를 씌우는 이유는 오래 숙성하기 위한 것이다. 스크류 캡을 쓰는 와인은 저렴하기 때문이 아니라, 와인의 신선함을 잘 보관하기 위해 쓴다. 숙성 잠재력보다는 지금 마시기 좋은 와인을 강조하고플 때, 와인 생산자들은 스크류 캡을 쓴다.

스크류 캡을 쓰는 ‘모스카토 다스티’ 올해 빈티지는 지금 바로 마셔야 좋다. 지금 바로 마셔야 와인 특유의 산도와 산도를 뒷받침하는 당도, 약간 남아있는 약발포성을 느낄 수 있다.

코르크 마개를 쓰는 숙성 잠재력이 큰 와인일수록 고급 와인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5대 샤또 와인인 샤또 라뚜르, 샤또 오브리옹, 샤또 마고, 샤또 무똥 로칠드, 샤또 라필드 로칠드는 오랜 숙성이 필요한 와인이다.

롯데백화점의 한희수 소믈리에. <사진=이승환 기자>
-음식과 와인은 어떤 방식으로 조합해야하나

▷와인을 음식과 조합(페어링)할때 보통 ‘색깔 대 색깔’로 생각하면 좀 맞추기 쉽다. 육류가 빨간색이니까 레드 와인이랑 조합하고, 생선이 보통 하얀색이니까 화이트 와인이랑 맞추는 것이다. 음식의 색깔이 노란빛이라면 나는 보통 화이트 와인으로 고르는 편이다.

-육류도 부위마다 조합이 다르더라

▷육류에 레드 와인을 조합하는 이유는 레드 와인에 들어있는 성분인 타닌(Tannin)이 육즙을 자근자근 잘 씹어준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레드 와인의 타닌이 육즙과 어우러져서 기름진 맛을 효과적으로 잡아준다. 화이트 와인에는 타닌이 없으니까 육류는 곧 레드 와인 공식이 성립하게 된다.

육즙이 포인트인데, 등심보다 안심이 좀 더 담백하고 부드럽지 않나. 기름진 맛이 좀 덜하니까 안심은 타닌이 조금 덜 해도 괜찮다. 반면 등심은 육즙이 많고, 좀 더 기름진 부위다. 그러면 타닌이 좀 더 센 레드 와인이 어울리게 된다. 정리하면 타닌은 포도의 껍질에서 나오니까, 포도 껍질이 두꺼운 품종일수록 등심이랑 어울린다. 조금 덜 두꺼운 포도 품종이라면 안심이랑 조합하는 게 좋다.

-화이트 와인은 음식과 어떻게 조합하면 좋나

▷화이트 와인은 가볍고 청명하고 산뜻한 스타일이 있는 반면, 미국의 나파밸리나 프랑스의 부르고뉴에서 오크를 많이 써서 약간 ‘오키(oaky) 하다’라고 표현하는 와인도 있다.

생선구이도 레몬즙만 가볍게 뿌려내서 참숯에 구운 도미가 있을 수 있고, 팬 위에 버터를 잔뜩 넣어서 졸이듯이 조리한 도미가 있다. 두 생선 요리는 완벽히 다른 음식이다.

참숯에 담백한 생선살만 넣고 레몬즙으로 마무리한 도미는 오크를 사용하지 않은 청량한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과 조합하면 산뜻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반면 버터를 잔뜩 넣어서 졸이듯이 조리한 도미는 생선만의 육즙도 잘 포함하고 있을 테니, 버터가 듬뿍 담겨진 풍부한 풍미랑 바디감을 잡아줄 동급의 풀 바디 화이트 와인이 필요하게 된다. 미국 나파벨리의 샤도네이나 프랑스 부르고뉴의 화이트 와인과 조합하면 탁월하다.

한희수 소믈리에가 아시아 소믈리에 대회의 결선 평가에 임하고 있다. <사진=롯데백화점>
―전통있는 소믈리에 대회에서 아시아 1등을 차지했다. 우승 소감은

▷아시아 8개국에서 우승, 준우승한 소믈리에가 모여 겨루는 대회다. 8개국에서 2명씩 출전한다. 한국 대회에서 지난해 9월 준우승을 했지만, 보통 각국 1등이 아시아 대회서 1등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기대를 안 했다. 최선은 다했지만, 결승에만 올라가자고 생각했었다. 너무 운 좋게 결승 라운드에 갔고, 좋은 성과를 내서 아직도 얼떨떨하다.

-대회 도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쟁이 있다면

▷준결승에서 치렀던 스페셜 과제가 기억에 남는다. 슬라이드 쇼를 넘기는데 한 슬라이드마다 5초밖에 보여주는 시간을 안 준다고 하더라. 슬라이드에는 겉면이 손상된 와인 레이블을 보여주고, 이 와인이 어떤 와인인지 적어내라는 것이었다. 병도 아니고, 병에 붙어있는 레이블이 사진으로 나왔다. 레이블은 곰팡이가 슨 것처럼 손상돼 있어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12문제를 다 맞췄다. 업장에서 얼마나 와인을 많이 다뤄봤는지를 테스트하는 평가였던 것 같다.

결승전의 블라인드 테이스팅도 기억에 남는다. 블라인드 된 와인의 맛을 본 뒤, ‘생산 국가’ ‘지역’, ‘품종’, ‘빈티지’를 맞추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 첫번째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는 검은색 잔 3개를 주고, 색깔을 분별할 수 없게 했다. 세 제품에 대해 지역 품종을 얘기하고 차이점을 찾아내도록 했다.

두번째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는 일반 스파클링 와인 4잔을 주고, ‘생산 지역’ ‘등급’ ‘타입’ ‘잔여 당도’를 맞춰내야 했다. 잔여 당도는 샴페인에 리터(ℓ)당 당도가 0~12g까지 몇 그램인지를 표시하는 것인데, 7개 단계로 나뉘어 있어 블라인드 상태서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올해 8월 롯데백화점으로 영입됐다.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SPC그룹 외식사업부에 23살의 어린 나이에 입사했다. 이후 롯데백화점 합류 이전 4년 동안 SPC그룹의 28개 전체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를 관리하는 헤드 소믈리에로 역할했다. 입사 후 8년 동안 근무하다 보니, 슬럼프도 많았다. 코로나19를 현장에서 겪으면서 레스토랑 매출이 100%씩 깎이는 걸 눈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외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많이 흔들렸다. SPC그룹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하게 경험해봤다고 결론내린 찰나에 롯데백화점에서 영입 제안이 왔다. 백화점 채널에서 가능한 다양한 이벤트를 해보고 싶어서 흔쾌히 옮기게 됐다.

앞으로 롯데백화점에서는 와인의 프리미엄화를 만들어내고 싶다. 비싼 와인을 많이 팔겠다는 게 아니다. 한두번 좋은 제품을 선점해 물량을 소화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대신 롯데백화점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소믈리에가 3명이 있는데, 프리미엄 클래스부터 가성비 클래스까지 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소믈리에가 찾아가는 서비스도 기획 중이다. 내 전문지식을 활용해 롯데백화점만의 차별화된 와인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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