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0조 넘게 손실난 ‘국민연금’, 기업 CEO 인사 개입할 때?… 수익률은 뒷전, 상식 벗어나

정해용 기자 2023. 1. 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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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이사장, 서원주 CIO 잇딴 기업 인사 개입
10월까지 51조 손실 상황에서 부적절하단 비판 나와

국민연금 최고경영진들이 KT, 포스코 등 소유분산 기업(주인 없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공개적인 인사 개입을 계속하자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행동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에만 50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고 연금 고갈 시기가 계속 앞당겨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정작 집중해야 할 연금 수익률은 뒷전에 두고 큰 문제가 없는 기업들의 인사 개입을 하는 것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라는 얘기다.

2022년 12월 5일 오전 전북 전주시 덕진구 국민연금공단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일 국민연금 등에 따르면 김태현 이사장과 서원주 기금운용본부장(CIO)이 잇달아 KT, 포스코, 주요 금융지주 등 소유분산 기업 인사에 공개 개입 발언을 하고 있다. 서 본부장은 지난달 27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KT 이사회에서 연임이 결정된 구현모 대표에 대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입장문을 발표하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민연금이 특정 기업 CEO 인사에 기금운용본부장 명의의 입장문을 낸 것은 1999년 기금운용본부가 출범한 이후 첫 사례다.

취임 일성으로 특정 기업의 CEO 인사를 공개 비판한 것에 기업들은 물론 금융투자업계도 놀란 상태다. 국민연금 CIO는 ‘자본시장의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위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시장 운용 규모는 122조원이며 지난 2021년말 기준으로 지분 5% 이상 보유 기업은 264개, 10% 이상 보유 기업은 45개다. 서 본부장에 앞서 김 이사장도 지난해 12월 8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소유가 분산된 기업의 건강한 지배구조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구현모 KT대표의 연임을 공식 반대한 것이 주목받은 이유는 주주 가치와 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가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경영진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경영을 해온 대표이사를 물러나라고 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코로나가 확산하던 지난 2020년 3월 30일 취임해 오는 3월에 3년 임기가 끝나고 다시 연임될 예정이다. 구 대표가 취임하던 날 주가는 1만9700원(2020년 3월 30일 종가)이었지만 현재는 3만3800원(2022년 12월 29일 종가)까지 상승했다. 주가가 기업가치 상승 등의 영향으로 1만4100원(71.5%) 급등한 것이다. 배당도 크게 늘었다. 취임 원년인 2020년 주당 1350원, 총 3264억8700만원을 배당했지만 2021년에는 주당 1910원, 총 4503억9400만원을 배당해 1년 만에 주당 배당금이 41.4% 급증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 대표의 실적이 나쁘지 않았고 기업 비전 제시도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은데 국민연금의 연임 반대 의사가 어떤 식으로 기업가치 제고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시장 상황 악화로 연금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인사 개입이나 할 상황이 아니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은 지난해에만 10월까지 51조원의 손실(운용 수익률 –5.29%)을 봤고 12월말까지 집계되면 손실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고갈 시기는 현재 2057년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오는 3월 새로운 장기 재정 전망에서는 고갈 시기가 이보다 더 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1990년 이후 출생자들은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다가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익을 많이 내는데 역점을 둬 국민 노후를 편안하게 보장해야하는데 이런 일은 하지 않고 갑자기 경영을 잘하는 기업의 CEO 인사에 개입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 임원진들이) 정부와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 때문에 국민연금 자체에 대한 지배구조의 리스크가 큰 데 민간 기업의 CEO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자제해야 한다”라면서 “국민연금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기 위해 장기적인 투자를 해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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