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과 함께 ‘청와대를 거닐다’

2023. 1. 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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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거리 교보생명빌딩 근처를 지나다 보면 벤치에 걸터앉은 동상을 볼 수 있다. 행인이 그 동상을 빤히 바라보다가 옆에 앉아서 사진도 찍는다. 동상은 누구를 형상화한 것일까? 

횡보 염상섭의 동상이 광화문 사거리 교보생명빌딩 근처에 있다.

작가 횡보 염상섭이다. 일제강점기 사실주의 문학을 추구했던 그가 광화문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는 서촌이라 일컫는 체부동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청와대 춘추관 2층에서 두 번째 전시회로 문학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알다시피 경복궁 인근에 북촌과 서촌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북촌은 주로 양반 사대부가 거주했던 반면 서촌은 중인이 거주했던 곳이다. 그래서 같은 한옥이어도 규모 면에서 차이가 있다. 엄격한 신분제가 존재했던 조선시대로부터 비롯된 건축물의 모습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서촌에는 크고 작은 갤러리나 미술관이 많은 편이다. 또한 서촌을 무대로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 염상섭, 현진건, 이상, 윤동주가 있다. 하지만 4명의 작가를 동시에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면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청와대를 거닐다’ 문학작품전에는 서촌에서 활동했던 염상섭, 현진건, 이상, 윤동주의 대표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지금 청와대 춘추관에서 장애예술인 작품전 이후 두 번째로 문학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번 장애예술인 작품전을 관람했던 터라 두 번째 전시회를 기다려왔다. 그만큼 기대도 컸다. 이번 ‘청와대를 거닐다’ 문학작품전은 청와대 인근 서촌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인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의 대표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횡보 염상섭과 정월 나혜석, 달빛에 취한 걸음’, 2부 ‘빙허 현진건, 어둠 속에 맨발로’, 3부 ‘이상,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 4부 ‘윤동주, 젊은 순례자의 묵상’, 5부 ‘문학과 함께한 화가들’이다. 

사실주의 문학을 추구했던 염상섭은 서촌 체부동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청와대를 거닐다’라는 주제 아래 작가별 소주제가 있다. 작가의 이름 뒤에 짧고 강렬한 문구가 뒤따라오고 있다. 1부 ‘횡보 염상섭과 정월 나혜석’은 ‘달빛에 취한 걸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작가의 호를 따서 붙였다. 횡보는 술에 취해 좌우로 걷는 걸음을 뜻하는데 그가 평소 괴이한 행동을 많이 해서 횡보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 페미니즘의 원조 격인 신여성, 나혜석은 염상섭과의 친분으로 그의 작품 표지 및 삽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현진건은 ‘운수 좋은 날’을 통해 하층민의 실상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2부 ‘빙허 현진건’은 왜 ‘어둠 속에 맨발로’일까? 그가 쓴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이 연상된다. 인력거꾼 김 첨지의 고단한 하루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김 첨지가 아내가 먹고 싶어 했던 설렁탕을 사 들고 집으로 온다. 그는 누워서 미동조차 하지 않는 아내의 다리를 찬다.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운수 좋은 날’ 중에서)     

사실주의 문학을 추구했던 현진건의 집터가 부암동 무계원 근처에 남아 있다.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던 그는 빈곤한 삶을 살아야 했다. 부암동에서 닭을 키우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인왕산 자락에 있는 부암동 안평대군의 집터, 무계원을 가다 보면 현진건의 집터가 있다. 지금은 그가 살던 집은 사라졌고 대신 표지석이 남아 있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 정책이 3.1운동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1910년대 무단통치에서 1920년대 문화통치가 시행되었다. 이때 신문이나 잡지 등의 창간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염상섭, 현진건이 그 시기에 활동했다.  

윤동주와 이상의 초상화에 페인팅 원화와 미디어가 결합한 장승효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의 안쪽에 이상과 윤동주의 초상을 배경으로 한 장승효 작가의 작품이 있다. 페인팅 원화와 미디어가 결합해 작품의 배경이 변화하고 있다. 언뜻 보니 이상과 윤동주의 초상화가 살아서 관람객에게 미소를 짓는 것 같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상은 건축학도답게 삽화도 많이 남겼다.

3부 ‘이상’은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한다는 표현을 썼다.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는 답답한 현실에 울분을 토해냈을 것이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상은 본명이 김해경이다. 친구 구본웅이 그려준 초상화에서 보듯 그의 차림새는 지금으로 말하면 패션의 아이콘이다. ‘날개’, ‘오감도’ 등은 당시로선 형식을 탈피한 꽤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서촌에 있는 ‘이상의 집’에 이상이 쓴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면서 기행을 일삼았다고 알려진 그는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평범하지 않은 작품으로 인해 오해받을 만했다. 서촌에 ‘이상의 집’이 있어서 그곳에 가면 이상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서촌을 오가는 누구든 마음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   

윤동주는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남겼다.

4부 ‘윤동주’는 ‘젊은 순례자의 묵상’이라는 표현에 적합한 삶을 살았다. 일제강점기 지식인으로 고뇌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를 썼다. 고행을 자처하는 순례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윤동주는 생전에 시집을 출간하려고 교수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교수는 제자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출판하지 않았다. 

수성동계곡 아래 누상동에 윤동주 하숙집이 있었다.

해방을 6개월 앞둔 시점에 그는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다.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일 때 윤동주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다. 수성동계곡 아래 누상동에 윤동주 하숙집이 있다. 지금 과거의 집은 허물어졌지만, 그 집이 있던 자리에 윤동주 하숙집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누상동에서 수성동계곡으로 가니 조선시대 화가 정선이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5부 ‘문학과 함께한 화가들’이다. 이중섭, 천경자, 박노수 등의 화가들이 서촌을 무대로 활동했다. 당시 대다수 사람이 그러했듯 작가나 화가의 삶도 고달팠다. 작가는 글을 쓰고 화가는 삽화를 그리면서 상생의 길을 모색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작품 활동만으로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 다행히 전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면서 드라마부터 대중음악으로 또 문학이나 예술도 가세하고 있다. 

문학작품전을 관람하러 온 청년들이 시인의 시를 필사하고 있다.

윤동주의 시를 필사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봤어요. 하지만 그땐 수능과 연계해서 밑줄을 긋고 풀이하느라 지금처럼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겨를이 없었어요”라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들은 청와대 경내를 둘러본 뒤 춘추관에 들러서 문학작품전을 관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곳에 오길 잘했다면서 환하게 웃는다.  

신여성 나혜석 작가가 본 조선의 연말연시를 오디오로 들을 수도 있다.   

미술작품관과 달리 문학작품은 작품의 분량이 많아서 작품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아끌 장치가 필요하다. 이번 문학작품전은 소제목에서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작가의 대표작품 중에서 문장 일부를 발췌해서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의외로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어서 놀랐다. 

변지연 전시해설사는 “이번 전시회에서 서촌 일대에서 활동했던 작가의 대표작품과 작품이 제작된 배경을 알았다면 이제 집에 가서 작가의 작품 전체를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작가들의 활동 무대였던 서촌 일대 작가의 집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과거의 집은 허물어지고 지금은 전혀 다른 집이거나 집터만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작가의 삶의 흔적을 따라 서촌을 탐방해보는 것도 일종의 문학기행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서촌에 세종대왕이 탄생한 곳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서촌에 ‘세종대왕 나신 곳’이 있다. 생가가 있던 자리에 표지석이 있다. 어릴 적부터 독서를 즐겼던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 한글로 된 ‘용비어천가’ 등의 책을 펴냈다. 세종대왕의 기를 받아서일까? 후대 작가들의 활동지였던 서촌이야말로 예부터 문학과 예술의 산실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작품을 관람하기 전 해설전시를 듣는 것은 작가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기간에 관람객들이 작가들과 더욱 깊이 소통할 수 있도록 매일(평일 4회, 주말 6~7회) 전문 안내원(도슨트)의 작품 해설을 제공하고, 사진 찍는 곳(포토존)을 운영한다. 춘추관 2층 전시관에 입장하기 전 우측에 전시해설을 신청하면 된다. 

‘청와대를 거닐다’ 문학작품전을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시작가의 대표작을 낭송해 개막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 오은 시인과 황인찬 시인이 ‘작가 대담’으로 다시 관람객과 만나는 자리도 마련한다. 1월 7일(토)에는 오은 시인이 윤동주와 그의 작품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1월 8일(일)에는 황인찬 시인이 이상을 주제로 관람객과 소통할 예정이다. 1월 15일(일) 정여울 문학평론가도 나혜석을 주제로 ‘작가 대담’을 진행한다. ‘작가 대담’은 행사 당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열리며, 사전 신청을 통해 각 30명씩을 선정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한국문학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문학 특별전시에 관계자들이 전시품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번 문학작품전을 주관하는 국립한국문학관이 눈에 띈다. 한국 문학은 최근 전 세계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새로운 K-컬처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는 다양한 한국문화예술 분야의 근원으로서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한국문학관(http://www.nmkl.or.kr/)을 개관하기 위해 지금 서울 은평구에 한창 공사 중이다.

1월 16일까지 ‘청와대를 거닐다’ 문학작품전이 열린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국민의 품으로 되돌아온 청와대에서 문학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일제강점기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던 작가들의 작품은 세대를 초월해서 후세의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게 명작이 가진 힘이다. 

겨울방학이다. 자녀들과 함께 청와대에 이어 문학전시도 관람한 뒤 서촌 일대 작가들이 활동했던 동네를 다녀보는 것은 어떨까? 서촌이 달리 보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윤혜숙 geowin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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