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잘 읽히는, 그러나.장르물로는 너무 순진한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3. 1. 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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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제발, 그만해.. 제발!” 애원의 목소리에 도착적 쾌감을 느끼는 저것들은 무엇일까?

그저 약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거리낌 없이 혐오감을 드러내는 저것들은 무엇일까?

도망쳐야 된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부릅 뜬 공포에 굳은 몸을 희롱하는 저것들의 심장은 무엇으로 되었을까?

꺼내보고 싶다.

지난 해 12월 30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1은 ‘도깨비’ 작가 김은숙과 배우 송혜교의 조합으로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2016년 ‘태양의 후예’ 이후 6년만이다.

드라마는 단순하다. 학교폭력에 망가진 한 영혼의 복수극. OCN드라마 ‘돼지의 왕’에서도 같은 주제가 다루어졌었다.

문동은(정지소·송혜교)은 이발소 면도사를 엄마로 두었다. 아버지는 누군지 모른다. 엄마에겐 동거남이 있어 여인숙 달방에서 따로 산다.

그런 동은이 박연진(신예은·임지연) 무리의 눈에 띈 건 그들의 노리개였던 윤소희(이소이 분)란 아이가 전학갔기 때문이었다. 윤소희에 이어 무리의 새 장난감이 돼버린 동은은 놈들에게 싫다고도 해봤고 학교에, 경찰에 도와달라고 외쳐도 보았다.

하지만 싫다할수록 놈들의 가해는 극악해졌고 학교도, 경찰도, 보호자의 탈을 쓴 엄마 정미희(박지아 분)조차, 즉 그녀를 둘러싼 세상 모두가 그녀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박연진이 친절하게 이유를 알려줬다. “사회적 약자!” 가난은, 그리고 힘 없음은 낙인이고 하나의 혐의가 되는 세상임을 동은은 사무치게 깨달았다.

그저 태어난 게 죄라면 신조차 그녀를 외면한 게 맞다. 그런 세상, 살아서 뭐하나 싶어 죽을 결심도 해봤다. 하지만 그건 너무 억울하다. 죄 많은 저들이 잘 사는데 죄 없는 내가 죽어야 된다는 건 아무래도 부조리하다.

그래서 마음 먹었다. “너희들은 재미삼아 돌을 던졌을 뿐이고, 그래 맞은 난 죽었다 칠게. 이제 너희도 당해봐. 어디선가 뜬금없이 날아든 돌에 맞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영혼이 부숴지는 게 어떤 것인지.”

일단 스토리는 재밌다. 박연진 외에도 전재준(박성훈 분), 이사라(김히어라 분), 최혜정(차주영 분), 손명오(김건우 분) 등 복수의 대상들은 보는 이들마저 치 떨리게 만드는 잔인함을 과시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당하는 순간을 충분히 고대하게 하고 복수가 완성됐을 때 충분히 통쾌해 할만큼.

여기저기 마련해둔 구원의 장치도 적절하다.

먼저 주여정(이도현 분)이 있다. 문동은의 복수극에 동참하기로 한 주여정 역시 이유없는 폭력에 시달리는 상태다.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 강영천(이무생 분)이 교도소로부터 보내오는 편지. 사과를 위장해 보내는 편지엔 아버지 죽음의 순간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강영천은 유족이 된 주여정에게 그 그 끔찍한 순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조롱한다. 강영천이 주여정의 어머니 박상임(김정영 분)에게 전한 이유는 “재밌어서!”였다.

강영천의 의도대로 불면증과 살의에 휩싸여 주여정은 지옥을 살고 있었다. 그 즈음에 동은을 만났고 동은과 걸음을 같이 하게 된다. 파트2에 가봐야겠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영혼을 구원하는 스탠스를 취할 듯 싶다.

강현남(염혜란 분)도 있다. 딸과 함께 남편의 가정폭력으로부터 해방될 날을 기다리는 여자다. 남편을 죽여주는 조건으로 동은을 거들기로 했다.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복수하는 여자는 낭만도 없어요?” 운운하며 복수 하나에 일로매진중인 동은을 예고없이 무장해제 시키는 조력자다.

‘로맨스의 대가’ 김은숙 작가의 약점도 보인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착하다. 그리고 장르물에 서툴다. 복수극의 주인공은 집요해야 되고 복수는 적나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동은의 첫 타깃은 담임 김종문(박윤희 분)이다. 연진 무리의 학폭에서 동은이 제일 먼저 SOS를 쳤던 인물이다. 또한 동은의 기대감을 제일 먼저 박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김종문에 대한 동은의 복수는? 꽃다발 선물이다. 김종문에게 꽃 알러지와 천식이 있었다는 설정 때문이다.

동은은 그녀 고교시절 교사임용된 김종문의 아들 김수한(강길우 분)의 후배가 되기 위해 같은 교대를 들어갔다. 오랜 설계란 얘기다. 그렇게 좋은 선후배를 가장해 지켜본 바, 수한의 이기심도 알아챘겠고, 그래서 자신의 앞날에 방해가 된다면 아버지조차 저버릴 수 있는 캐릭터임도 눈치챘을 만하다.

그래서 김수한의 앞날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 협박했다. 김종문의 과거를 밝히겠다고. 그랬더니 수한은 축하 꽃다발 속에서 괴로워하는 아버지 김종문의 네블라이저조차 팽개쳐버리며 그 죽음을 방관한다. 문동은은 꽃을 선물하고 말 몇마디 얹었을 뿐인데 쉽게도 죽어줬다.

손명오도 그렇다. 전재준의 따까리 손명오를 동은은 손쉽게 유인했다. 손명오는 전재준 박여진 이사라등 잘나가는 동창들의 수발이나 들며 차곡차곡 적의를 쌓아왔다. 언제건 그것들의 뒷통수를 시원하게 갈길 수 있길 소망한다. 그런데 동은이 그러면서 목돈까지 챙길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작전대로 배신까진 시원하게 때렸다. 그리고 실종됐다. 배신 때린 누군가의 손에 당했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너도 가진 게 있잖아... 목숨!”이라며 별렀던 문동은의 복수는 어찌 되나? 김종문이나 손명오나 이런 식으로 저절로 복수가 이루어진다면 복수의 통쾌함은 어디서 찾나 싶다.

또 문동은은 박연진에게 악몽을 선사하기 위해 하예솔(오지율 분)의 담임이 됐다. 문동은은 과연 그 예쁘고 해맑은 아이를 복수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까?

이사장집 쓰레기봉투를 뒤져가며 약점을 찾아 협박해 담임된 노고가 있으니 당연히 중요한 복수의 도구로 활용돼야겠지만 그렇다면 또 그것대로 주인공으로서 문동은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드라마, 어느 영화에도 무고한 아이를 희생시키는 주인공은 없다.

그저 하예솔 주변을 합법적으로 얼쩡거리기 위해서라면 강현남 눈에 띌만큼 오래도록 이사장집 쓰레기를 뒤지는 짓은 그 바쁜 문동은에게 개연성 없게도 하릴없는 짓같아 보인다.

강현남이 문동은과 엮이는 대목도 수상쩍다. 오래도록 쓰레기를 뒤져 무엇인가 찾는 문동은을 보며 ‘뭘 해도 할 여자다’ 생각할 수는 있다. 그래서 대뜸 “내 남편 죽여줘요”한다고?

문동은은 또 강현남의 무엇을 보고 파트너로 삼은 걸까? 강현남이 보여준 건 딸을 대신해 남편을 향해 칼을 겨누는 모습뿐이다. 거기서 알 수 있는 건 남편살해를 의뢰할만큼 절박하다는 사실 뿐이다. 그 정도만으로 18살에 죽었다 치고 남은 시간 온통 매달리기로 한 그 중요한 복수극의 파트너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 나이브하다. 운전도 못하고, 카메라도 못 다루고 아는 거라곤 가사밖에 없는 중년 여자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대한 걸까?

일시 공개된 ‘더 글로리’ 파트1 8편은 쉼없이 읽히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장르물’이란 타이틀을 쓰기엔 너무 순진하고, 착하고, 그래서 지적당할 여지가 다분하다.

3월 풀린다는 파트2에선 ‘로맨스 대가’가 쓴 ‘제대로 된 장르물’을 기대해본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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