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천천히 北 고갈 전략’ 실효성 커졌다

2023. 1. 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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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출근, 지난해를 반추하고 앞으로 1년을 어떻게 도모해 나갈지 성찰할 때다.

지난해 개인과 사회, 나라 전체에 있었던 선악과 희비를 가른 일들을 통틀어 볼 때 진부하지만 다사다난보다 더 나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근본적 해법을 찾고 사회와 국가가 올바로 나아가려면 '갑자기' 닥친 참사가 있기까지 '천천히' 지나온 과정에 더욱 깊이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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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前 駐유엔 대사

새해 첫 출근, 지난해를 반추하고 앞으로 1년을 어떻게 도모해 나갈지 성찰할 때다. 지난해 개인과 사회, 나라 전체에 있었던 선악과 희비를 가른 일들을 통틀어 볼 때 진부하지만 다사다난보다 더 나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바란다면 좋은 일, 기쁜 일보다는 나쁜 일, 슬픈 일을 통해 교훈을 얻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니스트 M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나오는 대화다. 빌이 어쩌다 망하게 됐느냐고 묻는다. 마이크가 답한다. “두 가지 형태였지. 천천히, 그러다가 갑자기.” 무심한 듯한 이 짧은 대화에서 인간사의 부침, 나라의 흥망성쇠에 두루 해당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지난해 우리에게 생겼던 슬프고 나쁜 일은 주로 안전과 안보에 관한 것이었다. 충격적인 이태원 참사를 놓고 우리가 어떻게 했길래 여기까지 왔나 하고 자문하게 된다. 부조리와 모순의 누적, 사회집단 간의 이해 상충, 자정과 교정 능력의 상실, 늘 보면서도 무심하게 지나친 위험의 순간이 많았지만 정작 비극의 순간까지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다 참사가 나자 언론·정치권·정부·국민이 모두 들고일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만 집중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근본적 해법을 찾고 사회와 국가가 올바로 나아가려면 ‘갑자기’ 닥친 참사가 있기까지 ‘천천히’ 지나온 과정에 더욱 깊이 주목해야 한다. ‘갑자기’에만 집중하면 책임자 처벌과 유가족들을 단순 위로하는 수준에서 임기응변의 표피적 수습에 그치고 만다. 나라가 우수해지려면 각 부문에서의 꼼꼼한 전문성과 실무자의 양심이 번득이고 겸허한 반성을 통한 교훈 추구의 지혜를 존중하는 ‘천천히’의 가치가 바닷속 거대한 빙산처럼 묵직이 자리 잡아야 한다.

헤밍웨이의 ‘천천히’와 ‘갑자기’의 논리는 안보 면에서 독일 통일 과정을 풀이할 때도 사용된다. 1989년 동독 시민들이 거대한 평화적인 힘으로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1년 후 서독에 흡수 통일됐다. 그러나 동독 시민들의 ‘갑자기’ 혁명이 가능했던 근저에는 오랜 기간 동독의 변화를 강제하기 위한 서독 정부의 ‘천천히’ 노력이 있었다.

지난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도발은 유례없이 빈번했고, 핵무력정책법 제정을 통해 스스로 공격적 핵보유국 행세에 나섰으며, 지난주에는 무인기 도발까지 재개했다. 새해 들어 언제든지 핵실험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만큼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올 것은 언젠간 온다는 ‘천천히’의 신념 속에 북한을 압박해 나가야 한다. 김여정의 입을 통해 나오는 패륜적 쌍욕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단말마적 심리상태에 있는 북한 정권의 불안감 표현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지원 입장 변화를 견인하는 일이 우리 외교의 과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자생력을 상실한 북한 경제는 중국의 코로나 재창궐로 인해 회복 불능 상태가 된 지 오래이며, 무리한 핵·미사일 개발로 인해 주민 생활은 나날이 더 피폐해지고 있다. 스스로 파멸의 길로 나가기로 한 북한과의 대화 기대는 미련 없이 접고, 이젠 정권의 균열과 고갈을 타깃으로 ‘천천히’의 전략을 강화해 나가야 할 때다. 그것이 언젠가 ‘갑자기’ 오게 될 벅찬 진실의 순간에 대한 올바른 대비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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