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봉의 10배… 그래도 펠레와 같은 팀 뛰어 영광"

김태훈 2023. 1. 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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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 美서 뛰던 시절 팀 동료 바비 스미스
AFP와의 인터뷰에서 고인과의 추억 회상
"스타지만 소탈해… 美에 축구 유산 남겨"
미국의 전직 축구선수 바비 스미스(71)는 1976년 프로축구 구단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했다. 연봉은 당시 금액으로 10만달러였다. 당시 뉴욕 코스모스에는 브라질 출신의 ‘축구 황제’ 펠레가 뛰고 있었다. 한 해 전인 1975년 브라질 리그에서 은퇴한 펠레는 ‘축구 불모지 미국에 축구 붐을 일으키겠다’는 야심을 품고 미국 리그에 진출했다.
미국 전직 축구선수 바비 스미스가 1970년대 후반 뉴욕 코스모스에서 펠레와 함께 뛰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로빈스빌(미국)=AFP연합뉴스
“당시 펠레는 저보다 연봉이 10배 이상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놀라울 정도로 겸손한 분이었죠. (축구 황제로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모든 팀원들한테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스미스가 1일(현지시간)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때 팀 동료였던 펠레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지난해 12월 대장암 투병 끝에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펠레는 스미스보다 나이가 10살 이상 많았고 또 훨씬 더 유명한 슈퍼스타였지만 둘은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펠레는 1977년 뉴욕 코스모스를 북미축구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끈 뒤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AFP에 따르면 스미스는 현재 고향 뉴저지주(州) 로빈스빌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밥 스미스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본인도 뛰어난 수비수로 1970년대 미국에서 제법 이름을 날렸으나, 정작 그는 “나는 평생 펠레의 열렬한 팬이었을 뿐”이라며 자신을 한껏 낮추고 펠레에게 경의를 표했다. 같은 팀에서 동료로 뛰던 시절을 회상하며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펠레가 브라질 리그 선수로 뛰었던 산투스FC 전용 경기장 주변에 고인을 추모하는 게시물이 가득한 모습. 산투스(브라질)=AP연합뉴스
“솔직히 제가 축구 황제 펠레와 한 팀이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저를 비롯한 미국의 젊은 선수들이 펠레 주변에 있을 때 우리는 그저 스타를 졸졸 따라다니는 어린아이들 같았죠.”

미국은 아메리칸풋볼(미식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이 인기 종목이고 축구는 상대적으로 낯선 운동이다. 유럽을 포함해 절대다수 국가가 ‘풋볼’(football)로 알고 있는 축구가 미국에선 ‘사커’(soccer)로 불리는 것이 축구 불모지로서 미국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1930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이 시작되고 전 세계적으로 축구 열기가 뜨거워지자 미국도 1960년대 말 축구 프로리그를 출범시킨다. 1970년대 들어선 미국인들 사이에 축구 붐을 일으키고자 세계적 스타들을 자국 리그에 영입하는 마케팅 전략을 채택한다. 펠레를 비롯해 프란츠 베켄바워(독일),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바비 무어(영국), 조지 베스트(영국) 등 전성기가 지난 노장 선수들이 이 시기 미국 리그에서 뛰었다.

“사실 미국에 축구란 종목이 알려진 것은 전적으로 펠레 덕분입니다. 펠레가 미국에 오니까 축구에 관심이 없던 미국인들도 비로소 축구를 보기 시작했죠. 베켄바워, 크루이프, 무어, 베스트 등 다른 스타들도 펠레를 보고 미국에 온 겁니다. 만약 펠레가 미국 리그에서 뛰지 않았다면 가뜩이나 유럽, 남미 등에 뒤처진 미국 축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낙후한 처지에 놓였을 겁니다.”
펠레가 미국 축구팀 뉴욕 코스모스 선수로 뛰던 시절(1975∼1977) 동료였던 바비 스미스가 펠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로빈스빌(미국)=AFP연합뉴스
펠레는 37세이던 1977년 10월 뉴욕의 자이언츠 스타디움에서 고별 경기를 가졌다. 뉴욕 코스모스의 상대는 원래 펠레가 속했던 브라질 구단 산투스FC였다. 스미스는 그 마지막 시합을 촬영한 사진 앞에 서서 잠시 울음을 터뜨렸다. “훌륭한 팀 동료였죠. 펠레는 늘 자신보다 팀, 그리고 우리 동료들을 먼저 걱정했어요. 그냥 단순한 슈퍼스타가 아니었습니다.”

스미스는 펠레가 미국 땅에 심은 축구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 화려한 꽃을 피우길 희망한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당시 미국은 잉글랜드와 비길 정도의 경기력을 과시하며 16강에 올랐다. 비록 우승 후보 네덜란드한테 1-3으로 지며 8강 진출에 실패했으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마침 미국은 오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캐나다·멕시코와 공동으로 주최한다. 스미스는 “미국은 펠레의 유산을 토대로 이제 자국 선수들의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며 “미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것을 계기로 축구가 미국 스포츠로 뿌리를 깊이 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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