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먹어도 살찌는 이유...새로운 유전자·미생물 속속 규명
신년에는 건강과 관련된 목표를 세우는 이들이 많다. 금연이나 꾸준한 운동, 다이어트 등이 단골메뉴다. 모두 실천이 쉽지 않은 목표지만 이 중에서도 체중을 줄이는 다이어트는 특히 어렵다. 먹는 방송을 의미하는 '먹방' 인터넷방송 진행자(BJ)들이 불과 몇시간 동안 수kg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마른 체형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 좌절감마저 느끼게 된다.
다이어트가 매년 새해 의지만으로는 어려운 이유가 규명되고 있다. 종류와 양이 같은 음식을 먹어도 체중이 늘어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 차이가 유전자와 체내 미생물 구성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헨릭 로저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 연구팀은 사람에 따라 장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구성에 따라 음식 섭취로 얻는 에너지 양이 다르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에 지난달 12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대변 1g당 1000억개 정도가 있는 장내 미생물은 소화 효소가 분해할 수 없는 음식물의 구성 성분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개인의 유전, 환경, 생활습관, 식단에 따른 구성 유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혐기성 세균인 박테로이데스가 많은 'B-유형', 음식물의 발효와 연관된 루미노코커스 세균이 많은 'R-유형', 당과 담즙 생성 관련 세균인 프레보텔라가 많은 'P-유형'이다.
연구팀은 실험에 참가한 과체중 남녀 85명의 대변을 검사해 이들을 각 장내 미생물 구성 유형으로 분류했다. 분석 결과 B-유형으로 분류된 참가자들은 음식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추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변의 에너지 함량을 조사하는 '섀넌지수'를 확인한 결과 B-유형에서만 유의미하게 높은 수치가 확인된 것이다. 지방과 같은 에너지원의 체내 축적량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유형의 참가자 몸무게가 다른 유형의 참가자보다 평균 10% 높았다. 쥐를 활용한 동물 실험에서도 B-유형을 구성하는 박테로이데스를 투여한 쥐는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체중이 더 많이 증가했다. 또 B-유형으로 분류된 참가자들은 음식물이 소화기관을 통과하는 시간도 빨랐다. 당초 음식물이 소화기를 이동하는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흡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유전자가 비만 체질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마쓰무라 시게노부 일본 오사카대 교수 연구팀은 ‘CREB-조절 전사 촉진제1’(CRTC1)이라는 이름의 유전자가 지방과 기름에 대한 식욕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미국실험생물학회지’에 지난달 9일 발표했다.
CRTC1은 포만감에 관여하는 단백질인 멜라노코르틴-4 수용체(MC4R)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쥐 실험을 통해 이 유전자가 실제 식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유전자를 제거한 실험용 쥐와 제거하지 않은 쥐에게 같은 식단을 제공하자 유전자가 결핍된 쥐는 과식을 하고 비만과 당뇨병까지 생겼다. 연구팀은 “CRTC1 유전자는 뇌의 뉴런을 자극해 고열량, 지방질, 설탕이 많은 음식을 과식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관련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비만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양 허 미국 베일러의대 박사후연구원 연구팀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메디신'에 이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비만 2548명과 정상 체중 1117명 참가자를 대상으로 단백질과 관련된 염기서열 분석을 실시했다.
분석 결과 중증 비만인 실험 참가자 19명의 세로토닌 수용체에서 13개의 희귀 돌연변이 유전자가 확인됐다. 이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과식증과 함께 공격적인 행동 등 사회에 부적응하는 행동 양상을 보였다. 동물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확인됐다. 세로토닌 수용체 돌연변이를 주입한 쥐는 식욕 억제 역할을 하는 뉴런이 손상됐다. 식욕을 억제하지 못한 쥐는 쉽게 비만 상태가 됐다. 연구팀은 “CRCT1 유전자는 비만의 원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며 “이 유전자의 결손 여부를 비만을 진단하는 유전자 검사 기준에 포함시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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