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DB 최승욱에게 없어야 하는 단어, ‘후회’

손동환 2023. 1. 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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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인터뷰는 11월 21일 오후에 진행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적을 돌아본다. 행적을 돌아볼 때 갖는 감정 중 하나는 ‘후회’다. 크게 나누면, ‘이 때 이렇게 해야 했는데...’ 혹은 ‘이 땐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이다.
프로 스포츠 선수는 더 그렇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안 되는 직업이다. 지금의 결과로 자신의 미래 가치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주 DB로 이적한 최승욱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회는 없어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막혀버린 두 가지 : 가능성+성장
최승욱은 동아중과 동아고 시절 운동 능력과 센스를 지닌 유망주였다. 그러나 연세대에 입학한 후, 최승욱의 성장 속도는 정체됐다. 2014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9순위로 창원 LG에 입단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 보여줬던 가능성을 좀처럼 터뜨리지 못했다.
물론, 도약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여러 요소가 최승욱의 성장을 막았다. 특히, 2017~2018시즌에 입은 코뼈 부상이 그랬다. 어느 때보다 준비를 철저히 한 시기였고, 발전할 수 있는 여건 또한 마련했기 때문이다.

2014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9순위로 LG에 입단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경기를 뛰지 못해도, 학교를 다닐 수 있어요. 운동도 할 수 있고요. 하지만 프로에서도 그렇게 된다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살아남지 못하면, 은퇴를 해야 하고요. 살아남는 것만 생각했죠.
2014~2015시즌 26경기 평균 10분 4초를 소화했습니다.
신인이라서 설레는 마음이 컸어요. 선수 구성도 워낙 좋고, 홈 팬들의 응원도 뜨거웠어요. 농구를 재미있게 했던 것 같아요.
프로에서 첫 비시즌 훈련을 받은 후, 2015~2016시즌을 치렀습니다. 첫 시즌과는 어떤 게 달랐나요?
(최승욱은 해당 시즌 35경기 평균 15분 58초를 뛰었다)

구단에서 제 가능성을 높이 봐주셨고, 저 또한 훈련을 많이 했어요. 제 역할도 알고 있었고요. 지금처럼 리바운드를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수비나 궂은일을 많이 하려고 했어요. 특히, 수비에 더 집중했어요. 그러면서 제 자리가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아요.
2017~2018시즌에는 코뼈 부상으로 도약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부상만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운동하는데 지장도 없었고요. 저한테 주어진 역할을 하지 못한 게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선택
최승욱은 2017~2018 시즌 종료 후 첫 FA(자유계약)를 맞았다.(데뷔 시즌은 FA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KBL 입성 후 LG와 3년 계약을 체결한 최승욱이었기에, 다른 1라운더들보다 훨씬 빨리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최승욱은 계약 기간 4년에 2018~2019시즌 보수 총액 1억 7천만 원(전액 연봉)의 조건으로 고양 오리온(현 고양 캐롯)에 입단했다. 포워드를 선호하는 추일승 감독(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승욱은 오리온에서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궂은일을 열심히 했음에도, 코트를 오래 밟지 못했다. 상실감이 클 수도 있었다.

2017~2018시즌 종료 후 FA가 됐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저 스스로도 고민을 많이 했죠. ‘LG에 남아야 하나?’, ‘다른 팀에 가야 하나’, ‘계약을 못 하면 어떻게 하지?’ 등의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고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요.
행선지는 오리온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사실상 입찰 방식이었죠. 오리온이 제시한 조건이 다른 구단보다 10% 이상 높았기 때문에, 저의 행선지가 오리온으로 결정됐습니다.
(2018 KBL FA 선수들은 5월 1일부터 15일까지 원 소속 구단과 먼저 협상해야 했다. 협상이 결렬되고 나서야, 다른 구단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 때 원 소속 구단을 제외한 9개 구단이 21일까지 영입의향서를 제출한다.
원 소속 구단이 아닌 타 구단이 영입의향서를 제출할 경우, 원 소속 구단에서 제시한 첫 해 연봉보다 많은 금액을 써야 한다. 계약 기간은 원 소속 구단의 제시 조건과 같거나, 그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1개의 구단으로부터 제시를 받은 선수는 해당 구단으로 반드시 이적해야 한다. 복수의 구단일 경우, 이적 첫 해 연봉 최고액을 기준으로 10% 이내의 연봉을 제시한 구단 중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복수 구단의 제시 금액 중 최고액이 1억이라면, 선수는 1억의 10%인 1,000만원을 적용해 9,000만원~1억 1천만 원 사이의 금액을 제시한 구단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위에 언급된 조건만 놓고 봐도, 정말 복잡했다. 하지만 선수들한테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다. 최승욱 역시 자기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웠다
)
2018~2019시즌에는 43경기 평균 19분 29초를 뛰었습니다. 이번 시즌을 제외하면, 경기당 가장 많은 출전 시간이었는데요.
추일승 감독님한테 정말 많이 배웠어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스킬도 가르쳐주시고, 선수로서의 마음가짐도 알려주셨어요. 제 역할도 다시 한 번 주입해주셨죠. 또, 주전으로 플레이오프를 처음 뛰어서, 설레는 마음도 컸어요. 신인 때처럼 정말 재미있게 농구했죠.
그렇지만 2019~2020시즌 이후에는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습니다.
커리어 하이를 했음에도, 연봉이 삭감됐어요. 멘탈이 박살났죠.(웃음) ‘열심히 해서 뭐하나?’라는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멘탈이 잘못됐으니, 몸도 좋을 리 없었어요. 그게 부상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돌아보면 잘못된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강을준 감독님께서 새로 부임하셨습니다. 저에게 4번 포지션을 주문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4번에서 뛰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강을준 감독님의 스타일에 맞추지 못했죠. 그런 것 때문에, 출전 시간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선택
최승욱은 2021~2022시즌 종료 후 또 한 번 FA를 맞았다. 그러나 첫 FA와는 달랐다. 보여준 게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최승욱은 2021~2022시즌 35경기 평균 6분 37초만 소화했다) 자칫, 어느 누구의 선택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승욱은 시장으로 나갔다. 최승욱의 가치를 알아본 팀이 있었다. DB였다. DB는 계약 기간 2년에 2022~2023시즌 보수 총액 1억 1천만 원의 조건으로 최승욱을 붙잡았다.
최승욱의 선수 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았다. 최승욱의 입지 또한 두텁지 않았다. 그래서 최승욱은 비시즌 훈련을 더 독하게 했다.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2021~2022시즌 종료 후 두 번째 FA를 맞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첫 번째 FA 때는 다른 구단과 접촉도 할 수 없었고, 선수의 선택권 또한 없었어요. 하지만 두 번째 FA가 됐을 때, KBL FA 제도가 선수에게 더 유리해졌어요. 타 구단과도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 제가 FA를 한 번 경험했다는 게 중요했어요. 눈앞의 돈도 중요하지만, 나한테 맞는 팀으로 가는 게 중요했어요. 제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팀을 더 생각했죠. 그래서 고민을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행선지는 DB였습니다.
저평가된 선수들이나 빛을 보지 못했던 선수들이 DB에서 좋은 활약을 했습니다. 선수들끼리도 “나도 DB에 가면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을까?”라는 농담을 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또, DB에 3번이 많지 않았어요.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했습니다. 오리온에 남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DB가 저한테 더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 FA 후 비시즌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마음가짐이 더 남달랐을 것 같아요.
그 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팀 성적과 개인 기록 모두 올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연습 경기 때도 많은 시간을 소화했습니다.
이것저것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맡은 역할(수비+궂은일)에만 집중했죠. 제 역할을 충실히 하다 보면, 다른 건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역할에 집중해서 그런지, 마음이 편했어요. 부담감도 덜했고, 책임감도 커졌죠. 그렇게 하다 보니, 훈련도 연습 경기도 잘 풀렸던 것 같아요. 자신감도 생겼고, 다가오는 시즌도 기대됐어요.

“후회는 없었으면...”
비시즌부터 달랐던 최승욱이다. 이상범 DB 감독은 그런 최승욱에게 기회를 줬다. 기회를 얻은 최승욱은 끈질긴 수비와 악착같은 루즈 볼 싸움으로 DB의 기대에 부응했다. DB의 약점으로 꼽혔던 ‘포워드진’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최승욱은 DB의 에너자이저로 거듭났다. 원주 팬들도 최승욱의 에너지 레벨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최승욱의 농구는 현재진행형이다. 최승욱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인터뷰를 하는 순간에도 코트를 갈망하고 있었다.

10월 22일, 원주 홈 개막전을 치렀습니다. 개인 최다인 20점을 기록했고요.
개막전을 캐롯(캐롯의 전신은 오리온이다. 최승욱의 친정 팀이라고 보면 된다)이랑 했어요. 긴장이 되더라고요. 몸도 무거웠고요.
물론, 원주 홈 개막전 때도 긴장했어요. 그렇지만 텐션이 오른 느낌이었고, 컨디션도 좋았어요. 제 역할부터 하고, 경기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경기도 잘 풀렸고요. 그러던 찰나에, 장내 아나운서 분께서 “개인 최다 득점 달성”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때서야, 제 기록을 알게 됐어요.
3점슛 성공률 47.1%를 기록하고 있습니다.(인터뷰 일자 기준)
LG 시절부터 슛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연습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실력이 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오리온에서 함께 뛰었던 (오)용준이형께서 “너는 잠재력도 있고, 잘할 수 있다. 슈팅도 잘할 수 있다. 부담감을 없애면 될 것 같다”고 격려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올바른 슈팅 리듬을 알려주셨어요. 그런 것 때문에 자신감을 얻었고, 공격 타이밍도 편하게 잡는 것 같아요. 올바른 방법으로 많이 연습해야, 효과를 얻는다는 걸 깨달았죠.
경기당 26분 24초를 뛰고 있습니다.(인터뷰 일자 기준) 바랐던 순간이 이뤄진 것 같은데요.
저 하기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많이 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시간은 경기당 15~20분 사이였거든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바랐던 순간이 이뤄진 거죠.
지금처럼 코트를 많이 밟으려면, 어떤 걸 더 해야 할까요?
지금도 완벽한 선수는 아니에요. 안 됐던 경기도 몇 개 있었죠. 안 좋은 경기를 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제 역할이 아닌, 다른 것부터 생각해서였어요. 다른 생각을 하니, 미끄러졌던 거죠. 그래서 경기 전에 ‘내 역할부터 잘하자. 나머지는 동료들이 잘해줄 거야’라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어요.
목표는 어떻게 되시나요?
시즌이 끝났을 때.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냈다’고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서 낸 결과는 이렇다’는 걸 받아들였으면 해요.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어야 해요. 다 쏟아내지 못하고 시즌을 끝낸다면, 후회가 클 것 같아요.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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