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스'로 1조 매출…유행 좇지 않는 'LF의 뚝심' 통했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LF의 간판 브랜드인 ‘헤지스’가 1조원 매출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2022년) 매출이 약 8000억원으로, 올해 목표 달성이 유력하다. 특히 매출의 절반을 중국 등 해외에서 거뒀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2000년(生) 토종 트러디셔널 브랜드인 헤지스의 선전은 구본걸 LF 회장의 ‘뚝심’이 빚어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닥스만 해도 LF(당시 반도패션)와 1983년에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이후 40년째 협업을 유지하고 있다. LF가 지난해 5대 스포츠 브랜드 중 하나인 리복의 국내 판권을 인수한 것도 ‘근본(origin)’을 중시하는 구 회장의 패션 철학을 반영했다.
해외에서 통하는 ‘K패션의 오리진’
2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LF는 헤지스의 해외 진출을 올해 일본, 유럽, 미국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TD 브랜드 시장은 폴로 랄프로렌과 타미힐피거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영역”이라며 “헤지스의 해외 성과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빈폴도 해내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LF 관계자는 “헤지스는 지난해 베트남에도 현지 유력 업체와 계약을 맺고 매장을 냈다”며 “2007년 진출한 중국에선 헤지스 매장이 500개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 중”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연간 수천억 원의 매출을 거두는 패션 브랜드로는 F&F의 MLB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MLB만 해도 중국에서 K패션으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다. 이랜드월드의 티니위니가 중국에서 대규모 매출을 낸 원조 브랜드지만, 중국에 통째로 매각됐다. K패션의 ‘오리진’을 강조하고 있는 헤지스의 해외 진출이 의미 있는 이유다.
유행 좇지 않는 ‘뚝심의 승부사’
패션업계에선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안목으로 투자하는 ‘LF 스타일’에 주목하고 있다. 작년 4월 글로벌 브랜드 매니지먼트 기업인 어센틱브랜드그룹으로부터 리복의 한국 판권을 인수한 게 대표 사례다.
1895년 탄생한 리복은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퓨마와 함께 고유의 헤리티지(유산)를 갖고 있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다. LF 관계자는 “신발 유행만 해도 약 5년 단위로 돌고 돈다”며 “오랜 전통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디자인 아카이브(지식 창고)를 갖고 있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것이란 판단에서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LF는 스포츠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은 바 있다. 2000년대 중반에 ‘라푸마’라는 고유 브랜드를 내놨지만, 시장에 안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30명으로 구성된 리복 사업부문의 구성원을 부문장 포함 28명의 ‘외인부대’로 채운 건 과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최근 젊은 세대의 복고 열풍에 힘입어 리복의 대표 슈즈인 클럽C85는 지난해 10월 출시 3달 만에 1만족 판매고를 돌파했다. LF 관계자는 “나이키 등의 제품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전 리복코리아가 분기별 3000족을 겨우 팔던 때와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부터 슈즈 외에 패션, 액세서리 제품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 대기업의 자존심
이 같은 LF의 패션 경영은 다른 대기업 계열 패션 기업과는 결이 다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만 해도 ‘아미’ 등 젊은 세대에 호소할 수 있는 해외 브랜드를 빠르게 발굴하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빈폴의 경우 헤지스보다 앞선 2005년에 중국에 진출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사실상 확장이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계열인 한섬 역시 삼성물산 출신인 박철규 사장을 영입해 지난해 8월 스웨덴 디자이너 브랜드인 ‘아워레가시’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까지 해외 패션 브랜드 10여 개를 확충할 계획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해외 브랜드에 특화된 인물을 공동 대표로 선임하기 위해 현재까지 심층 면접을 진행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LF 역시 해외 브랜드 수입을 비즈니스 모델의 한 축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기존 전통 브랜드를 강화하는 것을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2020년엔 버버리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뤽 구아다던을 닥스 국내 총괄 CD(최고디자인책임자)로 영입했다. 2014~2017년 버버리 디자인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헤지스 역시 ‘칼 라거펠트’ 수석 디자이너 등을 역임한 한국계 미국인 디자이너인 김훈을 2020년 CD로 선임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K콘텐트가 글로벌 문화 소비의 대세가 되고 있는 트렌드를 헤지스가 K패션이라는 키워드로 풀어가려는 시도”라며 “LF 같은 대기업 계열의 패션 회사가 장기 투자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LF 관계자는 “오리진이 분명한 브랜드에 대한 꾸준한 신뢰가 LF 패션 경영의 핵심”이라며 “헤지스의 경우 꽈배기 무늬 스웨터 등 정체성이 뚜렷하면서도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아이코닉’ 등의 대표 라인으로 만들어 최신 트렌드에도 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뚝심 경영’은 실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LF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1조4097억원으로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연간 기준으로도 2021년 1조7931억원을 뛰어넘어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등 사업 다각화에 성공한 데다 패션(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9월 말 기준 72.8%)에서 성과를 낸 덕분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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