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과 혹한, 그리고 봄 날씨가 뒤섞인 미국 연말연시 이야기
2022년의 마지막 주를 아이들의 짧은 겨울 방학과 함께 맞았다. 보통 미국의 여름 방학은 두 달이 훌쩍 넘도록 길지만 겨울 방학은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으로 짧기 때문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인근에서 간단한 전시 관람을 하는 정도로 보내곤 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큰 아이의 주장에 아주 오랜만에 좀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미국 연말 연시에는 공항에 인파가 너무 많은 데다가 날씨라도 안 좋아지면 쉽게 결항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비행기를 타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신 차로 로드 트립을 가기로 결정했다. 지나치게 오래 운전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 큰 아이가 좋아하는 도시 야경을 보기 좋고 훌륭한 박물관을 가진 곳을 고민하다 보니 마침 한 곳이 떠올랐다. 바로 캐나다 토론토(Toronto). 미국에서 육로로 캐나다 국경을 통과할 때는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는 따로 준비할 입국 서류나 여권이 필요가 없다. 성인은 미국에서 쓰는 운전면허증 같은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보여주면 되고 만 16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사진 포함 여부와 상관없이 출생 증명서나 기타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정부 발행 서류를 준비하면 된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고 일주일 전 쯤에 당장 여행을 가서 묵을 숙소 예약만 하고는 아이들과 오랜만에 여행을 갈 생각에 나도 잠시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직전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내가 사는 곳은 미국 북동부의 펜실베니아 주. 특히 내가 사는 작은 도시는 겨울 동안 눈이 참 많이도 온다. 때문에 어느 정도 내리는 눈은 그리 많게 느껴지지도 않을 지경인데 이상하게 올해는 눈이 몇 번 내렸음에도 조금 쌓이다 말아서 1, 2월에 더 본격적인 눈이 몰아서 내리려나 보다고 남편과 지나가듯이 대화를 했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에 도시에 폭설 주의보가 내렸다. 눈은 10인치 가까이 내렸지만 평소에도 자주 겪었던 일이고 일기예보를 보니 여행가기 전날부터는 눈이 멈추길래 안심하고 있었다. 일단 눈이 멈추면 미국에서는 다양한 눈 치우는 기계와 차량들로 금세 도로의 눈이 제거되기 때문에 운전하기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뉴욕주의 버팔로(Buffalo)였다. 버팔로는 우리가 캐나다 국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도시였다. 그런데 버팔로에 1000mm가 넘는 폭설이 쏟아지고 눈폭풍 주의보가 며칠 째 발효 중인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설상가상 정전이 되는 곳도 있었고 현지 뉴스 보도에 따르면 26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무거운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여행 출발 당일에 여행금지 권고는 해지 되었고 눈이 멈춘 상황이었기에 아이들과 한 약속도 있어서 5년 만에 처음으로 겨울 로드 트립에 나섰다. 하지만 운전을 해 가다보니 버팔로로 향하는 고속도로 I-90은 폐쇄되어 있었다. 얼마나 눈 피해가 심각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결국 도시 안의 도로와 국도를 통해 버팔로를 지나가야만 했다. 집들은 거의 모두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 날씨를 가진 도시에서 이렇게까지 눈을 치우지 못했다는 것은 그동안 얼마나 쉴 새없이 많은 눈이 그치지 않고 내렸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보통의 미국 가정들은 눈 치우는 삽이나 스노우 블로우어라고해서 눈을 치우는 기계를 가지고 있기에 눈이 그치면 모두 나와서 그동안 쌓인 눈을 순식간에 치워 놓고는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이 단시간에 엄청나게 내렸기 때문에 길 가장자리로 고립된 차들이 눈에 띄었다.
차들은 눈 속에 뒤덮여 있었고 이를 어쩌지 못하고 중앙 도로만 겨우 눈을 치울 수 있었던 탓에 길은 평소의 삼분의 일 수준으로 좁아져 있었다. 대체로 걸어서 이동하는 일이 거의 없는 이 곳 사람들이 눈 속을 뚫고 걸어서 생필품을 간단히 사서 돌아오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나마 도시 중심 지역이고 눈이 멎었고 눈 폭풍 주의보가 풀렸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도시 중심 지역이었는데도 상황이 이 정도였으니 도시 외곽이나 차량 진입이 완전히 불가능한 외진 지역에서는 피해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예정된 일정이 있어서 금방 도시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무언가 우리들만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차 안에서 지구 온난화가 어떻게 우리에게 혹한과 폭설을 가져오는 것인지 쉬운 말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니 늘 영하를 맴도는 우리 도시의 날씨는 영상 16도가 넘었다. 버팔로의 눈은 아직도 녹지 않았다고 들었다. 폭설과 혹한, 이상 고온이 뒤섞인 연말연시를 지내고 있자니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겪게 될 지구 온난화는 얼마나 심해질지 걱정이 앞섰다. 한국에도 올 겨울 강력한 추위가 몰려온다고 하는데 새해에는 아이들과 환경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봐야겠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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