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 센 대통령의 말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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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은어 중에 '야마'라고 있다.
왜 이런 용어가 생겼을까? 왜 '산'이 등장하지? 언론 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언론계에서 '신문 연재소설은 시시하지 않게 한 회분마다 야마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간혹 '기사의 야마'를 물으면서도, 언젠가부터 '야마'가 너무 분명한 기사는 의심하게 된다.
대통령의 건보 개혁 추진에서 '문재인 케어 탓'이라는 '야마'는 강한데, 건보 재정에 대한 '팩트'는 부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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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은어 중에 ‘야마’라고 있다. 산(山)을 뜻하는 일본어다.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된 업계 은어다. 달리 말하면 ‘기사의 핵심 주제’쯤 되겠다. 안 쓰려고 하다가도 무심코 “그래서 기사의 야마가 뭔데?”라고 되묻곤 한다. 왜 이런 용어가 생겼을까? 왜 ‘산’이 등장하지? 언론 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언론계에서 ‘신문 연재소설은 시시하지 않게 한 회분마다 야마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흡입력 있는 ‘산의 꼭대기’ 같은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간혹 ‘기사의 야마’를 물으면서도, 언젠가부터 ‘야마’가 너무 분명한 기사는 의심하게 된다. 세상일이 얼마나 복잡한데, 이렇게 일도양단(一刀兩斷)하듯이 선명하게 결론을 낼 수 있지? 기사의 핵심 주제가 부각되는 걸 저해하는 ‘사실(팩트)’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본다. 그건 그동안의 취재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이해관계자가 많을수록 사안은 복잡해진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시각이 다르고, 동의할 수 없어도 ‘일리 있는’ 근거를 내놓는다. 취재기자로 일할 때 건강보험과 의료제도에 대한 기사를 더러 썼는데, 항의 메일을 꽤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오랜 독자인데, 서운하다’는 메일도 있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견해를 가진 취재원을 만날 수밖에 없다. 부족하지만 그게 답이라고 여긴다.
2022년 12월13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건강보험 개혁 의제를 던졌다. ‘건보 개혁은 시대적 과제’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대통령의 일도양단식 발언이 마음에 걸렸다.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겨냥한 말이다. 건강보험 이용자인 국민, 공급자인 의료계를 설득하고 노령인구가 된 윗세대와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부담해야 할 아랫세대를 조율해야 하는데, 건강보험을 개혁하겠다며 시작부터 ‘전 정부 탓’을 한다. 보건복지부는 건보 개편안에서 MRI·초음파 검사와 외국인 무임승차 방지를 언급했는데, 검사 과잉으로 인한 재정 누수는, 한 해 100조원에 육박하는 건보 지출과 비교해 0.2% 수준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은 2020년 5715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대통령의 건보 개혁 추진에서 ‘문재인 케어 탓’이라는 ‘야마’는 강한데, 건보 재정에 대한 ‘팩트’는 부실해 보인다. 김연희 기자가 쓴 커버스토리를 읽고 의심이 짙어졌다.
차형석 편집국장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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