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10년]① “집 보러 오는 사람 없어요”… 10년전과 닮은 하락세, 2025년까지 내린다

조은임 기자 2023. 1.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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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 동안 집 보러 온 사람이 딱 한 명 입니다. 이제 가격은 기대도 안 해요. 팔리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2022년 8월 서울 성북구에서 5년차 준신축 아파트 전용면적 59㎡를 매매시장에 내놓은 김모(38)씨. 이 아파트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10억원대에 매매거래가 성사됐지만, 최근 호가는 8억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김씨는 넉 달 전 10억5000만원에 첫 호가를 불렀으나 최근 8억5000만원까지 낮췄다. 하지만 여전히 문의는 없다. 이 매물을 중개하는 공인중개사는 “지금은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문의 자체가 없다”고 곤혹스러워했다.

경기 분당에 전용 84㎡의 아파트를 보유 중인 이모(42)씨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4년 전 4억원 넘게 대출을 받아 7억원대에 산 이 아파트가 이제는 5억원대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시장의 거래가 씨가 말라 급매로 집을 내놔도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그간 이자와 거래비용으로 들어간 비용만 1억원이 넘는 상황. 아이들은 다니던 학원을 그만둬야 했고, 부부싸움은 매일 반복됐다. 12년 전인 2010년 신문에 나온 사례다.

그래픽=손민균

◇폭등 후 하락 닮았다… 공포 매수, 결국 장기 내리막길 걸어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정부가 규제완화를 서두르고 있지만, 한번 꺾인 부동산 심리는 좀처럼 돌아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가격대가 높고 유동화가 쉽지 않은 부동산은 무거운 자산인 탓에 불황이 닥치면 거래 자체가 얼어붙는다.

지금의 부동산 시장 모습은 10년 전과 데자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등기를 거친 뒤 거시경제적 요인이 겹쳐 하락하는 모습이 꼭 닮았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14년(2.13%) 오름세로 돌아선 서울의 아파트 값은 2017년(11.44%) 두 자릿수로 상승률이 치솟았다. 이후 2018년(18.32%), 2020년(13.81%), 2021년(14.73%) 모두 두 자릿수 오름폭을 보이며 값이 뛰었다. 역대급 저금리와 문재인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시장의 수요를 자극해 아파트값을 밀어올린 것이다.

10여년 전에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 2000년대 초부터 상승했던 서울 집값은 2004년(0.19%) 잠시 주춤하다 2005년 14.44%, 2006년 31.11% 오르며 급등세를 보였다. 급등 배경도 유사했다. 2006년 상승장은 아직도 기록적으로 평가되는데, 정책의 역효과가 크게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가 집값을 잡아줄 것이라 기대했던 수요자들은 2005년 8·31 조치 후 공포에 질려 매수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전 상승장을 투자자들이 주도했다면, 이 때부터는 무주택자들이 나섰다. 세제 개편과 주택공급 확대, 부동산 대출 억제 등으로 요약되는 이 대책은 참여정부가 내놨던 대책 중 가장 강도 높은 대책으로 꼽힌다.

급등세가 꺾인 이후 4년 연속 하락세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고점에 대한 피로감과 더불어 거시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며 시작됐다. 10년 전에는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와 투자 위축으로 부동산 시장의 거래가 끊어졌다. 당시에는 유럽재정위기의 지속, 미국 재정절벽,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가 외부 불안요인이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 그렇지 않아도 긴축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각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더 빠르고 강한 방식으로 긴축을 진행 중이다. 부동산R114가 지난달 23일까지 집계한 올해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은 -1.28%. 그리 큰 폭은 아니지만, 무려 9년 만의 ‘마이너스’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10년 전에는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온 여파가 가장 큰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면서 “거시경제는 물론 부동산도 좋을 수가 없었지만, 예상 외로 빨리 회복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손민균

◇10년 전 ‘데자뷰’라지만 외부 충격 더 크다… “금리發 하락기 더 길게 올지도”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금 시장의 가장 큰 변수인 ‘금리’는 부동산 시장에 10년 전보다 좀더 길고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0년 전에도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3.25%까지 올랐지만 그 속도는 완만했다. 불과 1년 3개월 만에 0.50%에서 3.75%로 치솟은 지금과는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달랐다.

여기에 미국의 임금상승률이 이끄는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여 금리인상기가 내년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부동산시장의 수요자들이 또 하나 염두에 둬야 할 점은 금리가 동결 기조로 접어 든다고 해도 시장의 가격 흐름이 바뀌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리가 인하 기조로 접어들어야 시장의 자금 조달 환경이 개선되면서 가격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의 집값 하락을 예측한 바 있는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이 시점을 2026~2027년으로 보고 있다. 10여 년 전 4년 간의 하락을 겪은 것과 비슷한 하락기를 겪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거래절벽은 오히려 10년 전의 기록을 넘어서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10월 수도권의 주택거래량은 17만9156가구에 그쳐 10년 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던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수도권의 주택 매매거래 건수는 27만1955건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저였다.

거래절벽이 형성되자 일부 급급매 물량을 빼곤 시장에서 소화가 되지 않고 있다. 서울만 봐도 강동, 송파에서 시작된 급락세는 최근 압구정, 대치 등 강남 핵심지에서까지 나타나고 있다. 대치동 래미안팰리스 전용 94㎡는 2021년 12월 직전 최고가 40억5000만원 대비 5억7000만원이나 내려 지난해 11월 16일 34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역시 10여년 전과 비슷한 현상이다.

가장 저렴한 가격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경매·분양 시장도 찬 바람을 빗겨가지 못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국 아파트 경매건수는 1904건으로 2021년 3월(2029건) 이후 1년 8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그러나 이 마저도 입찰자가 별로 없어 2~3회 유찰 후 낙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관련업계의 얘기다.

최근 수 년 간 열풍이 불었던 분양시장에서는 전국 청약경쟁률이 한 자릿수로 주저앉았다. 이는 2014년 이후 8년 만이다. 부동산 전문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순위 청약경쟁률은 평균 8.5대 1로, 2014년(6.7대 1)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릿수의 경쟁률이었다. 2020년에는 전국 평균 26.8대 1까지 치솟았던 것을 고려하면 열기가 급속하게 식은 것이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10년 전에도 지방 일부를 제외하고는 강남 지역까지 일제히 하락했었다”면서 “물론 지금은 미국이 촉발한 금융위기 상황은 아니지만 그 때와 크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지금은 금리라는 거시변수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규제완화가 진행 중”이라면서도 “재고주택 시장과 분양, 경매시장이 따로 갈 수는 없는 만큼 주택시장 전체가 위축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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