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세계 1위 로봇 밀집도, 노동혁명 시작됐다… “365일 근무, 파업도 없어”

윤진우 기자 2023. 1.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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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문화 변화·노동쟁의·인건비 상승 영향
협동로봇, 산업 현장 혁신 리더로 자리 잡아
음식 나르고 장애인 돕고, 서비스 로봇 일상화
단순 반복적인 일자리 로봇이 빠르게 대체
“로봇과 함께 일하는 노동 문화 조성해야”
그래픽=손민균

지난달 30일 서울 성동구 테이크아웃 전문 음식점 아웃나우 성수점. 산업용 로봇팔이 사람을 대신해 돈가스를 튀기고 있다. 로봇팔은 1시간 동안 돈가스 최대 70인분을 쉬지 않고 튀겼다. 동시에 각각의 재료를 그릇에 담고, 고기와 버섯을 오븐에서 구워 포케(Poke·하와이안 덮밥)를 완성했다. 사람 2~3명이 할 수 있는 일을 로봇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주방 로봇 스타트업 웨이브라이프스타일테크의 김원태 최고제품책임자(CPO)는 “로봇을 활용하면 굽고 튀기기 등 위험하고 단순 반복적인 조리 과정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라며 “재료를 2g 내 오차로 계량하기 때문에 같은 맛의 음식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도 로봇의 장점이다”라고 했다.

로봇이 노동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첨단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서 효율성을 높인 공정 자동화 보급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동조합의 불법 파업과 인건비 상승에 부담을 느낀 제조업체들이 산업용 로봇 도입에 눈을 돌린 결과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물건을 옮기는 등 단순 육체노동이 로봇으로 대체하면서 제조업 중심의 노조가 사라지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2일 국제로봇협회(IFR)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021년 기준 제조업 직원 1만명 당 산업용 로봇은 1000대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로봇 밀집도는 전 세계 평균(141대)의 7배를 웃돈다. 2위 싱가포르(670대), 3위 일본(399대)과 비교해서도 독보적인 수준이다. 한국이 높은 로봇 밀집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생활가전과 반도체, 자동차 등 로봇 수요가 많은 산업 특성이 있다. 마리나 빌 국제로봇협회 회장은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자와 자동차 산업을 갖춘 만큼 다른 나라와 비교해 산업용 로봇 수요가 많다”라고 했다.

다만 고된 일을 선호하지 않는 노동 문화, 제조·생산을 가로막는 강성 노동조합의 잦은 노동쟁의, 높은 인건비 등이 전 세계 1위 로봇 밀집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로봇학부 교수는 “한국의 로봇 밀집도가 연평균 18% 고성장세를 보이는 건 고된 일을 싫어하는 노동 문화와 급격한 인건비 상승에 부담을 느낀 기업의 필요가 더해진 결과다”라며 “강성 노조 활동과 경직된 노동 규제, 로봇 가격의 현실화 등도 로봇 밀집도 상승에 영향을 줬다”라고 했다.

◇ AI로 똑똑해진 협동 로봇, 산업 현장 혁신 리더로

로봇은 산업용과 서비스 로봇으로 분류된다. 공장에서 사용되는 제조용 산업 로봇이 여전히 전체 로봇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배달·조리·서빙·세탁·청소 등에 활용되는 서비스 로봇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협동 로봇은 21세기 제조 혁신을 이끄는 산업용 로봇이다. 격리된 장소에서 일하는 기존 로봇과 달리 안전망 없이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어 제조 효율을 높여준다. 협동 로봇은 인공지능(AI)과 센서를 통해 충돌 상황을 스스로 제어하고, 6개 이상의 다관절을 도입해 움직임을 작고 민첩하게 만들었다. 덴마크 업체 유니버설로봇이 협동 로봇 시장을 개척했고 현재 폭스바겐, BMW,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등에서 다양한 브랜드의 협동 로봇을 활용하고 있다.

경기 이천시에 있는 콘덴서 케이스 전문업체 스피폭스는 지난 2월부터 모든 임직원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협동 로봇 등을 도입하면서 제조 공정의 70%를 자동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스피폭스는 협동 로봇과 함께 스마트 공장을 구축해 생산량과 납기를 줄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 인력 고용을 30%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래픽=손민균

CJ대한통운은 경기 군포시 스마트 풀필먼트센터에 택배 배송 로봇 126대를 도입했다. 근무자 근처에서 택배를 나르고 포장하는 협동 로봇이다. 그동안은 근무자가 택배 상자를 들고 일정 거점마다 서 있는 기계를 찾아 움직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근무자가 작업장에 선 채로 터치스크린만 누르면 로봇이 상품을 창고에서 꺼내 포장하고 송장을 붙여 자동으로 출고한다. 택배를 포장하고 검수, 출고, 배송할 때까지 근무자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최첨단 물류 로봇 시스템을 도입해 택배 취급 능력을 큰 폭으로 늘릴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 일상으로 파고든 로봇…음식 나르고 장애인 돕고

로봇은 산업 현장을 넘어 우리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오는 2025년부터 로봇을 활용해 편지와 고지서, 소포 배달을 시작한다. 로봇이 집배원을 대신해 우편물을 배달하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우편물을 실은 자율주행차가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면 집배원이 아파트 내 소포보관함으로 우편물을 나르고, 배달 로봇이 각 가구의 문 앞으로 우편물을 배송한다. 우정사업본부는 배달 로봇이 일평균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2만명의 집배원 근로 환경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로봇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가 만든 서빙 로봇은 이미 전 세계 식당을 누비고 있다. 미국 40개주와 일본, 한국에서 1만대 이상이 보급됐다. 한국에서는 KT가 월 65만원에 서비를 대여해주고 있고, 일본에서는 소프트뱅크로보틱스가 판매 중이다. 서울 광화문 온더보더, 서울 성북구 서리재, 인천 청라 이꼬르카페 등에서 베오로보틱스의 서빙 로봇을 만날 수 있다. 베어로보틱스는 라이다(LiDAR) 센서와 3차원(3D) 카메라 등을 탑재해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했다.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로봇 스스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층간 이동 배달 로봇도 준비 중이다”라며 “배달 기사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지고, 주민들은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앞까지 오지 않아 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고 후 재활치료를 돕거나 장애인 보행을 보조하는 의료용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로봇도 대표적인 서비스 로봇이다. 엑소아틀레트아시아는 의료용 웨어러블 재활로봇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유아부터 어린이, 성인, 노인을 위한 로봇까지 다양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최초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재활로봇 엑소아틀레트는 척수에 손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재활을 돕는다. 환자가 로봇을 착용하면 로봇이 기립과 보행을 보조한다. 뇌졸중 환자의 재활에도 활용된다. 로봇에 센서를 부착해 환자 몸 상태 등을 파악, 능동적으로 보행을 돕는다.

그래픽=손민균

국내 주요 기업도 가정용 로봇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는 스스로 물건을 잡거나 옮길 수 있는 집사 로봇을 선보였다. 식사 테이블 세팅과 식기 정리 등 집안일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LG전자는 손님을 맞이하는 안내로봇부터 음식을 만드는 셰프 로봇, 잔디깎이 로봇 등 다양한 로봇을 공격적으로 내놨다. 두 회사는 가정용 로봇이 집안의 모든 정보기술(IT) 기기를 연결해 관리하는 허브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인간 일자리 대신하는 로봇, 노사 관계 달라질 수도

로봇 산업이 성장하면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논쟁도 함께 커지고 있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은 로봇 밀집도가 높은 한국이 오는 2025년까지 전 세계에서 인건비 감소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급격한 인구 감소, 고령화, 로봇 밀집도 증가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신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노조가 로봇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 공장 전환에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가 꺼낸 국내 신공장 계획이 노조의 반대에 직면한 것도 인간 일자리를 로봇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투쟁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미국과 일본, 독일 완성차 업체가 로봇(자동무인운반차량)을 적극 도입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장기적으로 로봇이 단순 반복적인 노동 중심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큰 이견이 없는 상태다. 불법 파업을 하지 않는 로봇 도입이 빨라지면서 노동의 종말이 올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로봇이 기업 수익 증대에 일조하면서 전체 고용을 더 늘릴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노동 중심의 일부 일자리는 로봇이 대신하겠지만, 인간 일자리를 뺏는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라며 “자동화로 기업 수익이 늘어나면서 기업들이 오히려 채용을 늘릴 수 있다”라고 했다. 결국 노사가 함께 나서 로봇과 함께 일하는 노동 문화를 조성하고 근로자 교육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결국 로봇을 활용하는 건 사람으로, 로봇이 내 일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잘 활용할 수 있지만 경쟁자로 보면 활용도가 떨어져 노동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라며 “내가 로봇을 이끄는 팀장이 된다는 생각으로 로봇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두가 함께 찾아야 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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