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1위 에코프로그룹, 세계 유일 양극재 생태계 구축
폐배터리 재활용부터 양극재까지 과정 총망라
지난달 14일 찾은 포항 북구 흥해읍에 있는 영일만 산업단지. 부지 곳곳에서는 터 닦기 공사와 크레인 작업이 한창이었다. 약 31만3010㎡(약 9만5000평) 규모로 자리잡은 세계 최초 양극재 생태계인 에코프로그룹의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가 몸집을 키우기 위해 시작된 공사들이다.
이곳에서는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가 매년 18만톤(t)씩 쏟아져 나오는데, 에코프로는 이를 24만t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24만t은 전기차 약 260만대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캠퍼스 규모 역시 45만5800㎡(약 15만평)로 확대된다.
약 10만평에 달하는 포항 캠퍼스 내부는 폐배터리 재활용부터 양극재 완성품 생산까지의 공정으로 오밀조밀 차 있었다. 캠퍼스에 있는 한 트럭엔 거대한 포대들이 실리고 있었는데, 이는 에코프로CNG가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니켈, 코발트, 망간 등 원료들이었다.
가루 형태의 이 원료들은 바로 옆 에코프로머티리얼즈로 옮겨져 전구체를 만드는 데 쓰인다. 또 에코프로CNG는 폐배터리에서 액체 상태의 리튬도 뽑아내는데, 이는 공장 외벽에 설치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에코프로이노베이션으로 보내져 수산화리튬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튬과 전구체는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이엠(삼성SDI와 에코프로비엠의 합작사)으로 이동해 양극재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 곳곳에서 필요한 고순도 산소·질소는 캠퍼스 한켠에 있는 에코프로AP가 지하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한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이와 같은 완성형 양극재 생태계를 조성한 것은 에코프로가 최초이자 유일하다”며 “이런 생태계를 기반으로 2017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매출액이 연평균 74.3%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11개 계열사를 보유한 에코프로그룹 전체의 지난해 매출액은 5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21년(1조5041억원) 대비 무려 266% 증가한 수준이다. 그룹 매출은 2017년 3290억원, 2018년 6694억원, 2019년 7023억원, 2020년 8508억원 등으로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매출이 급성장한 배경은 그룹 매출의 90%가량을 차지하는 에코프로비엠이 삼성SDI, SK온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은 물론 폭스바겐, BMW, 포드, 현대차 등을 고객사로 확보해 양극재 생산량을 크게 늘린 데 따른 것이다. 에코프로는 2027년 매출 목표를 2022년의 5배가 넘는 30조원으로 설정했다.
◇ 10평짜리 사무실서 출발해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에코프로는 2021년 기준 니켈·코발트·망간(NCM),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등 삼원계 양극재 시장에서 글로벌 1위, NCA 양극재 시장에서 일본 스미토모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004년 양극재 개발에 본격 착수한 뒤로 약 18년 만에 이같은 성장 신화를 썼다.
현재 에코프로는 총 11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지주사인 에코프로와 양극재 생산 기업 에코프로비엠, 대기오염방지 및 사후처리분야 기업 에코프로에이치엔 등 3곳이 상장돼 있다. 작년 12월 29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코스닥 2위인 에코프로비엠을 포함해 3곳의 시가총액 합계는 12조2982억원이다. 1위인 셀트리온헬스케어(9조1781억원)보다 3조원 이상 많은 수준이다.
에코프로가 처음부터 양극재 등 2차전지 소재를 생산한 것은 아니다. 에코프로는 화학흡착제와 탈취제 등 대기환경 분야 아이템을 기반으로 이동채 회장이 1998년 창업한 ‘코리아제오륨’이 모태다. 서울 서초동에 얻은 33㎡(10평)짜리 사무실이 첫 출발지다.
2001년에는 사명을 ‘에코프로’로 바꿨다. 생태계와 자연, 환경을 포괄하는 ‘에코(ECO)’와 호의적·찬성하다(Pro), 보존하다(Protect), 계획하다(Project), 전문가(Professional)의 뜻을 담은 ‘프로(PRO)’를 결합해 만들었다.
에코프로는 2003년부터 촉매·흡착제, 케미컬필터 등의 개발에 연이어 성공하며 친환경 기술벤처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촉매흡착제는 반도체 클린룸에서 생기는 암모니아, 아황산가스 등 화학성분을 흡착 제거하는 소재로, 이를 응용해 만든 케미컬필터는 첫 국산화 제품인 만큼 회사의 주력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이때까지도 가시적인 매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에코프로는 제일모직(옛 삼성물산)을 만나면서 ‘환경’과 ‘에너지’ 두 축을 비즈니스 모델로 사업을 이원화하는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 제일모직은 2차전지 핵심 소재이자 양극재의 주요 원재료인 전구체를 국내에서 처음 개발한 곳이다.
제일모직은 에코프로에 전해액 유기용매 사업을 제의했다. 에코프로는 화학기술에 기반을 둔 벤처기업이었던 만큼 전해질 유기용매 생산에 즉각 나설 수 있었다.
이후 제일모직은 에코프로에 양극재 전 단계인 전구체 개발을 제의한 데 이어, 2009년 사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양극재 개발 일체를 넘겼다. 2007년 에코프로는 삼성SDI에 대한 영업권을 포함해 기술이전과 사업권을 모두 인수했다. 벨기에 투자회사가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2차전지 소재 핵심 기술의 국산화 필요성과 전문성을 무기로 제일모직과 정부를 설득할 수 있었다.
◇ 창업주는 고졸 은행원 출신… “2차전지, 4차산업 심장될 것”
에코프로를 창업한 이 회장은 2차전지는 물론 화학 등 이공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은행에 입사했지만, 승진하려면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야간대학에 진학했다. 대졸 학력을 인정받으려면 재입사해야 한다는 내부 규정에 따라 퇴사 후 재입사 시험을 봤지만 탈락했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그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해 회계법인으로 갔다. 그렇게 6년간 승승장구하던 그는 IMF 위기 직전이던 1996년 모피 수출입 사업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1997년 일본에서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다는 소식은 이 회장에게 새 사업의 길을 보여줬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확장될 것이 분명했던 만큼, 관련 사업은 성공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과 교류하며 환경기술 이론을 접하고 사업화 실현 방안을 찾았다. 그렇게 국책연구기관과 기업 연구소 등에서 불순물 제거와 탈취, 나노과학을 위한 촉매 연구에 사용되는 ‘제올라이트’ 소재를 국산화하기 위해 ‘코리아제오륨’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잘한 일로 삼원계 양극재 개발에 뛰어든 것을 꼽았다. 그는 “에코프로가 배터리 소재 연구개발에 착수하던 2004년 무렵 2차전지 시장은 소형 2차전지 중심으로 편성돼 있었고, 여기에 주로 사용되던 양극재는 ‘코발트계’였다”며 “우리는 삼원계 양극소재, 나아가 니켈 80% 이상의 하이니켈계 양극소재를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보다 큰 용량과 출력을 필요로 하는 전동공구, 산업용구 등의 시장을 고려한 것이었다.
이 회장은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문제로 이산화탄소 감축이 의무화되면 언젠가 반드시 전기차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전기차 시대에는 역시 출력이 강하고 용량이 큰 양극재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며 “2차전지는 앞으로 전기자동차 뿐만 아니라 항공운수 산업을 포함해 4차 산업혁명시대에 산업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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